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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천둥의 신'의 의미를 지닌 포터 인드라
▲ 포터 '인드라' '비와 천둥의 신'의 의미를 지닌 포터 인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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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다시 찾은 네팔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제공항은 무척 정겹습니다. 세상의 어떤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시골 대합실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일한 변화는 용병, 원조, 관광 그리고 인력 수출로 살아가는 나라답게 수많은 내·외국인이 공항을 가득 채운 모습입니다.

저녁에 이번 트레킹을 함께할 포터(짐꾼) '인드라'를 만났습니다. 인드라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비와 천둥의 신 이름입니다. 이름부터 힌두교 포스가 느껴집니다. 인드라는 29살로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작은 체구가 마음에 걸렸지만 가이드가 되기 위해 열심히 우리말을 배우는 모습과 순박하고 성실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 일당 1000루피(1달러가 약 71루피)에 16일을 함께하기로 계약하였습니다.

트리뷰반 공항 국내선 청사 모습
▲ 국내선 공항 트리뷰반 공항 국내선 청사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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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달러를 환전하였습니다. 제가 계획한 곳이 에베레스트가 있는 쿰부 히말라야입니다. 이 지역은 대부분 고산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물가가 비쌉니다. 네팔도 이제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숙식비, 교통비뿐만 아니라 국립공원 입장권인 퍼밋(Permit)과 사고가 났을 경우 가이드나 포터의 보험 역할을 하는 팀스(Tims) 등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히말라야 트레킹의 매력은 '싸다'는 것이었습니다. '싸다'는 것은 개발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은 순수함이 남아 있음을 의미하니까요. 네팔에서 '싸다'는 매력이 사라진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관광객을 유치할지 걱정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네팔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遇)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상 일은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숙소앞 테이블에 앉아..
▲ 트리슐리에서 숙소앞 테이블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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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 트레킹을 위해서는 해발 2800m에 있는 루클라까지 항공기를 이용해 가야 합니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륙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지난 11월 이후 잦은 기류 변화로 루클라 공항 이착륙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기우(杞憂)는 기우(杞憂)로 끝나야 하는데 가끔씩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전광판에 'Delay(연착)'가 몇 번 반복 되다가 마침내 'Cancel(취소)'이라는 표시로 바뀌었습니다. 어제도 이륙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일 비행기가 운항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쿰부 히말라야를 포기하고 랑탕, 코사인쿤도, 핼람푸 지역 트레킹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006년 랑탕 트레킹을 하였지만 중간에 포기한 경험이 있어 주저 없이 선택하였습니다. 여행과 삶의 공통점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랑탕 트레킹을 위해서는 샤브르벤시로 이동해야 합니다. 샤브르벤시행 버스는 하루 두 번 운행됩니다. 공항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막차가 출발한 다음이었습니다. 성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버스를 쫓아보았지만 트리슐리에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노력이나 바람으로 되지 않는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인생의 진리겠지요.

트리슐리의 밤

혼자 마시는 술, 여행
▲ 한해의 마지막 밤 행사 혼자 마시는 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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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슐리에 숙소를 정하고 마을을 산책하였습니다. 마을 뒤편 언덕 위에 학교가 보입니다. 학교에 들어가니 선생님이 나와 친절하게 안내를 해줍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보딩스쿨(기숙학교)입니다. 준비해 간 학용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고장에서 한 해의 마지막 밤을 보내야 합니다.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숙소에 돌아와 책을 읽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대표 문인 21명이 쓴 <반성>이란 책과 젊은 유학자인 신정근이 쓴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라는 책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두 권의 책이 제가 힘들고 외로울 때 저와 친구가 될 것입니다.

지그재그로 끝없이 이어진 도로 모습
▲ 샤브르벤시 가는 도로 지그재그로 끝없이 이어진 도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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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카트만두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샤브르벤시까지 가는 버스는 카트만두에서만 출발합니다. 어제 택시를 탄 것은 제 마음의 조급함의 표현이었지 샤브르벤시까지 가는 시간을 단축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른 아침을 먹고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지만 히말라야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는 다르기에 언제 버스가 도착할지는 신(神)만이 아실 것입니다. 

숙박을 한 트리슐리는 해발 548m입니다. 오늘 일정은 해발 1950m의 둔체를 거쳐 해발 1462m의 샤브르벤시까지 가는 것입니다. 버스가 등산을 시작합니다. 1시간 30분을 올랐지만 바로 아래 제가 출발한 트리슐리 계곡이 보입니다. 지그재그로 벼랑 위에 걸려 있는 실낱 같은 도로는 위태위태합니다. 한 번 실수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승차한 제 마음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이번이 두 번째 경험이지만 처음보다 더 겁(?)이 납니다.

신의 산으로 가는 버스

샤브르벤시행 버스 모습
▲ 로컬 버스 샤브르벤시행 버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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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산으로 가는 버스는 정원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손만 들면 태워주고 아무리 혼잡하여도 승객을 태울 공간은 남아 있습니다. 승차에서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지도 않습니다. 2명의 차장은 버스 안과 위를 오가며 차비 징수, 물건 정리 그리고 가끔씩은 승객의 요청에 따라 가게 심부름도 합니다. 반대편 차량과 마주할 때는 휘파람과 차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선장의 역할까지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도로에 "Heavenly Path(천국의 길)"라는 문구가 가끔 보입니다. 제 생각에도 천국으로 가는 버스가 틀림없습니다. 저 혼자만 불안할 뿐이고 대부분의 네팔인들은 버스 안과 위에서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즐기는 모습이, 마치 천국 잔치에 초대받은 하객 같습니다. 신의 산에 사는 주민은 삶과 죽음에 대해 초월한 것 같습니다. 운무 속에서도 가끔씩 보이는 설산 모습과 다락논의 장관은 눈을 황홀하게 만듭니다.

둔체에서
▲ 새해맞이 행사 둔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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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체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이 나와 새해 기념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금잔화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환대에 무척 감사한 마음입니다. 관광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 네팔에서 주민과 트레커 모두가 상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100km 거리를 무려 6시간 동안 달려 샤브르벤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샤브르벤시는 랑탕 트레킹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입니다. 이 지역은 티벳탄들이 거주하기에 숙소의 이름이 라사(Lhasa), 라마(Lama), 부다(Buddha) 등 티벳과 관련된 이름이 대부분입니다. 티벳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이곳까지 와서 그들의 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랑탕 트레킹의 베이스 캠프 샤브르벤시 모습
▲ 샤브르벤시 모습 랑탕 트레킹의 베이스 캠프 샤브르벤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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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여행의 즐거움과 비례하는 것인데 제가 준비한 각종 자료는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착한 포터 인드라와 지도를 구입하여 일정을 조율해봅니다. 저는 이 지역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인드라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네팔 전통술인 뚱바 한 통과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 머릿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계속 맴돕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당신은 행복합니까?" 

이번 트레킹이 끝났을 때 저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태그:#히말라야, #라탕, #샤브르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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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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