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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대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대 뒤에 가렸는지
사랑 그 아픔이 너무 커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대 행복하길 빌어 줄게요
내 영혼으로 빌어 줄게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노래...
왈칵! 울고 싶다.

시인 소월의 절창이 구구절절 쏟아져 내 앞에 흥건히 고일 것만 같다. 그는 어떤 사랑을 보았기에 저리도 한사코 역설의 이별을 겪어내려 하는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에게 "말없이 고이 보내"는 것도 모자라,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그가 "가실 길에 뿌리"는가. 더욱이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고 할 수 있는가.

게다가 이별을 말한 시 중에 가장 처절한 대목을 기어이 소월은 쓴다. 두고두고 이별 앞의 사람들을 울리는 단 두 행,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말. 한 사람의 울음이 먼 미래인 지금까지 사람들을 함께 울게 한다. '죽어도 아니'란 역설의 암호!

구조상으로나 상식적으로는 모순되는 말이지만 실질적 내용은 진리를 나타내고 있는 표현, 소월은 역설로 자신이 이별 앞에서 통곡의 늪에 갇혔음을 전하고 있다.
"말없이 보내"는 게 아니라 '죽어도 보낼 수 없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알아달라고 한 자 한 자마다 진달래 꽃잎을 뿌리고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 길을 걸어 다시 내게로 오라는 강한 주문이다.

마야의 목소리가 울음보다 더 짙다. 그래서 이 노래가 빛날 수 있다. 이별이란 그런 게 아닌가. 탁한 유화처럼 더께 진 세월을 혼자 바라보는 것. 더께의 두께에 따라 손으로 만져보면 절대로 고르지 못한 표면이 느껴지는 것. 이별이란, 아직은 덮지 못한 사랑의 기억이란, 어느 지점에 발이 붙잡혀 그곳에 생살 같은 아픔을 부려놓는 것... 아닌가.
목의 핏줄이 있는 대로 불거져 나오며 토해내는 마야의 목소리엔 열락의 사랑과 그 사랑이 떠나간 비애, 비애보다도 더 강렬한 사랑의 귀환을 바라는 절체절명의 처절함이 살과 뼈를 태울 듯한 기세로 뿜어져 나온다.

묻지 못한 생각이 쌓인다. 말은 이미 떠나갔다. 말이란 청자가 있을 때 가능한 소통 수단이아닌가. 이별 후에는 그 어떤 말도 말이 되지 못하고 '생각'에 갇힌다. 들어줄 '그'가 없는 것이다.

이제 조금씩 알아진다. 절단된 사랑 앞에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 자신을 떠나간 사람의 안부조차도 그냥 '생각'에 가둬야 한다는 자각이 눈을 뜬다.

"날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대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대 뒤에 가렸는지"를 그가 아니라 자신에게 묻는 시간이 온 것이다.

사랑은 강렬해 멈칫거릴 여유도 돌아갈 이유도 없었다면, 이별은 내려가도 내려가도 발이 닿지 않는 심연이라 말도 행동도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돈다.

유난히 환절기가 길게 이어지는 올해, 지난 계절도 다 가지 못했고 올 계절도 채 못 오고 있는 지금... 어수선함과 뒤척임과 오락가락과 망연자실이 하루 종일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래도 속일 수 없고 속을 수도 없는 건 시간인가. 문득 바라본 창으로 파고드는 목련이며 개나리가 지금이 4월이고 봄이란 걸 말해준다.

언젠가 "4월"이란 시에서 내가 썼듯이 '미치지도 못하고 4월이 간다'... ! (*)


태그:#서석화, #음악에세이, #마야, #진달래꽃,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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