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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대자연'이나 '투자 가치 있는 신흥 경제대국'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질병 그리고 차별·소외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3년 밀알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캠페인 '우리의 눈은 아프리카를 향합니다'를 후원하며 지구촌 빈곤의 현주소를 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말]
2013년 4월 1일. 미지의 땅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취재진의 목적지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동쪽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그때까지는 한국에서 에티오피아로 가는 직항노선이 없었기 때문에 인천공항에서 국적기를 타고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서 케냐항공으로 갈아타는 노선을 이용했다.

탑승 시각에 맞춰 탑승구에 도착했지만, 아프리카로 가는 승객이 많지 않은 듯 대부분의 의자는 비어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잡담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우리와 함께 비행기를 타게 될 또 다른 승객이 도착했다. 깊게 눌러쓴 야구모자로도 가려지지 않는 상당한 미모의 두 여인에게 저절로 눈이 갔다.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면 알아볼 수 없을 뻔했던 그녀들은 놀랍게도 여배우 강수연과 예지원이었다.

예지원이 다시 가고 싶은 곳, 모얄레

2011년 근급구호당시 모얄레를 찾은 배우 예지원
 2011년 근급구호당시 모얄레를 찾은 배우 예지원
ⓒ 밀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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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 너무 반가워요. 여기서 다시 만날 줄 몰랐어요. 저 기억하시죠?"

예지원이 펄쩍 뛰며 반갑게 인사를 한 사람은 취재팀과 함께 에티오피아로 들어가게 된 정순자 한별학교 교장이다.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두 사람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예지원이 먼저 감사의 말을 꺼낸다.

"선생님, 2011년에 뵙고 지금 뵈니 2년 만이네요. 지금도 선생님이 저에게 해주신 밥과 커피 맛을 잊지 못해요. 한국에 와서도 늘 선생님을 생각했어요. 에티오피아 다시 한 번 꼭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지만 쉽지 않았어요. 선생님 건강하신 모습 뵈니 너무 감사하고 기뻐요. 앞으로도 늘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야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으니까요."

2011년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북동부지역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소말리아 지부티·케냐에 1950년 이래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닥쳤다. 반기문 유엔 총장을 비롯한 세계 언론들은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긴급구호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해발 2600미터 고원 지역. 어린 소년이 뜨거운 도로 위를 맨발로 걷고 있다.
 해발 2600미터 고원 지역. 어린 소년이 뜨거운 도로 위를 맨발로 걷고 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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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은 가뭄으로 인해 10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2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50만 명은 당장 아사(餓死)할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살리자는 호소가 전파를 타자 세계 각국의 구호단체가 이에 화답하며 서둘러 아프리카로 향했다. 여배우 예지원도 그 긴급구호 대열에 합류했다. 밀알복지재단 긴급구호팀과 함께 에티오피아의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구하러 간 것이다.

"처음이었지만 두렵지 않았어요. 늘 그런 일에 꼭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했어요. 굶어 죽어가는 아이,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 더러운 물을 먹고 실명한 노인, 먹지 못해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오른 아이, 발이 썩어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코끝이 붉어지더니 눈에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2년이 흘렀지만 그때 보았던 장면들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엔 강수연 언니와 함께 우간다에 가요. 2011년 고생을 많이 했지만 항상 기회가 되면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SBS 희망TV팀을 따라오게 됐어요. 제가 갔던 에티오피아 모얄레 지역도 꼭 다시 찾아보고 싶어요. 그때 만났던 9살짜리 여자아이 로코와 사포보야나 할머니 잘 있는지 너무 궁금해요. 기자님, 혹시 거기 가시면 제가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녀의 눈에서 수정처럼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떤 영화보다 더 아름다운 여배우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저에게 아프리카 봉사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에요. 배우로서 이 세상에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요. 저는 아프리카 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순결한 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돌아봐야 할 땅이지요.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들이나 노인들, 약하고 낮은 자들이 굶어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물질이 넘쳐나는 세상에 각자 조금만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고 관심을 가져주면 그 누구도 절대 굶어 죽지는 않을 거예요."

한국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갔던 그녀와는 케냐 나이로비 국제공항에서 헤어졌다. 그녀들은 우간다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탔으며 우리는 2시간을 더 기다려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초목 무성한데 가뭄이라고?

붉은 흙먼지가 날리는 야벨로 시장
 붉은 흙먼지가 날리는 야벨로 시장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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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일 뒤 취재진 에티오피아 남부 가뭄 지역 야벨로를 찾았다. 야벨로는 아디스아바바에서 12시간 걸리는 거리로 취재진의 숙소가 있는 딜라에서도 5시간 가량 걸리는 곳이다. 애초의 계획은 2011년 예지원이 찾아갔던 모얄레 지역을 취재하려고 했었지만, 우리를 안내할 정순자 한별학교 교장은 모얄레까지 가는 데 많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모얄레에 살고 계신 분에게 연락이 왔는데 요즘 그쪽 상황이 좋지 않다네요. 그 동네에 보라나 부족과 가부라 부족이라고 아주 호전적인 두 부족이 살고 있어요. 그 두 부족이 다시 전쟁을 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몇 년 전에도 두 부족이 싸워서 사람들이 엄청 죽고, 피난을 가고 그랬는데 여전히 두 부족 사이가 좋지 않아요. 다 먹고 사는 것 때문이죠. 물과 초목이 많은 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몇 세대를 거치면서 싸우고 있는 거예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우리가 이용할 차가 한별학교 스쿨버스로 사용하는 낡고 힘이 달리는 미니버스라 장시간의 오프로드를 이겨내지 못할 거라는 걱정도 있었다. 여배우 예지원이 눈물로 기억하는 그 땅과 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났지만 상황이 비슷한 좀 더 가까운 지역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해가 뜨기 전인 오전 7시께 딜라를 출발한 취재팀은 케냐로 향해 난 유일한 국영도로인 6번 도로를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달렸다. 해가 뜨기 시작하는 마을풍경은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샤르벳 안에서 피어오르는 희고 푸른 연기가 햇빛을 받아 마치 동화의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비가 와서 집집마다 불을 피웠을 거예요. 그 불에 아침을 준비하느라 집집마다 저렇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죠. 해발 2000미터 정도 되다 보니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산허리에 맴돌거나 마을에 그대로 가라앉아 있는 겁니다."

집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와 안개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시골의 아침
 집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와 안개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시골의 아침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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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스름한 연기에 가려진 마을을 지나 작은 도시에서 인제라와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달리기를 두어 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눈을 떠보니 취재진이 탄 차는 굽이굽이 산을 오르고 언덕을 지나 사방이 탁 트인 고원지대에 올라와 있었다.

진통제를 먹어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두통과 답답한 가슴. 바깥바람을 쐬어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차에서 내렸지만 아무리 숨을 크게 쉬어도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원의 높이는 해발 2600미터 이상.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단순한 두통이나 소화불량이 아닌 고산증 증세였다.

사방 어디에도 막힌 곳이 고원지대.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는 한낮의 태양 아래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 위를 낙타와 나귀·염소와 소떼들을 이끌고 지나는 목동들이 간간히 보인다. 심지어 어린 목동은 신기루가 이글거리는 뜨거운 바닥을 맨발로 걷고 있었다.

"이제 두 시간 정도 더 가면 야벨로에요. 거기서는 사진 찍는 걸 조심해야 합니다. 야벨로에 사는 부족들은 사진이 영혼을 빼앗긴다고 생각해서 사진 찍히는 걸 아주 싫어해요. 호전적인 사람들이니 자칫하면 싸움이 나거나 카메라를 뺏길 수도 있으니 특히 조심하세요."

고원을 내려가니 도로 주변에 사람들과 가옥들이 많이 보인다. 극심한 가뭄지역이라더니 예상외로 야벨로로 들어가는 길목의 산은 푸르른 초목들로 우거져 있다.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6월부터 우기가 시작돼서 9월이면 끝나는데 올해는 우기가 일찍 시작됐어요. 2011년 대가뭄 당시에는 3년 동안 우기에도 비가 내리지 않아 모든 농작물이나 가축들이 죽고 사람들도 많이 죽었지요. 에티오피아는 땅이 좋아서 조금만 비가 와도 초목이 우거지는 곳이에요. 하지만 비가 계속 내려주지 않는 게 문제예요. 옥수수를 심고 3개월은 계속 비가 와야 수확을 할 수 있는데 한두 달 오고 열 달은 가뭄이니, 옥수수가 맺히기도 전에 다 타죽고 마는 거예요."

"구호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진짜 필요한 건..."

손님 대접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야벨로 여인
 손님 대접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야벨로 여인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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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벨로 주변에 우거진 초록은 이곳이 가뭄 지역이라는 걸 실감 나지 않게 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달리 고질적 가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화전을 일궈 살기 때문에 땅은 죽어가고, 마구잡이 벌목으로 인해 헐벗은 산이 늘어나면서 급속하게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관계시설이 전무하다보니 조금만 가물어도 그 피해가 엄청나다.

"우기라고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게 아니에요. 오후 대여섯시부터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오는데 나머지 시간은 아주 건조하고 더워서 땅이 금방 말라버리는 게 문제예요.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우기가 접어들 때가 바로 춘궁기입니다. 좋지 않은 날씨와 척박해진 땅에서 약간의 소출을 얻었다고 해도 1년을 먹고 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요. 그러다 보니 춘궁기가 되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거예요."

밀알복지재단은 야벨로와 드불룩 지역에 매년 두 차례 옥수수를 나눠주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은 야벨로와 드불룩 지역에 매년 두 차례 옥수수를 나눠주고 있다.
ⓒ 밀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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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긴급구호 당시 모얄레와 야벨로를 비롯한 에티오피아 남부지역은 살인적인 가뭄으로 작물과 가축은 물론 사람들마저 속수무책 죽어나가는 상황이었다. 당시 밀알복지재단의 긴급구호팀은 이 지역에 미화 2000달러 상당의 옥수수를 배분하고 영양실조 어린이를 위한 영양제를 보급했으며 이동진료소를 설치해 응급환자들을 치료했다.

"270여 가구에 한 가정 당 30~50kg의 옥수수를 나눠줬어요. 가족 수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먹을 양이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매년 두 차례 옥수수를 지원하고 있어요. 대기근은 끝났지만 원조가 없이는 살기 어려운 지역이기 때문이죠. 오면서도 유엔이나 구호단체들의 구호품을 실은 트럭들을 보셨을 거예요. 그렇게 원조 물자들이 들어가고 있어요."

야벨로와 모얄레의 기근은 긴급구호 당시보다 많이 나아진 상태다. 여전히 경작을 할 수 있는 만큼의 강수량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국제원조단체로부터 지속적인 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외국의 원조가 에티오피아를 죽이고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국제구호 단체들은 지난 60년 동안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빈곤국에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쏟아부었다. 문제는 엄청난 원조에도 이들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잠비아 출신 여성 경제학자 담비사모요는 그의 저서 <죽은 원조>(DEAD AID)에서 아프리카의 고질적인 가난은 서구사회로부터 주어진 원조 때문이라며 더 이상 죽은 원조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도 이러한 자각이 일어나며 더 이상 원조에 기대지 말고 자생력을 키우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취재 일정 동안 함께 했던 현지인 제게예도 원조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었다.

"원조나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저도 제 아버지도 구호 식량을 먹고 살았던 적이 있지만 더 이상 에티오피아가 구호 식량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구호품을 얻어먹고 살다 보니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아요. 사실 공장도 장사도 할 수 없어요. 공짜로 나눠주는 구호품이 있는데 누가 돈을 주고 물건을 사겠어요. 그래서 더 가난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는 구호품을 주지 말고 일자리를 주면 좋겠어요. 우리 힘으로 살 수 있도록 산업을 일으켜주면 좋겠어요."

외국인에게 구걸하면 즉각 처벌되는 곳

이곳 무슬림 아이들에게 양은 큰 재산이다.
 이곳 무슬림 아이들에게 양은 큰 재산이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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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예뿐만 아니라 많은 에티오피아의 젊은이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 정부가 전복되고 민주주의 멜레세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대국민 계몽에 나선 것도 큰 기여를 했다. 이제는 정부에서도 무상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가능하면 일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구걸을 하거나 무조건적인 도움을 구하지 말라는 교육도 실시한다. 원조나 구호 봉사활동을 위해 아프리카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쥐어 준 달러와 사탕·옷과 음식들에 길들여진 '거지 근성'이 그들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음에 대한 자각이 시작된 것이다.

"이젠 정부가 나서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아디스아바바 시내에서 외국인이 구걸을 하는 에티오피아인에게 돈을 주면 즉각 처벌이에요. 구걸을 한 에티오피아인도 잡혀가지만 돈을 준 외국인도 벌금을 물어야 해요. 방송에서도 그런 광고를 많이 해요. 원조에 매달리지 말고 일을 해서 가난을 극복해야 한다고요."

가뭄이 계속되고 있던 에티오피아, 이곳에 취재팀이 방문하기 일주일 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단다. 취재팀이 머무는 딜라에도 야벨로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비는 우리를 따라다녔다. 우리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말하는 '행운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가뭄으로 인해 고통받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해갈이 돼 밭을 갈고 희망의 씨를 뿌리는 농민들을 본 것은 더욱 기쁜 일이었다. 춘궁기에 당장 먹을 것은 구호단체에서 배급받은 옥수수로 해결을 하지만 3개월만 비가 내려준다면 원조에 매달려 살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별학교 정순자 교장은 지난해 시험적으로 실시했던 무담보소액대출(마이크로크레딧)에서 희망을 봤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 정도가 되면 옥수수를 줘야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가난을 이겨낼 방법을 줘야 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무담보소액대출이에요. 노동력이 있고 성실한 사람들에게 염소나 양·송아지 등을 사주고 그것을 키워 팔아오도록 하는 거죠. 딜라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를 해봤는데 아주 성과가 좋았어요. 송아지 한 마리를 사줬더니 그 송아지로 밭을 갈아 농사를 짓고 큰 소로 키워 송아지 두 마리로 늘여 놨더라고요. 

예전에는 100원을 주면 100원이 사라지는 식이었지만 마이크로크레딧을 하면 100원은 그대로 있으면서 또 다른 100원이 생기는 것이니 얼마나 생산적이고 보람 있는지 몰라요. 저는 마이크로크레딧에 희망을 걸고 있어요. 당장 굶어 죽게 생긴 사람에겐 옥수수를 주고 굶어 죽을 위기를 넘긴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주는 거죠."

마른 고원 위로 먹구름 밀려오고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른 고원 위로 먹구름 밀려오고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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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비가오면 마을길은 온통 진흙탕이 된다.
 조금만 비가오면 마을길은 온통 진흙탕이 된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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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벨로에서 돌아오는 길, 또다시 고원 위를 오르니 멀리 두껍게 내려앉은 먹구름 아래로 비가 쏟아지는 모습이 커튼을 친 듯 장관이다. 저 비가 그치고 나면 옥수수도, 커피도, 떼프도 무성하게 자라날 테고 에티오피아의 희망도 그렇게 자라날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희망이 없는 땅이라고 이야기한다. 원조에 매달려 발전을 거부하는 아프리카인들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탓하고 그것을 방조하고 부추기며 사익을 챙기는 부패한 정치를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본 아프리카는 긴 잠에서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다. 가뭄 끝에 내린 비에 새싹들이 무성하게 올라오듯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희망의 싹들이 검은 땅 아프리카를 푸르게 덮어갈 그날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밀알복지재단(02-3411-4664)에 전화하시면 후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밀알복지재단 누리집]을 통해서도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울지마 아프리카, #밀알복지재단, #에티오피아, #모얄레, #야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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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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