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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펭귄과 함께한 300일>표지
 <황제펭귄과 함께한 300일>표지
ⓒ 미래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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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 유독 책과 친해질 수 있었(음)은,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책과 함께 해왔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요, 그리고 가장 큰 축복이란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유독 가슴 뭉클한 책을 만났을 때 책과 가까이할 수 있음의 행복을 더욱 느끼게 된다.

요즘 이런 뭉클한 감동으로 읽은 책은 <황제펭귄과 함께 한 300일>(미래의 창 펴냄)이다. 저자는 MBC <지구의 눈물> 시리즈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아마존의 눈물>과 <남극의 눈물>에 참여한 MBC 촬영감독 송인혁(사진 찍고)와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의 인터뷰어인 은유(글 쓰다)씨다.

남극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70도, 최저 영하 83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어지간한 생물은 살 수 없는 자연조건이다. 바이러스조차 살 수 없는 온도라고 한다. 황제펭귄은 한 달 동안 100km를 걸어 이런 남극을 찾는다. 모두가 추위를 피해 달아난 그런 겨울의 남극(우리의 봄)에, 알을 낳고 품어 새끼를 기르기 위해서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새끼에게 먹일 양식을 몸에 충전한 뒤다. 펭귄이 남극을 찾기 전에 먹은 이 음식은 소화되지 않고 수컷의 몸에 흐물흐물한 죽과 비슷한 상태로 저장됐다가 알에서 깨어난 새끼의 먹이(펭귄 밀크)가 된다. 수컷에게 알을 건넨 후 바다로 떠난 암컷이 몸에 식량을 저장해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수컷의 몸에는 영하 60~70도의 혹한에도 알을 품어 부화시킬 수 있는 '배란낭'이 있다. 이 배란낭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자라는 요람이 되기도 한다. 암컷에게 알을 건네받은 수컷은 배란낭에 알을 품어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그러나 도중에 놓치기도 하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잃기도 한다.

"암컷에게서 수컷에게로 알 건네기는 간단치 않습니다. 황제펭귄은 손이 없고 다리가 짧고 바깥은 엄청 춥습니다. 도중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알은 1~2분 안에 곧장 얼음덩어리가 됩니다. 눈물이 흐르면 고드름이 되듯이 알이 떨어지면 자갈처럼 굳어버립니다. 오직 번식을 위해 모진 풍파 헤치고 여기까지 왔는데, 가장 귀중한 것을 잃었습니다.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사히 건네받은 알을 놓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수컷은 몸속에 알 대신 얼음덩어리를 넣기도 합니다. 더러는 뱃속이 허전해 머리를 숙이고 알이 있던 자리를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본문 중에서)

황제펭귄은 어떻게 영하 70도를 이겨냈을까

몇 년 전 겨울(2011~2012), 이 책의 바탕이 된 '남극의 눈물'을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본 적이 있다. 이 장면도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장면 중 하나다. 새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펭귄들이 새끼 한 마리를 두고 살벌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무척 가슴 아프게 봤다.

오직 새끼를 기르고자 극한의 남극에서 목숨을 거는 펭귄이 알을 놓쳐 새끼를 얻을 수 없게 되거나, 새끼를 잃음으로써 삶의 희망이 없어진 펭귄들이 사나운 맹수로 돌변한다. 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TV에서 본 '죽은 새끼를 놓지 못하고 며칠 동안 가슴에 품고 다니는 다람쥐원숭이'의 비애가 떠올라 마음 참 아팠다. 멍해졌다.

수컷은 두 달 가량 새우 한 마리도 먹지 못한 채 눈만 먹어 간신히 목을 축이며 알을 부화시킨다. 때문에 바짝 말라간다. 그러면서도 알을 놓치기라도 할까 노심초사, 오직 알을 제대로 부화시키는 사명에 목숨을 다한다. 때로는 암컷이 사라진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암컷을 그리워하는 슬픈 소리를 내며, '허들링'으로 영하 70도의 매서운 바람을 이겨낸다.

"암컷은 어서 좋은 먹이로 새끼를 배불리 먹이려 합니다. 그런데 수컷이 주춤거립니다. 새끼를 먹이려면 암컷에게 내주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몸이 뒤로 물러납니다. 두어 달을 새끼와 한 몸처럼 지낸 수컷은 새끼를 선뜻 보내지 못합니다. 기다리다 못한 암컷이 강제로 새끼를 데려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 황제펭귄 부부는 부화 후 50일가량 번갈아 새끼를 품으며 정을 뗍니다. 부모도 홀로서기를 배웁니다."(본문 중에서)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 감동이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황제펭귄들이 최대한 가까이 모여 몰아치는 세찬 바람과 눈보라에 맞서는 방법인 '허들링'처럼 황제펭귄의 삶을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이, 가치 있는 메시지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단호함'과 '사랑' 사이의 갈등

자식을 낳아 키우며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단호함'으로 인한 갈등이었다. 어쩌면 헌신적인 사랑보다 자식에게 훨씬 도움이 될지 모르는 그 단호함 말이다. 아니, 20대 전후인 두 아이의 엄마인 내게 지금도 가장 힘든 것은 '단호함'과 '헌신적인 사랑' 사이의 갈등이다.

길어진 그림자와 몸에 조금씩 느껴지는 따뜻한 공기로 떠나야만 할 때를 알아차린 부모 황제펭귄들은 어른 몸집만큼 커진 새끼 펭귄들을 놔두고 홀연히 떠나버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극정성을 쏟아 길렀던 금쪽같은 새끼들만을 놔두고. 다른 동물들처럼 먹이를 잡는 방법이나 천적을 피하는 방법 등 살아남는 방법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고서 말이다.

책 <황제펭귄과 함께한 300일>은 황제펭귄이 태어나고 자라서 어엿한 개체로 독립하기까지 생애 한 주기를 오롯이 담은 사진과 짧고 간결하게 함축된 메시지 강한 내용으로 돼 있는 사진 에세이다. 엉덩이를 바깥으로 향해 배변을 하는 아기 펭귄들과 아기가 서로 예쁘다고 자랑하는 모습들 등 미소 짓게 하는 사진들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참고로 황제펭귄의 생애를 담은 '남극의 눈물'과 같은 다큐멘터리는 지금까지 BBC의 'Life in the freezer'와 프랑스의 'MARCH OF PENGUINS' 정도가 유일하다고 한다.

"펭귄들도 공동육아 하는데, 사람은..."

본문 모습 중 하나. 황제펭귄의 수명은 대략 30년, 이중 1년 정도만 부모와 함께 산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황제펭귄 중 20%만 바다로 나간다.
 본문 모습 중 하나. 황제펭귄의 수명은 대략 30년, 이중 1년 정도만 부모와 함께 산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황제펭귄 중 20%만 바다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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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한 번 더 갔더니 황제펭귄 만 마리가 모여 있는데 시끌시끌하더라. 근데 새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명동에 나와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 구경하는 것처럼 재밌었다. 한 놈 한 놈 얼굴이 다 다르게 보였다. 우리 정체가 궁금한지 어떤 황제펭귄이 오더라. 이쪽으로 걸어오는데 검은 신사가 오는 것 같고 왠지 악수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펭귄 말을 배워야 하는데 아닐까?' 우리끼리 그랬다. 왠지 우리에게 말 거는 것 같고 신기하더라.

우리가 남극에 있을 때 서울시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여담으로 김진만 PD랑 그런 얘기를 했다. 아니 펭귄도 새끼들끼리 모아 공동육아를 한다. 함께 모여서 추위 이기고 공동 육아하려고 하는데 소위 말해서 지성인이 모여 사는 인간사회서 세금 일이만 원 더 모아서 아이들 좋은 것 먹이자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싶더라."(본문 중에서)

<남극의 눈물> 그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사진과 짧고 간결한 글로 구성된 본문도 좋지만, 사진 찍은 송인혁 촬영감독과 글을 쓴 은유씨와의 3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인터뷰(에필로그) 또한 재미있다.

이 책은 <남극의 눈물> 속 숨은 이야기 혹은 제작 후기 정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큐멘터리를 감동 있게 보면서도 미처 기억으로 남기지 못해 잊었던 황제펭귄의 이야기들과, 누구나 쉽게 갈 수 없는 혹한의 촬영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황제펭귄들은 왜 하필 살던 동물들도 떠나는 남극의 겨울을 산란과 새끼들을 키우는 곳으로 선택할까? 부모들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후 남겨진 새끼 펭귄들은 어떻게 될까? 황제펭귄들은 새끼 황제펭귄들에게 먹이를 잡고 천적으로부터 피하는 방법 등은 어떻게 가르칠까? 저자들은 이미 영상으로 전했던 이야기를 왜 또 전하려는 걸까? 이 궁금증의 답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황제펭귄과 함께한 300일> (송인혁 사진·은유 씀 | 미래의창 | 2013.05.(초판출간 2012년) | 1만3800원)



황제펭귄과 함께한 300일 - 두 발로 걷는 그들이 말없이 가르쳐준 생의 고귀한 메시지들

송인혁.은유 지음, 미래의창(2013)


태그:#황제펭귄, #남극, #남극의 눈물, #지구의 눈물, #허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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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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