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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는 감시대상자, 요주의대상자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범죄자에게 어울리는 단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했어요.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생각 깊숙이 들어와 있는 '왜곡된 생각'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의 생각까지도 검열하게 만드는 '생각의 블랙리스트'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의 실체를 파헤치고, 맞서보려 합니다. - 기자 말

이집트 군부가 친무르시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집트 군부가 친무르시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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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안 된다'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파싸움, 지역감정부터 시작해 안 되는 이유가 백가지도 넘을 겁니다. 이런 얘기들은 대부분 '일본은 다르다, 미국은 다르다'로 끝나게 됩니다. 일종의 식민사관이죠. 이러한 '자해성 인식'에 저항하는 것이 '한국사회 생각의 블랙리스트'를 파헤치는 첫 걸음입니다.

보릿고개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누구 덕분에 보릿고개를 넘은 줄 아냐"란 말도 들어보셨나요? '미국 원조 덕'에 우리가 이 정도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만 이 이야기를 하시는 건 아닙니다. 대학생들도 '미국 원조+박정희'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공식에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않죠. 우리 부모님들, 열심히 사신 분들입니다. 우리 민중들, 뼈 빠지고 등골 휘게 노동하며 살았잖아요. 그렇게 농사짓고 공장 돌려 이만큼 산다고 생각 안 합니다. 우리 힘으로 살았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이죠.

첫 번째 이유는 미군정이 해방 이후 다 쓰러져가는 식민지 조선을 일으켜 세웠다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미군정 법령 33호 '조선 내 소재 일본인 재산권 취득에 관한 건' 제 2조를 보면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 정부, 그 기관 또는 그의 국민, 회사, 단체, 조합 등이 소유 관리하는 전 재산 및 그 수입에 대한 소유권은 1945년 9월 25일부로 조선 군정청이 취득하고 조선 군정청이 그 재산 전부를 소유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공장, 토지가 미군정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한 예로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1>(박세실, 돌베게)에 따르면 미군정 산하의 신한공사 소유지의 쌀 생산고는 1947년 전체 생산량의 25%에 달했고 매년 막대한 소작료를 거두었습니다. <한국경제의 전개과정>(김윤환 외, 돌배게)에 따르면 남한의 공업은 1948년 기준으로 1941년에 비해 기업체 수는 60%, 고용자수는 70%, 생산액은 83% 각각 감소되었다고 합니다. 미군정이 토지를 가져가선 소작료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공장을 가져가선 실업자를 양산했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배운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이 잿더미가 된 한국경제를 살려줬다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한국현대사2>(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 풀빛)에 따르면 한국전쟁 후 미국의 대한원조 중 군사 혹은 준군사원조가 8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지역통합전략>(허버트 P. 빅스)에 재밌는 글이 있습니다.

한국의 방위지원을 위한 기금의 투입량이 증가할수록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지역에 우리 군사력을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즉 미국은 한반도에서 자기 군사력을 유지시키는 비용을 원조라는 명목으로 지불한 것이죠. 그리고 1955년 5월 체결된 '한미잉여농산물 원조협정'에 따른 미국 잉여농산물의 막대한 유입은 농업파괴와 이농현상을 일으켰습니다. 1954년에 작성된 '한미합의의사록'의 한국 이행 4항 "투자기업의 사유제도를 계속 장려한다"는 조항은 독점자본의 진출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일본인 한 학자(岡倉古志郞)는 <신식민주의의 제형태>라는 논문에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미국은 경제원조를 발판으로 한국의 재정경제를 지배하게 된 이래 전후 20년 사이에 약 35억 달러의 경제원조를 한국에 투입하였다. 하지만 미국이 그 대가로 한국으로부터 얻어낸 재화는 대략 100억 달러에 상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사회주의 소련과 중국의 진출로부터 일본을 지켜야 했으며 일본의 방패막이로써 한국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박정희는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국현대사2>에 따르면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진행된 2차 경제 개발계획은 투자재원의 40%를 해외에 의존했고 1971년엔 외환수입의 13.3%를 이자와 원리금 상환에 쓸 정도로 상환압박이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또한 차관에 의해 설립된 기업은 대부분 미국의 퇴행산업이었기 때문에 1969년 기준으로 차관기업의 45%가 부실기업으로 판명 났습니다.

잘못된 개발로 인한 인플레를 농민에게 전가시킨 저곡가 정책은 농촌을 파괴했고, 1970년대 초까지 국민소득의 실질적인 감소를 가져왔습니다. 그나마 박정희 정권의 숨통을 틔어준 것은 파병의 대가인 '베트남 전쟁 특수'와 중동의 오일달러를 벌수 있었던 중동 건설 붐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1980년대 들어 미국의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프라자 합의' 이후 3저 호황의 곁불을 쬔 것이 그나마 본 '미국 덕'입니다.

미국의 경제원조가 우리를 살렸나요?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죠. '론스타 5조 원 먹튀도 눈뜨고 당하는 현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식량자급률 최하위권, 청년고용률 24%, 성장동력이 소멸됐다는 매킨지 보고서, 비정규직 1000만'이 우리가 치르고 있는 대가입니다. 자립하지 못하는 경제가 된 것이죠. 경제발전은 우리나라 민중들의 피와 땀으로 된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아가는 다른 나라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민족을 다시 발견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못나서, 다른 '훌륭한 나라'가 도왔다는 '자해성 인식'과 결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훌륭한 나라'의 대표 격인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개입한 나라들의 역사적 유사성을 찾아보는 것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최근 유혈사태가 벌어진 이집트를 들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선거로 선출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축출당하기 몇 시간 전 한 아랍 국가 외무장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을 '미국의 특사'라고 밝힌 이 외무장관은 입법권과 지방 통치권한을 갖는 새로운 총리와 내각을 구성하는 방안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으나 무르시 대통령은 거부했습니다. 무르시의 외교보좌관인 아삼 엘다하드는 앤 패터슨 미국 대사와 수전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무르시가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전했고, 곧 군부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미국은 아직 '쿠데타'란 표현을 쓰지 않고 군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쿠데타에 저항하는 4천여 명(MBC 8월 15일 보도 기준)의 사람들이 지금 거리에서 군부의 총칼 아래 쓰러지고 있습니다.

1973년 미국의 승인 아래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가진 피노체트의 유혈통치 기간 공식 확인된 희생자만 3197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2002년 4월 베네수엘라 군부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체포 억류하여 군부 쿠데타를 기도했을 때 차베스가 억류되어 있던 오르키아 섬 공군기지에 미국 비행기가 착륙한 기록이 있으며, 쿠데타 동안 베네수엘라 해상과 영공에 미국 함대와 비행 편대가 포착된 레이더 영상이 있었다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2012년 베네수엘라 대선 당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유세 모습
 2012년 베네수엘라 대선 당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유세 모습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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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 전두환의 5·18 광주학살 뒤에 누가 있었으며, 그 권력이 만들어낸 '자해성 인식'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2006년 UN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시가) 평화를 원한다고요? 그렇다면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은 어떻습니까? 중남미와 전 세계에서는 지난 100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또한 베네수엘라에 대한 협박은 무엇입니까?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한 새로운 협박 말입니다."

그리고 부시에게 '악마'라고 소리쳤습니다. 자기 나라에 내정간섭을 일삼는 나라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이지요. 우리는 이러면 안 되는 걸까요?

2012년 8월 30일 이란에서는 비동맹운동 정상회의가 열렸습니다. '비동맹운동'은 1961년에 출범해 120개의 회원국이 있습니다. 유엔회원국의 3분의 2가 회원국이고, 전 세계 인구의 5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채택한 테헤란 선언에는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 권리 보장, 일부 회원국을 겨냥한 강대국의 일방적 제재 비난, 전 세계 핵무기 제거, 인종 차별 금지, 인권 존중,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지지'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나같이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고 이란과 북한을 비롯한 반미 국가들에게 유리한 내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이 미국의 패권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러면 안 되는 걸까요?

하지만 2013년 2월에 웃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림산업이, 이란의 에너지 분야에 대한 상업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미국의 국내법을 위반했다고 미 의회 산하 회계감사국(GAO)이 밝힌 겁니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은 한국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인데도 말이죠. 한국정부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란이 싼 값에 원유 제공을 약속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란 제제에 동참하며 미국 눈치를 보며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민족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것은 '통일'입니다

이제 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가능성을 약화시킨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청산되지 않고, 미군정 통치기간을 통해 반쪽짜리 분단국가가 된 역사의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단독정부가 아닌 자주적인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면 미군이 주둔할 명목도 없고, 그렇게 눈치 보며 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의 열쇠는 분단의 극복과 떨어져 존재할 수는 없겠죠.

우리는 해마다 주한미군 주둔비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쓰고 있습니다. 올해 역사상 최강의 무기라 평가받는 스텔스 핵 전폭기가 한반도에서 모의 핵투하 훈련도 벌였습니다. 그런다고 평화가 지켜집니까? 오히려 불안만 더 커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평화를 지키는 것은 미국의 핵폭탄 폭격기가 아니라 민족의 화해입니다. 우리는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 통일 원칙, 통일 방안, 당면한 중요문제 등 거의 모든 항목에 대해 합의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북한에 대해 '우리 민족'이란 인식을 갖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 "하나는 전체이고 여럿은 하나"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을 통찰하는 안목이 남다름을 느낍니다. 그런데 혹시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를 설명하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우리는 이것을 전체주의 체제 선전이라고 배웠지만 법정스님의 말씀과 놀랍도록 비슷해요. 공통점을 찾는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통일은 온전한 자립적 경제생태계를 마련할 토대를 만들어줄 겁니다. 세계의 미디어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indiansummer(인디언서머)', 'perfect storm(퍼펙트 스톰)' 등의 신조어를 헤드라인으로 올리며 위기의 상시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모면하고 싶어 안달이 난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랑샤프도 "세계경제가 최소 2018년까지 호전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국가부채는 2008년 32조 달러에서 2013년 50조 달러 돌파가 예상됩니다. 2012년 말 GDP 대비 세계 국가부채 비율(67.7%)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1년(66.9%) 이래 60년 만에 최고였습니다. 세계GDP의 40%를 차지하는 미국과 유로존이 세계 부채의 5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살 길을 우리가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의존'의 결과는 '공도동망'뿐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2009년 9월 미국의 골드만삭스가 펴낸 '통일 코리아, 북 리스크 재평가'엔 한반도가 통일되면 G7을 능가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나옵니다. 북한은 국토의 80%에 광물자원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남한은 자원의 95%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북의 광물 매장량 잠재 가치는 7000조 원에 달합니다. 또한 2008년 아미넥스사가 "북한에는 채굴 가능한 원유가 40억~50억 배럴 매장돼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단으로 단절한 경제생태계를 하나로 묶음으로서 우리는 온전한 하나의 자립경제 생태계를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단언컨대 '통일'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억지로 강요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될 수 있습니다. 돈으로는 따질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효과죠. 반민족을 반민족이라 부르고, 민족의 이익과 배치되는 외세의 간섭과 패권을 거부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는 새로운 역사가 열리는 것이죠.

민족의 재발견은 나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입니다. 특히 청년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통일법도 만들고, 통일어 사전도 만들 인재가 필요합니다. 이런 일이 하나 둘 뿐이겠습니까? 그야말로 한국사회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 기회는 청년들의 것이 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예술과철학(주) 연구원입니다.



태그:#블랙리스트, #생각, #철학, #민족, #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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