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긍정성을 넘어서
처음 내가 이숲의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을 읽고 느꼈던 감정은 다름 아닌 불편함이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고 매스컴 역시 떠들썩하게 홍보하고 있었지만, 정작 책을 읽는 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아검열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만 했는데,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탓이었다.
과연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유분방하고, 쾌활하며 호탕할까? 우리가 선량하며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당당하다고? 혹여 지금 이런 나의 의구심은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다행히 저자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자신도 같은 고민을 했노라고 밝힌다.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정체성 운운이 자칫하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음을 그 자신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바, 자신의 글이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았음을 강변한다. '민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타자에 대한 차별은 현재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많은 비극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한국인의 긍정성을 이야기하겠다고 선언한다. 어느 종족의 긍정성에 대한 신화가 가진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잊혀진 긍정적인 모습을 밝히겠다고 한다. 한국인은 우리의 선조이지만, 동시에 강대국에 의해 참모습을 잃어버린 '역사적 약자'로서 그동안 강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어진 정체성을 극복할 때 참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이 과정을 통해야만 일그러진 역사관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조심스럽게 저자가 풀어놓은 변명 아닌 변명을 들어보자.
'민족'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시민의식을 품어야 할 오늘날. 한 종족의 '긍정성'을 끄집어내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일까?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시민상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반추가 이루어진 이후에 더 성숙해진다고 믿고 있다. (줄임) 한국인의 긍정성을 조명해 보는 것은 우쭐대고 싶어서가 아니다. 역사에 묻힌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우리의 자화상에 드리워있던 그늘을 걷어, 우리의 정체성에 유쾌한 자신감을 갖고 싶은 것이다. 결국 저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글이 단순히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획일적인 '민족'의 강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위 식민사관이라는 자학사관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에 필적하는 공동체의 신화를 주장하기 보다는 그 주체들의 입체적인 모습을 조명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의 글 속에 '한민족'이 없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앞선 변명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우리의 정체성을 운운하며 굳이 '민족'이 아닌 '종족' 혹은 '한국인'을 이야기 하는데, 이는 그만큼 저자가 민족이란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구성되는 민족이 아니라 혈연과 언어, 종교, 문화 등으로 공유되는 종족의 다양한 정체성을 파악해야지만 인류사적인 비극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의 폐해문제는 이와 같은 저자의 의견에 대해 많은 이들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위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불편했던 지점은 책 뒷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극찬 때문이었다.
의미있고 재미있는 책을 빨려 들어가듯 읽으며 순박하면서 용감했고, 명석하면서 유연했던 한국인의 '정신적 DNA'를 알게 되어 기쁘다. - 조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류'의 성공은 바로 한국인들의 '개성'과 '영혼'에서 비롯된 것. - 유진룡(문화체육관광부 장관)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그때 떠오른 게 바로 이 책이다. - 전인권(가수)물론 이 책의 홍보를 위해 출판사 측에서 '한민족'의 우수성을 들먹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비록 최근에 와서는 인기가 한 풀 죽은 듯하지만 '한민족'은 월드컵 등 일정한 때만 되면 역시나 많은 사람들을 동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기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서 과도한 민족주의는 분명 지양해야 될 가치이다. 단일민족신화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식민사관에 맞서서 주장되어진 방어기제일 뿐, 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우리를 제외한 타자에 대한 억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3국 노동자와 이민자가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무한 긍정주의는 오히려 우리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부추길 뿐더러 우리의 흘러간 역사를 우리가 왜곡시킬 가능성 또한 높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문제되고 있다. 우리가 뉴라이트나 일본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좀 더 다양하고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예옥 펴냄, 2013년 5월, 360쪽, 1만5000원
* '새로운 역사책 읽고 일본 가자' 공모 응모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