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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1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수도권입니다. [편집자말]
10일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던 날,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앞에는 관광객들과 경찰들과 노동자들로 뒤섞여 있었습니다.
▲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던 날,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앞 10일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던 날,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앞에는 관광객들과 경찰들과 노동자들로 뒤섞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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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지난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날 대한문 앞에서는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덕수궁 관광과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노동자-경찰들과 뒤섞이면서 덕수궁 앞은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같은 시간 덕수궁 담에 붙어 관광객들과 경찰들의 무리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털실을 감고 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실뜨기를 하는 이유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농성장과 강정 해군기지반대 농성장 그리고 밀양 초고압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형형색색 예쁜 실로 짠 조각들을 이어붙여 전해줌으로써 연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덕수궁 앞에서 털실을 짜는 사람들

덕수궁 앞에서 털실조각을 짜서 있는 사람들.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한 켠에 모여앉아 조각보를 짜고 있습니다.
▲ 덕수궁 앞에서 털실조각을 짜고 있는 사람들 덕수궁 앞에서 털실조각을 짜서 있는 사람들.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한 켠에 모여앉아 조각보를 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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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농성장에 등장한 것은 우리 사회 노동현실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정부로 인해 곳곳에 농성장이 생기고, 그곳에 붙어있는 현수막들이 너무 낡아서 흉한 모습이 되는 건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수막을 좀더 예쁘게 치장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여러가지색의 실로 조각을 짜서 농성장 곳곳에 이어붙이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일상에서 하는 털실짜기로 다양한 조각들을 만들어 연대를 표시하는 운동은 1878년 미국 텍사스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여성들의 권리와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남은 털실을 이용해 기둥을 싸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합니다.  이것의 장점은 '일상 속에서, 좀더 쉽게, 평화적으로' 연대하고 행동함으로써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끈질기게 의사표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처음 나와서는 주로 털실을 감고, 30분 정도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는 털실 조각보 짜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 털실을 감고, 짜고, 잇는 사람들 처음 나와서는 주로 털실을 감고, 30분 정도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는 털실 조각보 짜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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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털실조각처럼 직업도 사는 곳도 나이도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털실 코잇기를 매개로 연대의 마음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구름이라는 별칭을 쓰는 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이곳뿐 아니라 남양주 덕소의 2층 까페에서도 매주 월요일 낮부터 저녁까지 털실조각을 짜는 '코잇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고, 마포에서는 매주 수요일 저녁7시부터 삼삼오오 모여 털실짜기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매일미사 전까지 이렇게 모여 '코잇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 뿐이 아닙니다.

"밀양에도 가고 강정에도 가잖아요. 사실 쌍용차 분향소가 있는 대한문 앞은 해고노동자들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큰 장소잖아요. 그래서 이곳을 사랑방처럼 지키며 사람들이 모여서 털실 코잇기를 하고 있어요. 농성장이 불에 탄 이후 마치 노동자들을 폭력배처럼 몰아가는 경찰과 정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달려와서 털실짜기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구름'은 코잇기 작업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 언제라도 마음만 갖고 오면 된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자기가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편한 장소에서 수다를 떨면서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아요. 종종 목공이나 음악하는 분들과 함께 하기도 하구요. 정말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은 털실을 사서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털실짜는 법을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빈손으로 오셔도 됩니다. 현장에서 바로 알려드리면, 금방 배울 수 있거든요."

가로세로 30센티미터 규격의 털실조각보가 참가한 사람들의 다양성만큼이나 여러가지 모양들을 가지고 완성되었습니다.
▲ 털실 코잇기로 짠 조각보들. 가로세로 30센티미터. 가로세로 30센티미터 규격의 털실조각보가 참가한 사람들의 다양성만큼이나 여러가지 모양들을 가지고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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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이렇게 모인사람들이 자신들이 짠 털실조각보를 모아서 제주도 강정마을에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12월 9일부터 일주일간 강정마을에 갈 계획입니다. 현재 100여 명 정도가 곳곳에서 함께 하고 있어요. 그걸 다 모아서 함께 갈 수 있는 분들과 같이 가서 강정마을을 예쁘게 꾸미고 그분들에게 힘을 주려고 합니다.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뜻을 정부에 전하고 싶어요." (참여나 후원과 관련하여 자세한 사항은 관련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roups/knitnose/?fref=ts을 참고하면 된다.)

대한문 농성장 인공화단 지키는 '전라도 병력'

이들 옆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와 '해고자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국정감사'를 촉구하는 시민서명대가 있습니다. 이날은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나와서 서명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덕수궁 구경을 왔다가 사정을 묻고는 "아직도 쌍용차 문제가 해결이 안됐냐?"고 놀라며 서명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국정조사 실시!'등을 주장하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 쌍용차 해고 노동자 시민캠페인 서명대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국정조사 실시!'등을 주장하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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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어두워지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코잇기'를 하는 모임이 마무리 될 즈음 고개를 들어보니 앗! 인공 화단을 지키는 경비대 경찰들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교대를 할 때도 이곳에서 직접했기 때문에, 비워 두는 경우가 없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경찰들이 없으니 그나마 훨씬 깔끔해 보입니다.

털실 코잇기 모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개를 들어보니 앗! 이런 경사가~ 화단경비대 경찰들이 사라졌네요! 그나마 시민들 다니기도 낫고 외국관광객들이 보기에도 훨씬 편할 듯 하네요.
▲ 앗! 경찰 화단경비대가 사라졌어요! 털실 코잇기 모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개를 들어보니 앗! 이런 경사가~ 화단경비대 경찰들이 사라졌네요! 그나마 시민들 다니기도 낫고 외국관광객들이 보기에도 훨씬 편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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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경찰들이 인공 화단을 지키기 위해 왔습니다. 경찰들에게 다가가 굳이 이곳을 왜 지키냐고 물었더니 "뭐 지켜야 할 이유가 있겠지요" 하면서도 자기도 잘 모른다고 대답하더군요. 다른 때에는 말을 붙여도 대꾸도 않고 먼 산만 멀뚱멀뚱 바라보거나 피하던 경찰들이 대꾸를 해줘서 저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어디 병력이냐고 묻자 '전라도 병력'이라고 답하더군요. 이럴수가! 전라도에서 이 인공 화단을 지키러 서울까지 왔다니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이제 날은 어두워지고 '코잇기'를 하던 분들은 자리를 떠났습니다. 급격히 기온이 떨어진 날씨 탓에 턱이 덜덜 떨리는 그 시간, 털실을 잇듯이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사제단이 217일차 매일미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사제단이 집전하는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매일미사가 217일째 열리고 있습니다.
▲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사제단 매일미사 217차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사제단이 집전하는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매일미사가 217일째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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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수녀님들과 신자분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안녕이라고 묻기도 힘든 날들인만큼 서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눕시다. 이 미사는 서로 관심을 갖고 함께 살자는 부활에의 초대자리임을 잊지 맙시다"라고 하시더군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도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어서, 살짝 다가가 매일미사에 참여하는 소감을 물었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무엇보다 변함없이 자리를지켜주셔서 너무 감사하지요. 217일째 하루도 빠짐없이 자리를 비우지 않는 모습들 보면서 요즘 노동자들 집회 모습과 비교돼 부끄럽기도 합니다. 저희가 많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말에 광장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여는데 그쪽에서 마이크 소리가 너무 크고 시끄러워서 저희가 오히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매일미사에 참석한 콜트콜텍기타노동자도 눈에 띕니다. 이날 노동자대회를 마치고 미사에 참석한 것입니다. 콜트콜텍노동자에게도 소감을 물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같이 싸우는 해고노동자들을 볼 수 있고, 반겨주는 곳 아닙니까? 이제 이곳은 노동자들의 성지 같은 곳이 됐지요. 우리 이야기를 널리 알려주는 이런 미사를 매일 진행하시는 신부님, 수녀님, 신자분들께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매일미사에 참석하는 신자의 일갈 "경찰은 똑바로 하세요"

미사가 끝나고 꾸준히 매일미사에 참석하는 신자 한 분과도 말씀을 나눴습니다. 서울 목동에서 오셨다는 아나스타시아(65)님은 연세도 있고 해서 추운 날씨에 힘들지 않냐고 하자 "힘들지 않다. 하느님이 의로운 힘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뜨거운 더위도 추위도 두렵지 않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기억 나는 일은 분향소가 침탈 당했던 날, 너무 화가 나서 정말 '나라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구나 쌍용차 노동자들을 새벽에 들어낸다고 해서 처음엔 거짓말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같이 지내보니 정말 잠자는 사람을 들어내더군요. 이게 경찰이 할 짓인가요? (경찰은) 위에서 시킨다고 그냥 하지말고 정신들 차리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길 바랍니다."

"경찰들은 시킨다고 그냥 할 뿐이라고 말하지 말라. 정신들 차리고 국민들과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이 되라"
▲ 매일미사에 오신 신자분의 일갈 "경찰들은 시킨다고 그냥 할 뿐이라고 말하지 말라. 정신들 차리고 국민들과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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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기사를 쓰고 있는데, 구속 중인 쌍용차노조 김정우 전 지부장( 그는 서울 중구청의 쌍용차 임시분향소 철거작업을 방해한 혐의로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지난 6월 구속됐습니다)에 대한 재판과 관련 석방탄원서를 요청하는 메일이 왔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앞에서 봤던 차별적인 법의 적용과 하소연할 곳 없어 울부짖던 노동자들의 모습이 '국정원을 비롯한 전방위 국가기관의 부정선거개입'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모르쇠로 일관하는 현 정권의 뻔뻔한 얼굴들과 교차돼 떠올랐습니다. 이 정권과 자본과 사법부에 묻고 싶습니다.

"노동자가 죄인입니까?"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를 취재하고 돌아오니 구속 중인 쌍용차지부 김정우 전 지부장에 대한 재판소식과 석방 탄원서를 요청하는 메일을 받고, 그의 얼굴을 그려 보았습니다.
▲ 구속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전 지부장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를 취재하고 돌아오니 구속 중인 쌍용차지부 김정우 전 지부장에 대한 재판소식과 석방 탄원서를 요청하는 메일을 받고, 그의 얼굴을 그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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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쌍용차, #해고노동자, #대한문, #털실 코잇기,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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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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