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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낭송회 '비나리'를 여는 백기완 소장 인터뷰 오는 29일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시 낭송회 '비나리'를 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오마이뉴스>와 만나 시 낭송회를 준비한 이유와 박근혜 정권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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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만난 백기완 소장은 박근혜 정부의 폭압 정치와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음유시인처럼 장단에 맞춰 시를 읊거나, 길거리 투사처럼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다음은 1편에 이어지는 글이다. 

#침대 밑에 숨긴 칼과 '임을 위한 행진곡'

-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사가 이신데요, 이것도 감옥에서 쓰신 글인가요?
"배알이 꼬였어. 감옥에서 놈들이 발길질을 했어. '넌 이제 갔다. 통일운동을 할 수 없도록 허리를 작살을 내겠다'고 말했어. (양손으로 크기를 그려보이면서) 이만큼 탈장이 됐어. 물을 먹어도 밑에서 그냥 흘렀어. 서울대 의대 박사가 나를 진찰하더니, 죽는대. 그래서 4시간30분동안 수술을 했어. 탈장 수술은 30분이면 끝나는 데 배알이 꼬여서 시간이 걸렸어. 그 때에 병실에 누워서 천정에 입으로 시를 새겨 넣었어. 나는 죽지만 '산 자여 따르라'고. 이게 묏비나리야. 이걸 의사에게 글로 써서 줬어.

그 뒤에 자꾸 저 놈들이 찾아와서 병실을 뒤지더라고. 누군가가 내 시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거야. 난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 그 때 난 침대 밑에 항상 칼을 놓고 있었어. 휘두를 힘은 없지만 전두환이 오면 찔러 죽이려고 했어. 그 놈들이 자꾸 뒤지면서 숨겨놓은 칼을 다 가져갔어. 난 다시 칼을 챙겨서 넣고... 1982년도에 강연을 했는데, 그게 끝나고 기독교 청년 3천명이 그 노래를 부르더라고. 그 때 누가 와서 귀뜸을 했어. 광주인가 어디에서 내 시를 짜깁기해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이야. 님을 위한 행진곡은 묏비나리의 일부야. 이번 시낭송회 때 읊을 거야."

'백기완 비나리' 행사는?
백기완 소장은 29일 열릴 '비나리' 행사에서 <바랄 꽃> <서돌(=짓밟힐수록 꺼지지 않는 불씨)> <한 자락 시여 한 바탕 노래여> 등 열두 편의 자작시를 낭송한다. 송경동·심보선·진은영 등 후배 시인들은 연대 시를 낭송하고, 민중가수들의 연합공연도 열린다. 또 정희성·김형수·안상학·김선우·김민정 등 시인 80여명의 저항시를 모은 시선집 <우리 시대의 민중비나리>(가제)가 출간될 예정이다.
- 최근에는 이 노래가 5·18 행사장에서도 옥신각신 하면서 핍박받고 있습니다.  
"노래만이 아니지. 이 땅의 무지렁이들의 전형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야. 그 중에서도 가장 억압받는 세력은 노동자야. 억압만 받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갖는 '알기'(주체, 중심)까지 뽑아가려고 해. 알기가 뭐냐하면... 강원도나 경상북도 동해안에 가면 할아버지들이 조그마한 배로 고기잡이를 나가. 한 20~30리쯤 되지. 그 할아버지들은 배타고 나갈 때 대관령의 묏뿌리나 바윗덩이를 알기로 정해. 가운데 알기는 곧은 알기, 양쪽 옆에 있는 건 옆 알기야. 고기 잡고 들어올 때도 그걸 보고 들어오지. 즉, 알기는 중심이자 주체야. 노동자는 생산의 알기일뿐 아니라 역사의 알기야. 

그런데 요즘은 3가지 방면에서 노동자들이 해체되고 있어. 돈벌이, 다시 말해 돈의 축적만이 역사의 알기고 진척이라고 믿게 한단 말야. 두 번째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몽땅 다 죽이고 있어. 민주화 과정은 역사의 진보과정이야. 변혁 과정이야. 보통 선거제도는 싸움을 통해 얻어냈어. 자유, 민주, 인권, 해방, 통일을 박근혜 정부는 완전히 죽이고 있어. 세 번째는 사람의 문화를 죽이고 있어. 잘 입고 잘 먹고 놀러 다니는 것을 행복이라고 내놓았어. 진정한 희망을 죽이고 있는거지. 한국판 파시즘이야. 내가 시낭송의 밤을 하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야. 비나리가 갖는 예술적인 장점을 체험하도록 해주고 싶어."

#내 것, 네 것의 식민지

- '저항의 알기'도 있을텐데, 노동운동, 사회운동, 진보정당운동 등 전반적으로 기운이 빠져있습니다(송경동 시인 질문).
"희망과 꿈이라는 말이 있지. 변증법적으로 하나로 만든 낱말이 있는데 그걸 '바랄'이라고 불러. 꿈을 꾸던 놈은 목숨을 걸고 노력하고 싸우지 않으면 죽어. 기운이 빠진 것은 그 바랄이 뭔지 몰라서 그래. 두 번째로 인류 문화, 땅별 지구가 망하는 건 돈이 주인이 돼서 그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돈의 똘마니가 됐잖어. 셋째는 땅별 어느 구석에 내것네것 아닌게 있나? 유식한 말로 사적소유지. 갈기갈기 찢어져서 내것네것의 식민지가 됐어. 이걸 바로잡으려면, 책? 경전? 필요 없어. 싸움의 현장에서 이론적인 모순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싸움의 과정에서 사람의 인품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우쳐야 하는 거야.

일하는 사람들의 착한 바랄을 '다슬'이라고 해. 땀을 흘려보면 땀이 땅에 떨어지잖아 그건 내 것이 아냐. 땅의 것이야. 한줌 거름이지, 내 것이 아냐. 두 번째로는 땀이 빚은 열매도 내 것이 아냐. 땀의 것이야. 땀은 한 점 거름이고, 땀이 맺은 열매는 땀의 것이야. 자연의 것이지. 땀은 실체가 없잖아. 이걸 가지고 땀 흘린 사람의 것이라고 말하면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것이야. 진짜 문화 혁명이 일어나야 해."

- 요즘 진보진영도 쪼개지고 있습니다. 어르신으로서 쓴소리를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진보주의자는 맑고 밝고 그리고 진짜 쓸모가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사람들의 손금처럼 약간의 차이가 있어. 미국 놈 앞잡이, 돈 앞잡이, 부정부패 앞잡이가 아니라면 진보진영은 갈라질 까닭이 없어.

진보를 우리말로 하면 '아리아리'라고 해. (책상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춰가면서) '아리 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뚜당 땅따다다다~.' 아리란 말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을 없으면 길을 낸다는 말이야. 이게 진보야. 이걸 반대할 놈 없잖아. 그걸 분명히 알면 갈등이 내재적으로 극복돼. 자본주의는 사람을 끊임없이 파편으로 만들어서 노예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창조적 노동자의 알통이 있으면 돼. 노동자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서 나오는 신바람만 있으면 돼."

#가진 게 '이' 밖에 없는 놈들끼리 싸우면 코피만 터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젊은이들에게 "세상의 모순과 어둠의 장막을 꿰뚫어 볼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젊은이들에게 "세상의 모순과 어둠의 장막을 꿰뚫어 볼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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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시인은 가끔 자문자답을 했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뜻이다. 그는 어렸을 적 친구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친구와의 기막힌 이별 이야기이자, 지금껏 자신을 지켜온 버팀목에 대한 사연이다. 

"관악산 밑에서 머슴을 살던 사람이 내 어릴 적 동무였어. 1년에 쌀 반가마니 받았어. 나보다 몇 살 위인 그 친구는 먹고 자고 일만하는 친구인데 이름은 모르겠어. 별명을 '덧이름'이라고 하는데 훌쩍이야. 그 친구는 내가 돼지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대도 사투리)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무를 팔아서 고기 한 점 사줬어. 자기 안 먹고 나한테만 먹으라면서 소원 풀라고...

그런데 6·25 전쟁 때 나가서 죽었어. 남의 집 머슴 살면서도 나에게 돼지 고기 먹이고 싶어했던 그 친구가 하루 아침에 죽었어. 전쟁 나가기 전에 나한테 물어봤어. '기완아, 어떻게 하면 머슴살이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 그래서 내가 대답했어 '형의 몸에는 지금 사슬이 없잖아. 형은 집도 없잖아, 갈 데도, 먹을 데도 없잖어. 여기 남아 있어도 지금처럼 살아야 하잖아. 어딜가도 마찬가지야. 사슬은 내 발목에 있는 게 아냐. 그걸 끊어.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날 나를 꼭 끌어안고 잤어. 머슴에게 사슬을 끊으라고 했던 내 말, 난 아직도 그걸 간직하면서 살고 있어. 지금도 힘이 들 때마다 그 동무를 떠올려."

마지막으로 백 소장에게 즉석에서 시낭송을 부탁했고 '아 나에게도'라는 제목의 시를 읊기 전에 한마디 했다.

"사람이란 많은 데서도 혼자야. 그러면서도 여럿이 같이 있는거야. 이중적이지. 나도 그래. 오래 살아보니 여럿이 같이 있는 것 같아도 혼자 남아있다고 느낄 때가 있고, 또 그 반대일 때도 있어. 이 시는 그런 마음일 때 쓴 거야. 이 시를 읊으면 '선생님도 이렇게 야들야들해질 때도 있냐'고 묻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부끄럽지 않아. 사람이 뭐 대단한 것 아니잖아."

백기완은 누구인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시낭송을 듣고 난 뒤에 '백 소장이 스승으로 삼고 있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백범 할아버지나, 몽양 선생이 나의 스승이 아니냐고 물어오기도 하는데, 그렇지는 않아. 무지렁이 중에 딱 한 사람이 있어. 언젠가는 그의 색인돌을 새기려고 해. 서울역 건너편에 땅 3평만 사면 돼. 어떤 사람이냐하면... 1946년 겨울이었어. 16살 때지. 나랑 같은 거지인데, 그 새끼가 날 마구 놀리는거야. 내 몸에서만 이가 나왔다는 거지. 자기도 거지고 나도 거진데 그게 말이 되냐고. 그 놈이 나를 톡톡 박더라고. 내 코피가 터졌어. 그런데 내가 씨름을 하거든. 그 놈을 버쩍 들어서 메다꽂고, 때리려고 하는데 누가 나를 툭쳐서 돌아보니 '가대기'(서울역 짐꾼) 형이야.

키가 180미터정도 돼. 그의 아버지는 독립군이었는데 초등학교 입학도 못하고 병들었던 엄마가 죽은 뒤에 지게로 짐을 져주고 몇 전 받는 사람이지. 이름은 몰라. 그 형한테 내가 '형! 내가 이놈 이겼지?'라고 자랑스럽게 물었어. 그런데 그 형은 '야 임마! 가진 것이라고는 이밖에 없는 놈들끼리는 싸우면 코피만 터져. 싸움은 가진 놈들, 나쁜 놈들하고만 하는거야!'라고 말하면서 풀떡 한 개 사주더라고. 그 때는 기분이 나빴는데, 그 형이 항상 생각나. 그 형이 김두환과 맞짱 뜨는 것을 봤는데, 두환이가 '형님'이라고 해서 살려줬어. 그 뒤에 김두환 패거리들이 빨갱이라고 몰아서 잡아갔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끌려간 뒤에 지금까지 안돌아오고 있어.

'가진 것이라고는 이밖에 없는 놈들끼리는 싸우면 코피만 터져. 임마! 싸움은 가진 놈들, 나쁜 놈들하고만 하는거야!' 이보다 더 좋은 시가 어디 있어."


태그:#백기완, #비나리, #시낭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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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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