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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1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지역은 수도권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프랑스기업연합회(MEDEF)에서 열린 한-프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프랑스기업연합회(MEDEF)에서 열린 한-프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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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 파리에서 연설을 했다. 프랑스 경제인들은 박 대통령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을 한국 정부가 비준함으로써 프랑스 자본에 도시철도 시장을 비롯한 한국 철도시장 진출을 약속했다.

대통령의 철도시장 개방 연설 직후 서울에서는 국무회의가 열려 대통령이 국외 순방중임에도 WTO GPA를 의결했고, 15일 박 대통령이 재가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논의와 토론 생략한 박근혜 정부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협정을 국회 동의 없이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WTO GPA 협정안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야당과 시민사회 단체의 요구를 무시하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WTO GPA에 대한 재가를 강행했다. 4일 프랑스에서의 대통령 연설과 5일 국무회의 의결에 이어 15일 대통령 재가 절차까지, 어떤 사회적 논의나 협의 과정도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21일 국회에서 긴급 토론회를 열었고,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의 재가 결정을 연기하고 국회에서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열차가 이미 떠난 지도 모르고 승강장에서 기다렸던 꼴이다.

WTO GPA는 WTO설립 협정에 부속된 무역협정 중 하나로 그동안 자유무역 대상이 아니었던 정부조달 부분까지 자유무역 대상에 포함시키는 협정으로 세계 40여 국가가 가입되어 있다. 자유무역 시장은 보호무역 장벽을 철폐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민간이 지배하는 영역에 국한되었었다. 이에 반해 정부조달 부분은 그동안 민간의 영역이 아니었기에 자본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남은 거대 블루오션이었다. 이 부분의 시장화는 공공부문 해체를 필연적으로 가져오고 그만큼 사회의 공익적 기능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KTX 민영화 반대 3차 범국민대회가 지난 10월 26일 노동자, 시민단체, 정당인 등 4000여 명(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2서울역에서 열렸다.
 KTX 민영화 반대 3차 범국민대회가 지난 10월 26일 노동자, 시민단체, 정당인 등 4000여 명(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2서울역에서 열렸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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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안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물품조달 및 서비스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다. 특히 철도부문과 관련해서는 이미 개방된 철도공사에 더해 철도시설공단의 철도시설의 건설 및 조달, 설계, 엔지니어링, 시설의 감독, 시설의 관리(정부 발표는 경영이었으나 논란이 불거지자 관리로 바꿈)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추가로 전국의 지하철 분야까지 개방 대상이 되었다. 이번 협정으로 철도산업의 전 분야를 완전히 개방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갈수록 철도 투자를 넓히고 각 지자체 마다 새로운 지하철이나 경전철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도로 위주의 교통 정책이 초래하는 에너지, 환경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익성을 최우선으로 담보해야할 대중교통 체제에 시장 논리가 개입하고 외국 자본이 고착화되면 어떻게 될까? 시민을 위한 사회 기반 시설이 거대 자본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 나아가 대륙 철도의 연결까지 꿈꾼다는 마당에 철도의 시장화는,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대륙철도 연결 사업을 국내외 자본의 이권 보장 사업으로 변질시킬 여지가 크다.

정부는 철도 분야 조달 시장의 개방을 통해 연간 600억 유로에 이르는 유럽의 철도 조달시장에 안정적으로 참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 철도 산업의 경쟁력을 모르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세계 철도시장은 봄바르디어, 알스톰, 지멘스 등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있는 선진국들의 독무대다. 특히 규모의 경제 효과를 살릴 수 있는 유럽, 일본, 중국 등의 철도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반면 한국은 변변한 중소기업 집단조차 없는 상황에서 외국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대기업 현대로템은 세계 철도 차량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고속철도 분야는 전혀 진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반 철도 분야에서 겨우 2.5%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철도 후진국으로 오해하는 중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한국 철도의 우울한 미래

굳이 조달협정이 아니더라도 한국 철도는 많은 부분을 외국의 차량이나 시스템을 수입해다 쓰는 실정이다.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해외시장에서 경쟁을 해볼 만한 위치에 있는 산업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양산업의 길로 내몰려 외면 받았던 부분이 철도다.

국내에 외국 기업이 들어오면 한국 철도 산업의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이 막히고 장기적으로는 외국 자본의 만성 하청기업 역할을 벗어 날 수 없다. 철도는 신호, 차량, 운영 등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시설이나 제품을 양도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기술 관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철도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 아래 보호·육성되어야 할 때이지 막무가내식 개방으로 발전의 싹을 밟을 때가 아니다.

정부조달 시장의 자유 무역화는 소유권을 매각하는 직접적인 민영화 방식을 탈피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부문의 해체를 가능하게 한다. 협소한 한국 철도망에서 수서발 KTX를 추진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조달시장 개방에 따른 외국 기업의 진출 기회를 더 확대시킬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KTX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KTX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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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효율화란 명분으로 수서발 KTX 신설 법인이 설립되면 민간자본들이 투자하기 딱 알맞은 규모가 된다. 국토부는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의 자회사로 출범시키겠지만 절대로 철도공사의 경영 간섭은 없도록 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수서발 KTX의 효율적 경영을 위해서도 부당한 경영간섭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서발 KTX 신설법인 경영진이 외부 감독이나 간섭 없이 사업 분야 별로 아웃소싱을 하면 얼마든지 민간 기업들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열린다.

WTO GPA는 필연적으로, 한국 철도를 공공기관의 외피를 썼지만 상업적 고려에 따라 작동되는 체제로 만들 것이다. 이미 국토부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용역보고서를 근거로 사업분야를 핵심업무와 비핵심업무로 나누어 하청 및 아웃소싱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다.

또 수서발 KTX 신설법인은 모기업인 철도공사의 경영을 어렵게 하는 주원인이 될 게 뻔하다. 정부 발표 대로 2016년 독립된 고속철도 법인이 수서발 KTX 운영을 시작하면, 서울 강동이나 강남권을 비롯해 서울 동남부와 인접한 경기지역의 이용객들이 수서역을 이용하게 돼 기존 KTX 이용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줄어드는 철도공사의 매출액은 연간 4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지난 몇년간 지속적으로 영업적자를 줄여왔던 철도공사는 만성 적자를 해소할 길이 막힌다. 거의 유일한 흑자 구간인 경부선 KTX구간의 수익이 줄면 지방 교차 보조길도 막히게 된다.

국토부가 올해 밝힌 '철도산업발전방안'에서 예견한 대로 철도공사가 경영상 문제로 지방선 운영권을 반납하는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다. 국토부는 철도공사가 운영권을 반납하는 노선에 대한 민간 개방을 천명했다. 철도공사의 자연사를 유도해 국내외 자본에 철도산업 진출의 길을 열어주는 일을 정부가 앞장서서 하는 꼴이다.

모든 것을 시장에 넘기면 국가가 할 일이란 무엇일까?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건실한 공기업과 이를 통해 제공되는 양질의 공공서비스가 필요하다. 효율성이라는 하나의 잣대만으로 공공부문을 평가하고 재단하면 거대 자본과 그 투자자들이 얻는 이익만큼 시민들의 권리는 박탈당하고 만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입니다.



태그:#철도, #박근혜, #정부조달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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