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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공기 속에서도 숨통이 뻥 트이는 곳, 이집트

거꾸로 뒤집어 놓은 물병과 벽에 걸린 갈라베야(아랍 전통 복장)에서 이집트의 느낌이 물씬 난다.
▲ 이집트의 골목 풍경 거꾸로 뒤집어 놓은 물병과 벽에 걸린 갈라베야(아랍 전통 복장)에서 이집트의 느낌이 물씬 난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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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에도 표정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집트의 표정은 당연히 '스마일'이다. 그리고 그 '스마일' 속에서 행복하게 정처 없이 헤매는 우리의 입에서는 외마디 탄성이 끊이질 않는다. 이 도시는 살아 있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누구나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긴장하거나, 싸우거나, 화가 나거나, 웃거나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감정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금지' 당하고 있었다.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감정을 숨겨야 했고, 남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곧 자신의 약점이 될까봐, 우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할 감정의 표현에서도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했고 '이성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언제나 이집트에서 사람들의 감정은 극과 극을 달렸다. 미치게 행복하거나, 멱살을 쥐어뜯고 싶을 만큼 미치게 화나거나(그래서 이 나라에 대한 평판도 극과 극이다). 이집션들은 언제나 매 순간의 자신에게 충실했다. 화가 나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그 싸움이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그들은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슬라믹 카이로의 거리 풍경.
 이슬라믹 카이로의 거리 풍경.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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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집트에서는 행복의 끝을 달리며 온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을 때에도, 설령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괴물이 된다 해도 나는 그저 나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소모하고 나면, 언제나 내면은 다시금 차분히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음 것에 또 고스란히 마음을 쏟을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조울증 환자란 말은 아니다. 다만 잊고 싶은 감정들을 얼른 털어버리는 데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뿐. 

사실 뭐랄까, 그렇다고 해서 서구 문명에서의 개방된 '자기표현'의 문화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집트는 어쨌든 이슬람 국가이고, 길거리에서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손을 맞잡고 다니거나,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제 집이 아닌 곳에서 입을 맞추는 일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집트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 표현의 자유로움은 아마도 매 순간마다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얼굴에 담아내느냐 아니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요즘 유럽과 한국 등 대부분의 나라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지만 그것은 "내가 길거리에서 뭘 하든 이건 내 사생활이니까 너넨 신경 꺼"라는 개인주의적 자유라면, 이집트에서의 자유는 사회에서 정한 규범을 해치지 않고 그들의 삶과 본능에 충실하게 대응하는 그들의 자유로운 마음이었다. 그들의 얼굴만 보아도 모두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지금 난 행복하니까, 웃을 거야" 혹은 "지금 난 무지 화가 났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서라도 싸워야겠어"라고 말이다.

아마 그래서 이집트는 봐도 봐도 매일이 다르고 또 질리지 않는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매초 시시각각 다른 표정으로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들이 있어서 말이다. 유적은 언제나 그곳, 그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사람은 매일 변한다. 그래서 내게는 수만 가지 표정을 지닌 이집트란 나라가 그리도 좋았던 것 같다. 

집 밖으로 몰래 우리를 구경하다 올려다보자 냉큼 숨어 낄낄거리던 소녀들.
▲ 카이로의 소녀들 집 밖으로 몰래 우리를 구경하다 올려다보자 냉큼 숨어 낄낄거리던 소녀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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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옆에서는 운전대만 잡으면 한국인들보다 더 성질이 급해지는 이집트 사람들이 고막이 찢겨 나갈세라 쉬지 않고 경적을 울려댔다. 이곳저곳 우리의 카메라가 향하면,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는 급히 히잡(이슬람에서 여성의 머리를 가릴 때 쓰는 스카프)을 잡아당겨 단단히 여미고서 후다닥 지나가기 바쁘고, 장난기 많은 사내아이들은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하교 중이던 소녀들은 낄낄거리며 서로를 밀고 당기며 친구 뒤에 숨기 바쁘고, 바닥에 앉아 잡동사니를 파는 무슬림 아저씨는 그저 빤히 나를 쳐다만 본다.

일상에서 가슴이 두근두근 벅차오르는 이 느낌. 누군가의 생생한 삶의 날숨이 그대로 내게 와 닿고 당신의 삶과 나의 삶의 경계가 없어지는 이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이보와 내가 감탄을 내질렀다.

"I , LOVE, EGYPT!"(난, 이집트가, 정~말 좋아!)

그리고 이 말은 그 이후 삼 주 내내 우리 둘이 하루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이슬람 사원이 가득한 이곳, 여기가 진짜 카이로지!

설레는 마음을 달래 시타델로 갔다. 아쉽게도 시타델로 가는 지하철은 없기에, 우리는 우선 타흐리르 광장의 교통지역을 벗어나 그나마 가깝고 헌책 시장으로 유명한 아타바역까지 이동한 뒤 택시를 타기로 했다.

시타델이 있는 이슬라믹 카이로는 카이로를 구분할 때 나누는 큰 지역 중 하나이다. 그곳에는 오래된 마스지드(이슬람 사원)가 즐비했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복잡한 시장이 있었다. 말하자면, 카이로의 속살 같은 곳이었다. 진짜 이집트를 만날 수 있는 곳.

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슬라믹 카이로는 300개가 넘는 이슬람 시대의 역사 건축물이 존재하며 그곳을 유유히 지나는 전통 옷을 입은 사내들과 여인들을 유독 자주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사원 세 개가 모여 있는 곳, 중동 최대 규모의 전통 시장이 있는 곳, 무덤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있는 죽은 자들의 마을까지.

우리는 우선 시타델을 둘러본 뒤 다른 사원들을 보기로 했다. 모까땀 언덕 위 높은 성채(Citadel)는 십자군의 침략으로부터 카이로를 지키기 위해 세운 십자군의 영웅 살라딘이 세운 것이다. 이 성채를 짓기 위해 그들은 기자에 피라미드에서도 돌 일부를 가져왔다고 한다. 위에 지어진 아름답고 거대한 모스크, 바로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다.

외부의 모습이 터키의 블루모스크와 닮았다.
▲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 전경 외부의 모습이 터키의 블루모스크와 닮았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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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근대화의 아버지 무함마드 알리 통치 시절에 착공된 이 아름다운 모스크는 터키의 블루 모스크에서 외형을 따왔는데, 사실 그 모습에는 당시 오스만 터키로부터 독립을 하려던 알리가 술탄(군주)만이 세울 수 있다는 두 개의 미나레트(첨탑)을 세움으로써 술탄의 권력에 도전하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었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외관만큼이나 사원의 내부도 아름답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안마당에서부터 방문객들은 신발을 벗거나 신발 위에 일회용 슬리퍼를 구매한 뒤 착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실내에 발을 디디면 처음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는 조그만 무엇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는 이슬람 사원과는 따로 만들어진 듯한 스타일의 시계탑이 있는데, 처음 것은 기도 전 몸을 정결히 하기 위해 무슬림들이 몸을 씻는 곳이고, 그 뒤의 시계탑은 프랑스 왕 루이 필립이 이집트가 오벨리스크를 선물한 데에 대한 보답으로 1846년에 선물한 것이다.

앞에 보이는 것이 몸을 씻는 장소, 가려서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보수 공사중인 시계탑이 보인다.
▲ 사원 내부 앞에 보이는 것이 몸을 씻는 장소, 가려서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보수 공사중인 시계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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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로 들어가면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무함마드 알리의 관이 있고 실내는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수많은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 끝이 어디인지 보일락 말락 하는 천장을 보고 있노라면 목이 아파오고, 그렇다고 벌렁 드러누울 수도 없는 신성한 모스크에서 목이 아파지는 걸 참아가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

뽀글뽀글 머리가 귀여운 아이가 방실거리며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한껏 신난 표정이다. 우리에게 오려다가, 또 멈추다가를 반복한다. 엄마와 아빠는 그저 우리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돔 지붕, 샹들리에가 인상적이다
▲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의 내부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돔 지붕, 샹들리에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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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 카메라에 외관을 담고 성곽을 둘러보는데, 사원 맞은편 성벽 쪽으로 가니 카이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뿌연 스모그 저 너머로 어렴풋이 피라미드도 보인다. 내 시야를 꽉 채우는 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먼지 색 집들, 그리고 그 사이로 비죽이 솟아 있는 수천 개의 사원들이다. 탁한 공기와 탁한 풍경이지만, 아름답다.

여전히 뿌연 매연과 그 빽빽한 건물들, 그리고 너머로 보이는 피라미드가 아름답다.
▲ 시타델에서 바라본 카이로 여전히 뿌연 매연과 그 빽빽한 건물들, 그리고 너머로 보이는 피라미드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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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내려와 박물관에 들르기 전 대충 자리를 잡고 화단에 걸터앉아 아까 사온 케이크를 먹었는데 그야말로 꿀맛이다. 우물우물 씹는 우리의 세 얼굴에 행복이 가득 어렸다. 그때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사원 내부만 아니라면 시타델 내부에 음식물 반입이 금지인 건 아니었는데' 하고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는데, 5시에 폐장이라며 얼른 왔던 길로 돌아가란다. 시계를 보니 4시 45분이다.

길을 따라 나오는데, 이보가 우리를 흘끗흘끗 쳐다보던 이집션 가족들에게 자연스레 인사를 건넨다. 출구까지 나가는 10분 정도의 길을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알렉산드리아에서 놀러 온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주에 알렉산드리아에 갈 예정이라고 하니, 아저씨께서 전화번호까지 건네주시며 자기네 별장이 하나 있다며 거기에 머물라고, 저녁에 초대하고 싶다며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세상 어딜 가나 누군가를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차고도 넘치는 마음과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알렉산드리아 가족은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꼭 방문해달라며 몇 번을 거듭 말한 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그렇게 또 카이로 시타델은 우리에게 '알렉산드리아 가족'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가슴에 남았다.

이집트에서 한 번쯤은 미니버스를 타보세요

낡은 집과 그 아래에서 쉬는 고양이가 유독 많다.
▲ 이슬라믹 카이로의 골목 낡은 집과 그 아래에서 쉬는 고양이가 유독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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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지 않고 언덕 아래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이집트에서만 맡을 수 있는 이 공기의 냄새! 검은 코딱지 따위는 기꺼이 감수하리라! 어느덧 눈앞에 시장이 보였다. 낡은 골목과 담 아래에서 고양이들은 늘어지게 잠을 자기 바빴고, 부지런한 목수는 열심히 가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수공예품에 유독 관심이 많은 이보가 가게에 들어가 연락처를 묻는 사이 나는 카메라를 꺼내 풍경을 담았다. 매연이 가득한 공기를 뚫고 옥수수 굽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이슬라믹 카이로 지구에는 유독 오래되고 간판도 없는 수공예 가구집들이 즐비하다.
▲ 수공예가구들 이슬라믹 카이로 지구에는 유독 오래되고 간판도 없는 수공예 가구집들이 즐비하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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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니버스들이 줄줄이 도착하고, 어린 소년은 목이 터져라 행선지를 외쳐댔다. 사람들이 버스를 가득 메우면 차는 떠났고, 곧이어 더 낡은 버스가 도착했다. 도대체가 정신을 못 차리겠다. 어떤 이들은 그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포즈를 취하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낡은 히잡을 두르신 할머니는 내 옷깃을 붙들며 무화과를 사달라고 하셨다.

버스기사들은 우리가 어딜 가는지 궁금해 자신들의 행선지를 더 크게, 정확하게 외치며 우리를 향해 이리로 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때 나흘라가 말했다. 그 복잡하고 정신없는 소음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크게, 우리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집트가, 정말 좋아!"

이집트에 도착한 후 지난 삼 일 동안, 조증 환자처럼 들떠 있던 나와 이보에 비하면, 나흘라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이집트를 탐색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 나쁜 남자 같은 나라에 마음을 내어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자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내가 가장 걱정했던, 이집트에서도 가장 정신없고 이집트스러운 장소에서, 이집트를 사랑한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그때 나도, 이보도 모두 알았다. 그녀도 우리가 보고 있었던 이집트를 보아 버렸다는 것을.

그때, 한 미니버스에서 안경을 낀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내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아주 완벽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뭐 제가 도와드릴 것이 있나요?"

그의 눈은 짙은 밤색이었고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신뢰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칸엘칼릴리 시장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고 그 대답은 우리에게 백만 점짜리 대답이었다.

"I live around there, If you don`t mind to take local bus, you can go with me. I will take you to there."(저는 그 주변에 살고 있어요. 미니버스도 괜찮으시다면 저랑 같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될 것 같아요.)

여행을 할 때 우리의 원칙은 최대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과 이동 방법을 택하는 것이었다. 이집트 최남단 도시들 중 하나인 룩소르나 아스완을 갈 때는 규정상 외국인 전용 침대열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언제나 가장 로컬다운 이동 수단을 택했다. 그래야 현지인들과 더 쉽게 접촉할 수 있었고, 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들이 아닌 이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주로 번호판이나 행선지가 쓰인 버스를 찾는 것이 힘들었고, 일단 로컬 버스들 또한 모두 흰색 승합차일 뿐, 차장들이 외치는 장소의 이름을 듣고서 탑승해야 했다. 게다가 그 행선지들의 이름은 로컬 버스답게 대개 관광지역이 아닌 일반 동네들의 이름이었기에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리는 만무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껏 한 번도 로컬 버스를 타보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의 대답이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렁차게 답했다.

"Of course we want!"(당연히 좋고말고요!)

견과류를 좋아하는 이집트 사람들은 이렇게 길거리에서 볶은 견과류들을 사 먹는다.
▲ 버스와 노점상 견과류를 좋아하는 이집트 사람들은 이렇게 길거리에서 볶은 견과류들을 사 먹는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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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만난 나흘라의 가짜(?) 남자친구

우리가 타자,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년의 이집션 아저씨들이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특히 나와 나흘라를 위해 멀미가 나지 않도록 정방향으로 나 있는 두 자리를 내주시고는 무슬림 특유의 배려심을 발휘해 낯선 남자가 옆에 앉는 것이 불편할까봐 우리 옆자리까지 이보에게 내어주신다. 우리도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칼리드에요. 대학생이고, 건축을 전공하고 있죠. 이집트엔 얼마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은지 몰라요. 물론 피라미드, 수많은 이슬람 사원들, 유적들, 저 멀리 아스완, 룩소르에 있는 고대 이집트 신전들까지도. 하지만 나는 카이로 곳곳에 숨어있는 진짜 보석 같은 장소들을 알아요."
"반가워요 칼리드. 난 이보라고 해요, 체코 사람이에요. 여기는 소피, 한국에서 왔고 2년 전 이집트에서 살면서 이 나라와 사랑에 빠져서는 결국 요르단에서 이곳까지 우리를 끌고 온 장본인도 바로 이 친구죠. 아마 당신보다 더 이집트를 사랑할 거예요. 맨날 자기 심장만은 메이드 인 이집트라고 말하는 친구니까. 그리고 이 친구는 나흘라, 대만에서 왔어요. 이런저런 사연으로 이 친구를 우리는 'Granny(할망구)'라고 불러요. 나중에 그녀가 웃을 때 웃음소리를 꼭 귀 기울여 들어보면 이유를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을 만나기 십 초 전쯤 이집트와 막 사랑에 빠졌죠. 그리고 우린 모두 요르단의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고, 지금은 여행 중이에요."

친절하게도 이보는 우리의 소개까지 깔끔하게 끝마쳤다. 마주 앉은 칼리드를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민 머리 위로 조금씩 자라 있는 머리카락들, 얇은 금속테의 안경, 건장하고 큰 체구, 담백해서 신뢰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그리고 전공인 건축까지. 칼리드는 나흘라의 남자친구인 하산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나흘라와 나는 그를 언급할 때 언제나 '이집션 하산'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나흘라가 한 마디 내게 속삭이며 덧붙인다.

"근데 나의 달링 하산이 더 잘생겼어."

휴, 아무렴 어련하겠는가. 그때 진짜 하산보다 조금 덜 잘생긴 이집션 하산이 물었다.

"여러분들과 만나게 되어서 신께 감사해요. 알 함두 릴라(알라에게 찬양을). 시간이 있다면, 내가 카이로에서 가장 사랑하는 오래된 사원들과 골목들을 보여줄 기회를 주지 않겠어요? 론리플래닛에도 나와있지 않은 곳들이지요. 난 이곳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아, 물론 현지인들이 아니라면 절대 찾을 수도 없을 거예요. 길을 잃기 십상인 미로 같은 곳이거든요. 하지만, 당신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분명 좋아하게 될 거예요."

그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 그리고 상대에게 신뢰를 주는 예의 그 눈빛. 이미 우리 셋은 그의 달콤한 제안에 홀딱 빠져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내 심장은 다시 뜨거운 설렘으로 뛰어왔다.

여행 팁

* 시타델(무함마드 알리 모스크) 가는 법 : 아타바(ATTABA)역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이므로 미터기가 달린 흰 택시보다는 검은 택시를 타기 전 미리 흥정을 한 뒤 탑승하는 것이 낫다. 가격은 먼저 택시기사가 부른 가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장 밀릴 때를 가정해 최대 25파운드 정도. 평균 15~20파운드 정도를 생각하면 좋다(이집트 파운드 환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분명한 것은 30파운드 미만).

국제 학생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시타델 입장권을 할인받을 수 있으며, 무함마드 알리 사원 말고도 군사 박물관과 경찰 박물관이 있는데, 그중 군사 박물관은 북한이 지어준 것이다. 그 외 이런저런 볼거리들이 많고 전망이 좋으므로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헌책 시장으로 유명한 아타바에서 시장을 둘러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헌책 시장은 지하철 출구와 맞닿아 있다.


태그:#카이로, #이집트, #이슬라믹 카이로, #무함마드 알리 사원, #시타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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