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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돌봄 및 가족지원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돌봄 및 가족지원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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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아들과 함께 묻어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비정한 아버지 얘기로 한동안 세상은 떠들썩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뉴스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세상은 연일 터지는 사건 사고와 뉴스로 이내 다시 덮였다.

열일곱의 다 자란 아들을 아빠가 목 졸라 살해하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했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버지는 얼마나 비정하고 저주 받은 인생이었기에, 자신의 피붙이를 목 졸라 살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필자는 어머님의 임신중 약물 오용으로 인한 염색체 변이로 선천성 시각장애와 심장장애, 그리고 심한 치아 이상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필자의 자식들에게도 아비의 천형을 그대로 물려주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자식들 또한 같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게 됐다. 특히 아들은 지적장애, 언어 및 청각장애, 그리고 시각장애와 더불어 심한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고 따라갈 수밖에 없는 아비의 아픈 마음을 진하게 공감한다.

내 아들의 지적 수준은 3.5세의 유아 수준이고, 공격성 과잉행동을 보여 집에서는 그 누구도 녀석을 통제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필자 또한 아들의 심한 발작성 돌발 행동 앞에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 아들의 목을 감아쥐고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었다.

"아들아, 우리 함께 죽자. 너와 나 우리 둘만 죽으면 그만인데 뭘 더 망설이겠니? 그래도 이 아빠만이 널 끝낼 수 있다. 아무 죄도 없고 아무 희망도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엄마나 동생에게 어떻게 너를 맡길 수 있겠어?"

멈출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물에 더해 두 손의 힘은 더욱 더 불끈 아들의 목을 죄어갔다.

"미안하다 미안해..... 이 못난 애비에게서 태어나, 세상 한 번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떨어진 나뭇잎으로 나뒹굴어야 하다니..... 그러나, 아들아 그 모든 원망 죗값은 이 아빠가 다 지고 갈 테니 이 에비를 욕해라. 차마 네게 이 애비를 이해해 달라는 말은 할 수가 없구나. 다만  너의 저승길만은 이 애비가 앞장 서 인도할 테니..... 부디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하고 함께 가자, 응?"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내 사랑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온몸을 흥건히 적셔온다. 신장은 150cm를 약간 상회하며, 아무것도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목멘 내 사랑, 내 천사, 내 아들. 극도의 호흡 곤란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어가며, 살려 달라는 듯 힘 없는 손길로 아빠의 난폭한 팔을 잡아오는 아들의 애원 어린 손길에 겨우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들아..... 아빠가 지금 무슨 짓을 했었니? 아빠가 무슨 자격으로, 무슨 권한으로 네 목숨을 끊으려 했던 거니 응? 아들아....."

그저 목 놓아 울고, 또 울었다. 그제서야 안으로 잠긴 방문이 부서져라 밖에서 두드리는 아내의 울먹이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보..... 제발 이 문 좀 열고 나하고 얘기 좀 해, 응? 제발 여보....."

장애 당사자로서, 온갖 역경을 다 체험했기에, 필자는 아들이 어른들의 말씀처럼 늦둥이가 아니란 것을 아들이 어릴 적부터 짐작했다. 다만, 차마 그 짐작이 틀리기만을 기원하며 피일차일 병원행을 미루고 있었다.

네 살이 되도록 홀로 걷지도 용변 처리도 못하는 녀석을 어른들은 그저 늦둥이라 우기시며, 한사코 부정이 탈 만한 어떤 행동도 저지하셨다. 그러다 장애인 선교단에서 운영하는 특수교육 조기 교실에 찾아가 상담을 의뢰하게 되었다.

"이 아이는 생활 훈련도 불가능한 아이입니다. 독립 보행은 물론 식사나 모든 것을 평생 보살펴 줘야 하는 아이인 것이지요."

청천벽력 같은 시설 원장의 말에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아이를 안고 시설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다짐하고 울부짖었다.

"당신이 뭘 알아..... 미국에서 박사 학위만 받았으면 다야? 우리 아들은 정상아야 정상아라고....."
"당신이 오판을 했다는 사실을 내가 꼭 증명하고 말겠어 알았어? 알았냐고....."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마라톤> 스틸컷.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마라톤> 스틸컷.
ⓒ 씨네라인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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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눈물 줄기를 닦지도 못한 채, 우리는 그렇게 거리로 나서고야 말았다. 그리고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을 전국으로 찾아다녔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한미재단'이라는, 미8군 병원 의사들이 주축이 된 단체를 소개받게 되었다.

심장판막증에 걸린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다 판막 이식수술을 시켜, 한국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사업을 그 단체에선 오래도록 지속해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 의사들을 찾아가 그저 사정하고 또 빌었다.

필리핀 수녀님의 통역으로 주고 받는 대화가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으나, 우리는 몇날 며칠이고 계속 찾아가 그저 미국으로 데려다 진단만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매달렸다.

드디어 마음씨 좋은 의사 선생님의 배려로 아이들을 모두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 보내게 됐다. 아들은 물론,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딸내미까지도 진단과 치료 여부를 상담키 위해, 미국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눈물 속에 떠나보낸 아이들이 드디어 6개월 후 귀국하게 되었다. 자원봉사자 품에 안겨, 눈물 콧물 속에 울며 떠나간 아들 녀석이 다른 봉사자의 손을 잡고 또각또각 걸어나왔다.

희귀 증후군 아들, 그러나 '꿈'이 생겼다

미국 의사의 소견서를 보며 우리는 새로운 꿈에 부풀었다.

이 아이는 악센횔드 라이거 증후군(Axen-feld Rieger syndrume)이라는 세계에서 찾기 어려운 희귀 증후군으로, 녹내장과 심장질환, 그리고 치아 이상을 앓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만 뒷받침된다면, 일반 아이들과 비슷한 아이가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아내는 아들 녀석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지적장애 부모회에도 가입하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러나,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아들 녀석은 다시 예전의 상태로 점점 퇴행해 갔다. 조기 교육시설에 보내기도 했고, 특수학교에 입학시켜 교육 시켜 보기도 했으나, 나아지는 건 전혀 없었다. 매일 아침마다 아파트 앞에서 아들 녀석을 특수학교 통학버스에 태워 보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녀석이 학교에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얼굴에 꼬집힌 상처까지 안고 돌아오자, 우리 부부는 학교 담임 선생님과 상담차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엄마 아빠의 손을 놓칠세라 진땀까지 바작바작 흘려가며 꼭 붙들고 있는 녀석을 한순간, 덩치 큰 어떤 학생이 다가와 다짜고짜 따귀를 때리고 달아나는 것이다.

"어어....."

초등학교 1학년생이라 해도, 아들은 유치원생의 체격보다 작았다. 그런 여리디 여린 아이의 따귀를 고3쯤으로 보이는 커다란 남학생이 힘껏 치고 가니, 아들은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놀라 제지할 틈도 없이 콧노래를 불러가며 유유히 멀어져가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분노의 경악성을 내지르고야 말았다.

잠시 후, 우리와 마주앉은 아들의 담당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멋쩍은 듯, 혀만 '끌끌' 차다 우리를 1학년 교실로 인도했다. 그곳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머리로 책상이나 벽을 들이받는 아이에, 소리를 치며 교실 이곳저곳을 쾅쾅 뛰어다니는 아이, 자기 몸을 때리거나 꼬집어 자해하는 아이에, 대소변을 못 가려 교실 바닥에 싸는 아이들까지.

"보시다시피 실정은 이러한데, 현재 이 15명의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선생은 오직 저 혼잡니다. 이렇게 중증인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만 하다 하루가 다 가고 맙니다. 언제 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수업을 하겠어요? 그런데도 담당 선생은 저 혼자뿐이라는 거지요."

나는 그 길로 아들 녀석의 손목을 잡아 쥐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국내 유명 대학 특수교육학과에 전화해, 입주 과외 교사를 맡아줄 사람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우리 아들을 위한 '설리반'은 한국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그룹홈에도 보내고, 맹학교에도 보내면서, 그렇게 세월만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나와 같은 처지의 학부모들이 모여 단체를 꾸리고, 우리 아이들의 생활 요람을 위해 모금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당장 그 모임에 가입하고, 우리도 함께 모금에 나섰다. 해마다 모금 음악회를 열어 기금을 모아갔고, 회원들의 회비도 차곡차곡 쓰지 않고 모아갔다. 그렇게 10여 년의 노력 끝에, 우리는 드디어 경기도 연천에 아담한 야산과 대지를 매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톨릭 수녀회 사회복지법인에 그 땅을 기부채납해, 아이들의 요람을 마련했다. 이제 아들이 그곳에 입소한 지도 10여 년이 지나고 있다. 우리는 아들을 1년에 서너 번, 여름 겨울 방학 때와 명절 때 데려와 함께 지낸다. 나머지는 이산가족으로 헤어져 산다.

"방학이 두렵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 죽었으면"

지난 2012년 2월 22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출범식에서 한 참석자가 정부의 장애아동 재활치료 및 지원체계 등을 담은 발달장애인법제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012년 2월 22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출범식에서 한 참석자가 정부의 장애아동 재활치료 및 지원체계 등을 담은 발달장애인법제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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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나이 이제 스물하고도 일곱이다. 비록 체격은 여전히 154cm를 넘나들고, 체중도 35kg을 간신히 오르내리는 작은 천사다. 하지만, 갑자기 공격적인 과잉행동으로 돌입하면, 누구도 아이의 흥분 상태를 바로 잡을 수 없다.

날카로운 가위로 동생의 몸을 찌르는가 하면, 엄마의 손가락을 힘껏 깨물어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갑자기 집안의 가구를 가족을 향해 내던지기도 하고, 9층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무거운 의자를 내던지기도 한다.

연천의 생활 시설이나 병원에 데려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하게 변모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흥분하는 녀석의 안정을 위해, 수면제를 처방해 달라고 부탁도 해 봤다. 하지만 보기에 얌전한 아이를 수면제로 잠만 재우려는 이상한 부모로 오인 받아 쫓겨나듯 병원 문을 나서곤 했다.

꿈에도 그리운 아들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부모가 있다. 언제 그 큰 몸으로 자해를 할지, 언제 무거운 물건을 던져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을지. 또 언제 가족을 향해 흉기를 휘두를 것이며, 언제 또 가족을 물고 뜯을지 모른다. 우리 아이 같은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모이면 늘 같은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방학이 두렵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 죽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건장한 젊은이로 자라가는데, 반비례하여 부모들은 점차 늙어 노구로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도 어엿한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 국민의 의무인 세금을 내고 산다. 그런데, 왜 우리의 아들 딸 장애아들은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가정의 책임으로 평생을 병이 든 채 살아야 하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태중의 아이가 장애아이면 수술을 해서 유산을 해도 좋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공분을 산 적도 있었다. 우리 장애인들은 정녕 이 나라에 있어서는 안 될 무익한 존재들인가? 우리 아이들은 정녕 우리의 손으로 끝장을 내야만 하는 서러운 운명의 존재들인가.

국회에 계류 중인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언제 본회의를 통과하여, 방치된 우리들의 인권을 살려줄 것인가? 이젠 존속 살인의 공포로 늘 눈물짓는 우리들의 불행을 국가와 사회가 따뜻이 보듬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더 늙기 전, 환한 웃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홈피 http://noulpoet.kr 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살인, #발달장애, #가족, #운명,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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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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