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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아침, 눈을 뜨기 전 배가 싸르르했다. 무심결에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고 손을 더듬거려 필기구를 찾아 시간을 메모했다. 그러나 3월의 따뜻한 햇살을 맘껏 받는 침대 속 따뜻한 기운을 만삭의 임산부가 떨치고 일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불 속에서 한참을 더 꼼지락거렸다. 몇 번 더 배가 아파왔다. 순간적으로 '오늘이 그 날인가?' 싶었다. 시간을 메모하고 겨우 일어났다. 메모를 확인하니 꽤 규칙적인 진통이었다. 서둘러 친정엄마를 불렀다.

"엄마, 오늘인가봐! 나 배 아파."

신기했다. '뱃속에 있던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다니!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나에서 둘이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 신기하기만 했다.

돼지고기 기름을 먹어야 그 기름을 타고 아이가 잘 나온다는 황당한 이론을 펴시며 엄마는 삼겹살을 구워 주셨다. 어딘지 이상했지만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아침부터 우적우적 삼겹살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갑자기 임산부 요가가 생각났다. 바닥에 누워 손바닥과 발바닥을 붙이고 위 아래로 뻗었다 오므렸다 하는 동작이었다. 몇 번 안 했는데 다시 배가 아팠다. 메모를 하고 보니 진통이 규칙적이지 않았다.

'책에서는 분명 규칙적이고 그 간격이 줄어든다고 했는데.. 오늘이 아닌가? 아이참.. 병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행인건 그날은 병원 정기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어차피 병원에 가면 알게 될 일이었다. 오후 4시,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오늘 낳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여유가 있으니 집에 다녀와도 된다고 했다. 우리 집은 녹번, 병원은 충무로에 있었다. 집에 있다가 배가 더 자주 심하게 아프면 그때 오라고 했다.

순한 양이 되어 대답한 후, 침대에서 내려왔는데 피가 똑!하고 떨어졌다. 의사가 집에 가지 말라고 했다. 바로 예비분만실로 옮기라는 것이다.

'어? 나 아직 마음의 준비 안됐는데... 오늘 진짜 나오면 어떡하지?'

오전의 신기했던 마음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었다. 두껍고 뻑뻑한 질감의 하얀색 원피스였다. 가뜩이나 소심해진 나에게 사무적인 간호사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병원에 함께 온 엄마와 함께 들어간 예비분만실은 커다란 강당 같았다. 커튼으로 겨우 공간을 구분했기 때문에 옆에 누워 있는 산모의 숨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엄마는 부랴부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를 통해 남편에게 그동안 좋아했던 빵집의 케이크를 주문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이크 상상을 하면서 싸르르한 생리통 같은 진통을 참을 수 있었다. 그동안은 비싸서 잘 못 먹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아이를 낳은 날인데 큰 걸로 사오겠지?하는 기대감에 행복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남편이 도착했다. 나는 남편보다 그의 손에 들려있을 케이크가 너무 보고 싶었다.

"뭘로 사왔어?"
"응, 화이트 생크림이랑 딸기 생크림으로 두 조각이나 사왔어."

이 남자. '두 조각'이라고 내게 당당하게 말한다.

'이 사람아, 나는 한 판이라도 단숨에 먹어 치울 것 같단 말이야!!!'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둘이 낄낄거리다가 옆 산모 소리도 듣다가, 잠깐잠깐 나를 체크하는 간호사들과 분만준비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처에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오셨다. 친정엄마는 첫번째 손주를, 시어머니는 두번째 손주를 기다리시고 계시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커튼을 통해 들리는 산모들의 소리는 나 같이 겁 많은 초짜 산모에게 귀신영화를 능가하는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참을 만한데 나도 조만간 저렇게 소리지를 만큼 아프겠지? 얼만큼 아파야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 근데 내가 흉측하고 괴상하게 소리지르면 어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쓸데없는 생각들인데 그땐 무섭고 두려웠다.

그동안 나와 아기를 검진하던 담당의사가 내려오고 내 상태를 체크했다. 자궁문은 잘 열리고 있지만 시간이 좀 걸려서 자정을 넘겨서 낳을 것 같으니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본인은 잠시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담당의사는 본인이 진료한 산모의 아이를 꼭 본인이 받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의사가 우리 아이를 받는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 때 시간이 저녁 6시를 넘겼다.

우리는 가족분만실을 원했다. 그 신기한 순간에, 그 힘든 순간에, 그 무서운 순간에 나는 남편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 편이 아니었다. 가족분만실은 이미 만원이며,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다리라면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는 고분고분했다.

졸립다는 남편,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조각케이크 두 조각

남편은 그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 기준으로 꽤 돈을 가지고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뭔가 본인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내게 말은 안 했지만 밤을 새고 출근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런 그가 예비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에게 한마디 했다.

"옆으로 좀 만 가볼래? 졸린데 나도 좀 눕자."

애 낳으려고 하는 사람 옆에서 졸리다고? 지금도 이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 조각 케이크 두 조각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새 보니 남편은 없어졌고 친정엄마가 옆에 계셨다. 다 그러면서 엄마가 되는 거라고, 지금 잘 하고 있는 거라고 혼잣말처럼 하고 계셨다. 중간중간 의료진들은 내 상태를 체크했다. 처음에는 간호사 혼자 왔었는데 돌아가서는 다른 누군가를 더 데리고 왔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때 이후였을까? 뭔가 일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집에 갔다 온다던 내 담당의사는 오지도 않았는데 커튼이 열리고 덜커덩 덜커덩 나를 옮겨갔다. 드디어 분만실로 옮겨진 것이다. 그동안 봐왔던 의학 드라마의 폐해였을까? 나는 나를 번쩍 들어서 분만용 침대에 옮겨줄 것을 기대했으니 그건 큰 오산이었다. 

분만용 침대에 누우니 분만에 대한 이미지들이 생각났다. 이모는 하늘이 노래져야 아이를 낳는다고 했다. 사극에서는 손수건을 입에 앙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밧줄을 당겨야 아이가 나왔다. 순간, 천장을 보니 하얀 색이었다. 아직 낳을 때가 아닌가 보다 싶었다. 분만교실에서 배운 호흡법을 생각하고 그대로 해 보았지만 맞게 하는 건지 반대로 하는 건지 헷갈렸다. 에라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해야겠다 싶었다.

천장은 노래지지 않았는데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힘을 주려고 한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곤 힘이 풀렸다. 의료진들이 하는 얘기가 귀에 들어오진 않았으나 목소리가 내 담당의사는 아니었다. 임신 때부터 꾸준히 봤던 책에서 아기와 호흡을 잘 맞추면 좀 더 수월하게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직후 기분이 좋은지 메롱하고 있는 아가
▲ 메롱~ 나 세상에 나왔어요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직후 기분이 좋은지 메롱하고 있는 아가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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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는 10개월 전부터 생명을 나눠가진 한 팀이었다. 서로를 믿고 호흡을 맞추면 될 거 같았다. 다시 한 번 힘이 들어갔다. 옆에 있던 의료진은 단호하고도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두어 번 그런 기회가 더 왔다. 손잡이를 꽉 잡았고, 눈을 감았다. 온 정신과 힘이 아랫배에 집중되었다. 힘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순간, 물컹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따뜻한 그 무언가가 나를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부드럽고 따뜻했던 그 느낌. 아기는 딸이었다. 아기의 상태를 확인한 의료진은 아기를 품에 안겨주었다. 신기하지만 낯설었다. TV에서는 출산 후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하던데 그러지는 않았다. 그저 신기하고 낯설었다. 아기는 그렇게 오후 8시 13분에 세상에 나왔다.

하늘은 노래지지 않았지만 아기를 만났다. 출산의 결정적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남편의 얼굴만 노래졌을 것이다.

결정적인 그 때 남편실종사건의 전말

실종됐던 남편이 본인의 실수를 만회하려는듯 아가를 안고 우유를 먹이고 있다.
▲ 출산할 때 실종됐던 남편 실종됐던 남편이 본인의 실수를 만회하려는듯 아가를 안고 우유를 먹이고 있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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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로 옮긴 후, 가족들을 만났다. 나보다 더 흥분한 남자가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누구세요? 혹시 출산의 순간에 자리를 비운 바로 그 분이신가요?

관계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새벽에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친정엄마는 남편에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어차피 다 같이 있어도 큰 도움이 못 되니 남편도 시어머니를 보낼 생각에 식사를 하러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식사 와중에 친정엄마의 급한 호출을 받은 남편은 허둥지둥 달려왔단다. 거의 도착했을 무렵 침대에 옮겨지는 나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달려오는 데 간호사는 남편을 붙잡고 가족분만실에 자리가 났으니 확인하고 서류에 서명하라고 했단다. 출산을 같이 하고 싶던 남편은 냉큼 서명을 하고 내게 오려는데 나는 이미 분만실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몇 번 왔다갔다 했을 뿐인데 내가 아기를 낳았다고 아기를 인큐베이터 같은 곳에 넣어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달려오는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았던, 가족분만실로 옮겨가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던 우리 아기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기사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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