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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오리를 쫓던 참매가 기다렸다는 듯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급하게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는 쇠오리 두 마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참매가 뒤쫓는다. 매서운 참매의 눈매가 뷰파인더 속으로 마주 날아오는 참매의 시퍼렇게 불을 뿜는 눈동자가 들어왔다. 역시 참매는 무리에서 낙오하는 녀석을 노렸던 것 같다. 참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던 쇠오리 두마리중 한마리가 너무 급한 나머지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뒤따르던 참매도 쇠오리가 들어간 물 위에서 잠시 제자리 날기를 하다가 주저 없이 물로 뛰어든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참매가 솟구치는데 발에 쇠오리가 들려있다. 성공이다! 쇠오리를 단단히 움켜쥔 참매가 갈대숲에 날아 내린다. 드디어 참매의 사냥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간절히 바라던 순간을 포착했음에도 기쁨을 만끽하기보다는 찰나에 벌어진 사냥 모습을 찍었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전에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던 실수들이 떠올라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확인하기가 덜컥 겁이 났다.-<참매 순간을 날다>에서

저자에 의하면 참매가 물 위에서 제자리 날기를 하다가 쇠오리를 사냥해 갈대밭에 내려앉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8초. 이 8초의 순간을 위해 저자는 1년 내내, 거의 매일 차안이나 위장막(텐트)안에서 오금이 저리도록 꼼짝 못하고 4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동안 저자는 참매가 사냥하는 모습을 여러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냥의 낌새가 보여 드디어 사진을 찍을 수 있겠구나의 기대감으로 잔득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으면 포크레인이나 다른 차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사라져 사냥을 방해하거나, 오랫동안 관찰해와 어림짐작 예상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냥을 해버리기 때문에 여러 차례 촬영을 시도했다가 실패에 실패를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참매는 워낙 예민한 새, 주변이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이동해버리는 등의 변화도 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이토록 참매의 사냥 장면을 찍고 싶어 했던 걸까? 대단하긴 한데, 4년이란 수많은 날들 동안 기다려 찍을 정도로 참매의 사냥하는 장면이 그렇게 가치가 있나? 참매의 사냥법은 많이 알려졌잖아!'

<천년의 기다림 참매 순간을 날다>
 <천년의 기다림 참매 순간을 날다>
ⓒ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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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에 앞서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 글과 모 언론의 책 소개 기사에서 위에 인용한 글을 간단하게 정리한 출판사의 보도 자료를 먼저 접했었다. 이런지라 대략 어떤 책이다 짐작은 했었다. 이런지라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놀랐다. 대체 언제나 참매가 사냥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나? 나 역시 사냥 장면을, 저자가 그리 애타게 기다리는 그 사냥장면을 몹시 기다리며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매 순간을 날다>(지성사 펴냄)는 347쪽짜리 책이다. 위에 인용한, 즉 저자가 참매의 사냥 장면을 찍고자 작정한지 4년 만에 드디어 촬영에 성공한 이야기는 325쪽에 나온다. 그러니까 책이 거의 끝날 즈음에 참매의 사냥 성공이야기를 읽게 된 것이다.

그만큼, 그토록 기다리던 참매의 사냥과정을 325페이지에서 읽기까지, 언제나 촬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 장면이 언제나 나오나?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려나? 기다리고 긴장하면서 읽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처럼 사냥 장면 포착을 참 많이 기다리며 읽었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궁금한 마음에 사냥하는 모습 촬영에 성공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을 애써 찾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이다.

참매의 둥지 짓기를 비롯한 짝짓기, 엄연하게 구별되는 암컷과 수컷의 역할 분담. 형제간의 서열이나 먹이 습성 등, 천연기념물 제323-1호인 참매의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생태적 특성들을 귀한 사진들과 함께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숲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부터 어치를 '산속의 사기꾼'이라고 부른다.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서 깜박 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매 둥지를 관찰할 때는 어찌나 참매의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지 거의 매일 속았다. 어치가 내는 소리에 참매 수컷이 먹이를 잡아 온 줄 알고 카메라 렌즈를 위장막 밖으로 내놓는 일을 여러 번 반복했었다. 평소에도 어치는 숲을 낮게 날아다니며 작은 새소리를 흉내 내면서 이들의 둥지에서 새끼를 꺼내 먹는 등 얄미운 짓을 도맡아 한다. 아무리 적자생존이 자연의 법칙이라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사기 행각이 아니던가. 숲에서 어치는 오직 참매만이 경계대상이다.-<참매 순간을 날다>에서.

게다가 이처럼 숲에서 만날 수 있는 흰꼬리수리나 어치, 물수리,쇠오리 등과 같은 새들의 이야기까지 풍성하게 들려준다. 물론 눈을 시원하게 하는 풍성한 새 사진들과 함께. 책을 읽는 동안 참 귀한 책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한 이야기도 많고, 무엇보다 생명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사진들도 많은 그런 책이다.

참매가 사냥하는 장면을 이야기 해주는 325쪽 다음 페이지에는 물로 뛰어들어 쇠오리를 사냥하는 순간 포착의 장면들과 사냥에 성공한 참매가 쇠오리를 움켜쥐고 서 있는 모습까지를 순서대로 배열한, 15장면쯤 되는 사진들이 7쪽에 걸쳐 실려 있다.

저자의 간절한 바람 따라 책을 읽어 나가며 '언제 성공하나?' 궁금해 하며 기다렸던 장면들이라 사진 한 장, 한 장의 감동이 남다름은 물론이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쇠오리 두마리를 쫒다 한마리가 물속으로 뛰어들자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냥하는 모습(책속 촬영)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쇠오리 두마리를 쫒다 한마리가 물속으로 뛰어들자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냥하는 모습(책속 촬영)
ⓒ 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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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쇠오리를 낚아챈 참매가 날아오르는 모습(책속 촬영)
 물속의 쇠오리를 낚아챈 참매가 날아오르는 모습(책속 촬영)
ⓒ 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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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에 성공한 참매가 먹이를 먹기에 마땅한 장소인지 주변을 살펴보는 장면(책속 촬영)
 사냥에 성공한 참매가 먹이를 먹기에 마땅한 장소인지 주변을 살펴보는 장면(책속 촬영)
ⓒ 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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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오리 수컷을 사냥한 참매가 쇠오리를 발톱으로 찍고 있는 모습.332쪽을 촬영한 것이다.
 쇠오리 수컷을 사냥한 참매가 쇠오리를 발톱으로 찍고 있는 모습.332쪽을 촬영한 것이다.
ⓒ 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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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으로 사냥개가 뛰어들면 그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꿩이 놀라 푸드덕 날아오르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참매가 재빨리 튀어 올라 꿩을 뒤따라가 낚아채 떨어뜨려서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매 사냥의 한 장면이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런 매사냥의 모습은 참매의 사냥 습성을 잘 파악하고 이용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연출해낸 장면이다. 실제 야생에서 참매는 무엇인가에 놀라 날아오르지 않은 한, 습성상 풀숲에 숨어 지내는 꿩을 찾아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사냥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한다. 오히려 참매의 사냥습성은 아프리카의 사자나 표범의 그것처럼 사냥감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은밀하게 매복해 있다가 순식간에 해치우는 방식이다.-<참매 순간을 날다>-출판사의 책 소개글에서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매사냥, 즉 참매의 사냥법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길들여진 사냥 방법. 저자가 왜 그토록 야생 참매의 사냥 장면을 사진에 담고 싶어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아마 이 책을 읽지 못했다면, 저자의 어떻게든지 야생 참매의 사냥 장면을 제대로 촬영하겠다는 검질긴 노력과 고집과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에 의해 길들여진 (참)매의 사냥법을 고유한 사냥 방법으로 알고 있었으리라.

책을 읽다가 책을 읽기에 앞서 이미 읽었던 저자 프로필과 저자의 말을 다시 읽을 정도로 저자에 대한 감동 또한 컸던 책이다. 우리가 여기서 또한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그동안 겨울 철새로만 알려졌던 천연기념물인 참매가 그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알을 낳아 번식을 한다는 것이 이 저자 덕분에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건축가인 저자가 일 때문에 사진기를 쥐게 되고, 산이 좋아 산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지리산에서 잣까마귀의 노랫소리에 홀려 새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 8년 전. 2006년 5월, 오랫동안 겨울 철새로 알려졌던 참매가 충청도의 한 야산에서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번식하는 모습을 발견, 세상에 알리게 된다. 저자가 참매의 매력에 빠진 것은 이때부터.

<참매 순간을 날다>에는 저자의 참매에 대한 지난 8년 동안의 애정과, 이제까지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야생 참매의 사냥 본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촬영하고자 4년 동안 기울였던 노력과 수많은 기다림, 이런 과정에서 알게된 다른 새들의 생태와 자연에 대한 애정과 바람 등이 오롯하게 담겨져 있다.

책을 보는 내내 무한한 감동을 줬던 것은 아마도 그간 어떤 책에서도 보기 힘들었을 참매와 다른 새들의 생생한 생태와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생생한 생태 사진. 이야기는 제쳐두고라도 사진만으로도 책값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이런 책과의 만남은 참 행운이란 생각만 들고 있다.

참매는 천연기념물 제323-1호이자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부분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 길들여진 사냥법으로 더 많이 알려진 터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참매에 대해, 참매와 다른 생물들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그리하여 자연과의 바람직한 공존을 위해 자연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책의 소개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참매 순간을 날다>|사진과 글: 박웅| 지성사 | 2013-12-17 | 30,000원



참매 순간을 날다 - 천년의 기다림

박웅 글.사진, 지성사(2013)


태그:#참매, #매사냥, #천연기념물 제323-1호, #보라매, #자연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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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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