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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지난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 기자회견장 입장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지난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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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남북관계 분야의 최대 화제어를 꼽는다면, 단연 "통일은 대박이다"가 될 것이다.

신창민 중앙대 명예교수가 2012년에 쓴 동명의 책에서 따온 것이든 아니든,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처럼 쉽고 단순한 말로 상황을 압축하는 박 대통령 특유의 어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취임 후 첫 기자회견 그것도 신년기자회견에 이어, 세계 무대인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도 박 대통령은 "통일은 한국에만 대박이 아니라 동북아 주변국 모두에도 대박이 될 수 있다"며 대박론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통일을 꼭 해야 하나" "그냥 따로 사는 게 낫지 않나"가 대세가 되고 있는 요새 분위기에서 통일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대박론'을 적극 환영했다. 또 정부에서는 노대래 공정위원장의 "통일 시대를 대비해 공정거래법 연구가 필요하다"는,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발언까지 나왔다. 물론 제일 반긴 것은 '통일은 미래다' 신년 기획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는 <조선일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은 "흡수 통일의 망상이 깔려 있다"(대외주간지 <통일신보> 1월 18일 치)고 비판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특히 북한이 내놓은 발언의 무게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북한 주장에 근거가 있다.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을 뿐, 어떻게 해야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말이 없다. 현 정부의 공식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과정론인 데 비해 '통일 대박론'은 '장밋빛 미래'만 말한다. 그래서 공허하다. 해설을 해줘야 할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국정 기조를 추진해나가겠다는 각오로 해석한다"는 정도의 말뿐이다.

"북한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 만들어야"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스스로 변화해야겠지만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1월 20일 부르크할터 스위스 대통령과 한 정상회담 중)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 간극을 메워준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상호비방을 중단하자는 1월 16일 북한의 '중대제안'을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내세우고 있으나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일축한 뒤에 나왔다. 지금 북한이 내미는 손은 속임수일 뿐이며 진정한 변화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정부의 극력 부인에도 전체를 종합해서 볼 때, '통일 대박론'은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흡수통일 의지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집권 이후 박 대통령의 대북 대응은 매우 일관돼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문을 닫는가 하면 약속한 이산가족 상봉을 불과 4일 앞두고 무산시키는 등의 '악수'를 두기는 했지만, 우리 정부 역시 지난해 6월 남북 당국간 회담을 앞두고 수석대표의 '격'을 문제 삼는 등, 철저하게 '팃 포 탯'(tit for tat·맞받아치기식 응수)으로 대응했다. 전임 이명박 정부와 똑같았다.

이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어긋난다. 정부는 신뢰프로세스 공식 설명 자료에서 '과거 대북정책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항목에 "과거 대화·교류 중심의 포용정책은 남북 간 협력을 강화했으나 원칙을 훼손한 측면이 있고, 원칙 중심의 대북정책은 원칙은 확보했지만 유연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원칙 중심의 대북정책'이라는 대목은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을 말하는 것으로,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꽉 막힌 대응을 해서 성과가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이는 현재까지 박근혜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박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분야 오래 준비... 주변 조언으로 방향 바꾸지 않아"

"박 대통령은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해 오래 고민하고 준비했기 때문에 주변 조언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는다. 주변 인사들이 참모들은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만 조언하는 수준이다."

박 대통령이 신뢰 프로세스의 단초를 처음 선보였던 2009년 미국 스탠퍼드 강연 이전부터 그를 도와 자문했던 한 학계 인사의 전언이다.

현재의 대북정책이 단순히 남재준 국정원장이나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이 주도하는 판이 아니라, 오히려 박 대통령이 확고한 방향성 아래 '왕별'들을 '집합'시킨 상황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4년 1월 24일 치 최보식 칼럼
 2014년 1월 24일 치 최보식 칼럼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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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대북 기조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과 함께 '통일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조선일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북남관계 개선'과 '중대제안'에 대해 "북한이 이런 선전공세를 할 때일수록 더욱 대남도발 등에 철저히 대비하는 철통 같은 안보태세에 만전을 기하라"며 거부하자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칼럼니스트인 최보식 선임기자는 1월 24일 치 칼럼에서 "만나서 당신네 얘기를 한번 들어보자고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잘 다루려면 접촉면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만날 기회를 차단한 격이 됐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통일 대박론'에 대해서도 "상황적으로 북한의 급변사태를 염두에 뒀을 것이나 북한 체제 붕괴가 현실에서 통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실행 파일이 없다는 점에서 '통일 대박론'이 당장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 '종북프레임 안착' 등을 배경으로, 개혁·진보세력의 전유물이었던 통일 담론을 '보수의 어젠다'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진보의 전유물 통일을 보수의 어젠다로

이는 단기 국면으로 좁혀 보면 '6·4 지방선거'와 연결될 수 있다. '흡수 통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통일 대박론'을 띄우면서, 계속 대북관계를 긴장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 1987년 대선 - KAL기 폭파사건을 활용한 무지개 공작 ▲ 1992년 대선 - 중부지역당 사건 ▲ 1996년 총선 - 총풍사건 ▲ 2010년 지방선거 - 천안함 사건 ▲ 2012년 대선 - 노무현 NLL포기 논란

위는 한국 보수세력이 북한 변수를 최대한 활용해 선거 국면에 극도의 긴장감을 불어넣어온 대표적 사례들이다.

1995년 1차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정부가 대북 쌀 지원을 통해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여론을 호전시키려 했던 것은 예외적인 경우다(쌀 지원 당시 씨아펙스호가 태극기를 내리고 북한 인공기만 매단 채 북한 청진항에서 쌀을 하역한 것이 드러나면서 여당인 민자당이 참패하는 중요 원인이 됐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이런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보면 한국의 보수세력은 큰 선거를 앞두고 남북긴장을 고조시켜왔고, 그렇게 하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정리한다.

지난 17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를 찾아 연평도 해병대 부대의 관측소(OP)를 시찰한 뒤 평화공원을 참배한 민주당 김한길 대표.
 지난 17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를 찾아 연평도 해병대 부대의 관측소(OP)를 시찰한 뒤 평화공원을 참배한 민주당 김한길 대표.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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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에 대한 야권과 진보진영의 대응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흡수통일을 근거로 한 '통일 대박론'은 한반도 평화-안정과는 대치되지만, 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김한길 대표의 군부대 방문이나 '국민통합적 대북정책'뿐이었다. 진보개혁세력 전체로 봐도 '이석기 사건' 등을 매개로 한 종북 공격에 대한 방어에만 급급한 형국이다.

2012년 대선 때는 근거도 없는 'NLL 포기론'이 판을 뒤흔들었다. 박근혜 정부의 안착이냐 위기냐를 결정지을 6·4지방선거 역시 북한 변수가 선거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아져 있다.


태그:#통일은 대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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