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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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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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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임신했을 때, 나는 조기 진통이 와서 두 달간 병원에서 누워 지냈다. 악성 빈혈과 임신성 당뇨도 있었다. 번갈아가며 남편, 자매 지현, 친정엄마의 수발을 받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괴로웠다. 같이 병실에 누워 있던 사람들 중 몇은 아기를 잃고서 빈손이 되어 집으로 갔다. 나는 삼신 할매라도 붙잡고 싶었다. 애원하고 싶었다.

"제발, 아기 낳아서 집에 데리고 가게 해주세요."

뱃속에서 갑자기 호흡을 멈춘 아기를 예정일보다 3주 일찍 꺼냈다. 아기는 무사했다.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그러나 기쁨은 영원하지 않았다. 밥벌이하고, 열 살 터울 나는 두 아들을 키우면서 생활에 치였다. 애들한테 소리나 빡빡 지르는 날이 늘었다. 어릴 때 되게 듣기 싫어했던 말, "이 웬수 같은 것들"이라는 욕까지 나왔다. 

아이들이 잠들고 고요해지면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기도 했다. 내가 부모님을 떠나왔듯이 아이들도 자기 세계를 찾아 떠날 날이 온다. 만날 치대고 요구하는 게 많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 손님처럼 지내게 될 날이 닥쳐온다. 그러니 힘을 내서 온화한 엄마가 되어보자. 내 새끼들과 함께 보낼 시간은 유한하니까. 품 안의 자식이니까.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에는 자식을 평생 품 안에 두고 살아가는 열한 명의 부모들이 나온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껴안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다. 부모들은 "저런 걸 왜 낳았어?", "저런 걸 왜 데리고 다녀?"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딘다. 꿋꿋하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대중교통을 탄다. 아이의 미래를 그린다. 그 속에서 나오는 말은 비슷했다.

"욕심 부리지 말고, 늘 감사하며 살자."

처음부터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떤 부모도 내 아이의 장애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내가 참석했던 장애아 부모 모임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어떤 이는 자기 아이의 장애가 조상 무덤 자리 탓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다른 형제는 그 묏리가 좋아서 사업이 잘 된다. 그는 내 새끼 병을 고치고 싶어서 몰래 이장을 했다. 형제간에 피 터지는 싸움이 났다.

장애는 완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좋아지겠지', '장애 아닐 거야'라는 생각에서 발을 떼지 못한다. 내일이면, 내년이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못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아는 또래 아이들보다 학교도 1~2년 늦게 들어간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 중에서도 "특수 아이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 똑같아요"라는 아픈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장애아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

그러므로 장애아 엄마는 '엄마 그 이상의 엄마'일 수밖에 없다. 쌍둥이 아들 둘 다 자폐장애가 있는 엄마 우진아님. 아이가 초등 3학년 때 거실에서 자위행위 하는 것을 본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았다. 막막하고 슬펐다.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아이들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했다. 지금은 장애아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을 앓는 정우 엄마 민선희님은 온종일 경기(驚起)를 하는 아이한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다. 경기 하는 아이를 업고, 일곱 살 딸 손을 잡고 그대로 사라지면, 모든 것이 편안해질 거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픈 아이의 상처를 꼭 보듬고 있다. 엄마는 마흔두 살에 관절염이 와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이상일·강희숙 부부는 이미 아이들을 다 키운 상태였다. 장애 때문에 버려진 찬송이 얘기를 듣고는 딸로 삼았다. 찬송이는 콧줄로 우유를 먹는다. 무뇌수두증이라 매일 조금씩 머리가 부풀러 올라서 통증 때문에 밤새 운다. 엄마는 찬송이를 데려온 날부터 잠을 못 잤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키울 때 미처 몰랐던 부모 사랑을, 찬송이 때문에 안다고 고마워했다.

쌍둥이 아들 둘 다 자폐장애가 있는 엄마 우진아님. 두 아들 때문에 기쁘고 행복하단다.
 쌍둥이 아들 둘 다 자폐장애가 있는 엄마 우진아님. 두 아들 때문에 기쁘고 행복하단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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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들은 달팽이다. 알아볼 수 없게 느릿느릿 간다. 아이들은 초중고를 졸업하면, 대개 전공과(전문대학과 비슷함)를 2년간 다닌다. 이때 아이들은 수능 만점보다 더 값진 일을 해내기도 한다. 군산 명화학교(지적장애 특수학교) 전공과 아이들도 그랬다. 지역에서 준 일터에서 박스를 접었는데 나날이 실력이 늘었다. 직업을 가져도 되겠다는 꿈을 꿀 만큼. 

"장애아들의 부모들은 아이가 성장하는 일이 두렵다. 정신연령과 여러 신체 기능은 여전히 장애아에 머물러 있는 채 졸업할 나이가 됐다는 이유로 무작정 학교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졸업 후의 상황은 막막하다. 말이 졸업이지 졸업 후 받아줄 직장도 시설도 제대로 없다보니 실제로는 가정으로 돌려보내진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전공과를 마친 아이들은 갈 데가 없다. 도저히 시설에 보낼 수 없는 부모들은 20대가 된 아이들을 끼고 살면서 평생을 각오한다.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내가 만난 장평위(발달장애성인 평생교육기관 설립위원회) 엄마들은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학교를 꿈꿨다. 군산시의회 강성옥 시의원이 조례를 제정하게 도왔다. 그래서 지금 전국 최초로 장애성인 평생학교를 만들고 있다.

"장애아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후반부에 나오는 주영이와 관태 이야기는 아프지만 희망차다. 주영이는 청각장애인, "야, 이 ××야, 너 귀먹었어?"라고 퍼붓는 욕을 듣고 살았다. 장애인 특별고용제도로 직장생활도 했다. 지금은 "장애인으로서가 아닌 보통사람으로 대우받으면서 직장에 다니려면 제가 먼저 자격을 갖춰야 하니까요" 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관태는 송파의 '커피프린스', 특수학교를 졸업한 장애인들에게 꿈의 일자리로 통하는 굿윌스토어에서 일한다. 자폐장애를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여자 친구 앞에서 방귀도 참을 줄 안다. 관태는 일을 하면서 눈에 띄게 자랐다. 일을 통해 자존감도 높아지고 사회성도 좋아졌단다. 정식직원 3개월째인 관태에게는 지점장이 되겠다는 통 큰 포부가 있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는 추운 데서 운 것처럼 몸이 굳고 아프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비극, 부모만이 오롯이 그 짐을 지고 있다. 모든 것을 바치면서 희생해야 한다. 그러고도 부모들은 아이를 통해 행복을 알게 되어 고맙다고 했다. 죽음 문턱까지 가봤거나 극한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하루하루가 고맙고 작은 것도 귀하다고 하는 것처럼.

장애아 부모들은 처음부터 고통을 감당할 만한 참을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으리. 내 새끼니까 죽을힘을 다해서 아이 앞에 있는 벽을 깨며 살아왔을 것이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한 채. 외면하지 말자.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보통 인생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니 '장애아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건성으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김혜원 씀, 오마이북 펴냄, 2014년 2월, 240쪽, 1만4000원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 장애아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

김혜원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밀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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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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