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겉그림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겉그림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처음엔 다소 가볍게 시작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풀어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김혜원 시민기자의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서평을 쓰기로 했다. 독감으로 줄줄이 앓고 있는 아이들을 겨우 재운 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펼쳤다. '특별한' 아이들과 더욱 '특별한' 엄마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몇 번이나 책을 덮고 눈물을 흘렸고, 어느 순간엔 가슴을 치며 엉엉 울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쓰고 지우기만 반복할 뿐, 빈 종이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의 긴 독감도 끝이 보이고 봄도 가까이 와 있었다. 세 아이 독감 병간호 일기에서 시작해 첫 아이 임신 당시 기형아 검사를 두고 고민했던 이야기로 겨우겨우 이어가던 글을 모두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 한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더 해야만 나는 이 글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고백이 누구를 미안하게하고 부끄럽게 하는 것인지 한참 고민했다. 고민 끝에 이 책의 엄마들처럼 나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나의 친오빠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친정 엄마는 오빠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리고 부족한 이유가, 임신한 걸 모르고 임신 초기에 먹은 감기약 때문일 거라 짐작하시며 평생을 오빠에게 미안해하신다. 보통 사람들에 비해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무척 낯설어하는 자폐 성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장애인이라고 판정을 받기엔 비장애에 가까운 오빠이다.

하지만 비장애인들 사이에선 눈에 띄고 마는 오빠다. 그러나 오빠는 부모님과 오빠의 노력으로 일반 학교를 졸업했고, 몇 년째 한 직장에서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월급을 받아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오빠와 함께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모든 관심과 보살핌이 오빠에게 가는 게, 동생이지만 늘 누나처럼 오빠를 살펴야 했던 게 싫었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가장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도 오빠 이야기였다. 아이를 셋이나 낳은 엄마가 된 지금도 누군가 오빠의 안부를 물으면 늘 얼버무리고 마는 부족한 동생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엄마로서 마음이 아프다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맨얼굴로 오빠를 마주하지 못했던 '어린 나'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것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이런 나의 잘못을 고백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 '특별한' 오빠의 동생으로서 한 번은 꼭 써야 할 반성문을 쓰려 한다.

기적을 바라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찾은 '사랑'

어느새 아빠보다 넓어진 오빠의 등
▲ 든든한 나의 그늘 어느새 아빠보다 넓어진 오빠의 등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김혜원 시민기자의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는 장애아들의 부모 이야기를 취재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기사를 엮은 것으로, '장애아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을 담고 있다. 김혜원 기자의 전작인, 독거노인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에서는 여러 모습의 장애를 가진 '특별한' 아이들과 그 아이들로 인해 더 '특별한' 엄마들과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에서 만난 '특별한' 이들을 어떻게 소개할까 하다, 저자가 '여는 글'에서 깊은 애정으로 호명한 이름들을 그대로 옮겨 적으며 한 번 더 그들의 이름이 세상 속에 노래처럼 울려퍼지길 기도해본다. 

뇌성마비 장애아 현호를 키우며 장애인부모협회에서 활동하는 박향숙씨, 1급 자폐성 장애아 영규를 눈물로 키워낸 도경미씨, 연골무형성증 때문에 남보다 왜소한 몸을 지닌 예인이를 온 힘을 다해 지켜주는 이선혜씨, 자폐성 장애아 세준이가 천재적 미술 솜씨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윤혜선씨,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때문에 끊임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정우를 꿋꿋하게 키우는 민선희씨. 가슴 아픈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뇌병변 장애를 얻은 동욱이를 기적적으로 회복시키고 있는 문은희씨, 자폐성 장애가 있는 한결·한길이의 사춘기 시절을 돌보다가 장애인 성교육 강사가 된 우진아씨, 무뇌수두증을 앓고 있는 찬송이가 친부모에게 외면당하자 집으로 데려와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극 정성으로 키우고 있는 이상일·강희숙씨, 선천적 희소병인 코넬리아디란지 증후군을 지닌 혜연이를 누구보다도 예쁜 딸로 키우고 있는 황보석·김진영씨, 청각 장애아 주영이에게 밤새도록 말을 가르친 남미례씨, 자폐성 장애아 관태를 어엿한 바리스타로 성장시킨 필감려씨.

연필로 눌러쓰듯 천천히 옮겨 적어보는 이름들. 저자가 가슴으로 만난 이들을 되뇌는 몇 줄의 글만으로도 이들이 안고 살아가는 장애가 얼마나 힘겨운지 느껴진다. 그 무게만큼 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엄마들의 마음이 얼마나 숭고한지도 전해진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동생으로서 반성문을 쓸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사랑하는 엄마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책 속의 이들에 비하면 작은 장애를 지닌 오빠이지만, 나는 늘 오빠에게서 멀어지려 했고 오빠를 원망한 날들도 많았다. 만약 오빠가 책 속의 장애인들과 같았다면, 만에 하나 내 아이들 중 하나라도 장애아가 있었다면, 아니 오빠 정도의 장애라도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오빠를, 내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며 사랑할 수 있었을까?

장애아가 넘어져도 엄숙해지지 않는 사회

부끄럽게도, '예'라는 대답을 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가족이니까 아마도'라는 대답을 쉽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이겨내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인 걸 책을 통해서이지만 들여다봤기에 대답이 쉬 나오지 않는다.

저자가 만난 열한 명의 엄마들 모두 처음엔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고백한다. 자고 나면 기적처럼 나아 있을 거라는, 치료를 받다보면 언젠가는 비장애인처럼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속에 장애를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장애물로 생각해 힘든 날들을 보냈다 한다. 막연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고통 속에 담보 잡혀 살아야 하는 괴로운 날들이었을 것이다.

'완치'라는 헛된 욕심을 버리고 아이의 장애를 평생 함께 가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후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바라보니 그 어떤 아이보다 특별한 아이, 가족이 되었다는 엄마들의 고백. 오빠의 동생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돌아본다.

"현호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현호 때문에 살아요. 현호 때문에 웃고, 현호 때문에 감동하고, 현호 때문에 우리 가족이 더 단단하게 뭉치고 사랑해요."

이들의 고백에 깊은 반성과 존경을 표하지만, 한편으로 가족만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들고 버거운 현실 또한 느껴진다. 이 책의 모든 엄마들이 장애아를 위한 정책의 개선을 요구한다. 마땅히 장기적인 계획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장애아를 위한 복지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어두운 그늘'이 아닌 '든든한 그늘' 나의 오빠

오빠 미안하고 고마워
▲ 이제야 돌아가는 동생의 자리 오빠 미안하고 고마워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그와 더불어, 장애를 특별한 아픔으로 낙인찍지 않고 누구나 겪고 있는 아픔의 하나로 받아들이며 함께 잘 살아가려는 가족들처럼 우리 사회도 보다 마음을 열고 그들 가까이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장애'라는 이름으로 선을 긋고 다른 세상으로 밀어내지 않고, 동네마다 한두 명쯤은 흔히 있었던, 조금 어눌하지만 순박한 아이들로 그들을 다시 마을이 품는다면 함께 행복한 세상에 보다 가까워질 것 같다.

"한때는 혜연이가 '정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평범한 아이가 될 것 같았죠. 하지만 지금은 혜연이가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혜연이와 같은 장애아들이 보호자가 없어도 안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꿉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엄마들 모두의 꿈처럼 말이다. 길을 가다 장애아가 넘어졌을 때 엄숙해지지 않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손 잡아줄 수 있는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저쪽 세상으로 밀려나 있던 장애아들을 다 같이 사는 세상으로 끌어당겨 본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오빠와 나 사이에 그어 놓았던 보이지 않는 선을 지워본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그 어떤 마음보다 뜨거운 사랑을 담아 세상에 내어 놓은 열한 명의 친구들과 그들의 엄마들, 가족들에게, 용기를 주셔서 고맙다고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위로와 기쁨이 되는 따뜻한 글을 써오고 있는 '닮고 싶은 엄마' 김혜원 시민기자에게도 따듯한 온기를 전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오빠가 늘 마음의 짐이라 생각했는데, 오빠는 늘 오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어느새 30대 후반이 되어, 돌아가신 친정 아빠 대신 엄마와 내게 '어두운 그늘'이 아닌 '든든한 그늘'이 되어 주고 있었다.

내일 친정아빠의 첫 번째 기일을 맞아 친정으로 간다. 어느새 아빠의 자리를 대신하는 오빠를 만나면 그동안 잘난 척하며 짊어지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여느 여동생처럼 오빠에게 투정도 부리고 맛있는 것도 사달라며 어리광을 부려야겠다. 아마도 말로 꺼내진 못하겠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내 오빠로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해야지. 살면서 처음으로, 오빠를 생각해도 마음이 무겁지 않은 날이다. 아빠를 잃어버린 봄이 돌아왔지만 슬프지 않다. 이제 내게 봄은 오빠를 찾은 기쁜 봄이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 장애아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

김혜원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오마이북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