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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 육아 임신 신생아 아기 손 엄마 산모
 드디어 잡았다. 홈런이의 손.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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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애 낳아본 엄마들이 출산을 앞둔 내게 해준 말이 있다.

"하늘이 노래져야 애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출산하면서 노란 하늘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애가 안 나온 건 아니다. 노란 하늘을 보는 대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허허벌판에서 진통에만 집중했다. 그 어둠속에서도 내가 '진통의 끝, 홈런이(우리 아기 태명)와의 만남'을 향해 가는 길을 잃지 않았던 건 전적으로 남편의 도움 덕이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 내 곁에서 힘을 내라고 끝까지 응원해준 남편이 없었다면 반쪽짜리 출산이 되었을 것이다.

홈런이를 만나기 사흘 전. 예정일이 지나면서 초조해졌다. 예정일이 지나면 양수가 줄어 아기가 힘들어하기도 하고, 아기가 커지면 위험요소가 많아져 병원에 가면 유도분만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 홈런이가 예정일 전에 나와주기를 바랐다. 또 홈런이를 일찍 보고 싶은 마음에 배를 쓰다듬으면서 "우리 좀 일찍 보자"며 많이 부탁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주변 사람들의 걱정도 커졌다. "아직이니?", "소식 없지?" 등의 문자를 자주 받았는데, '너무 자주' 받다 보니 나중엔 그런 연락조차 재촉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남편도 남편대로 홈런이를 많이 기다렸다. 남편은 예정일 일 주일 전부터 내가 다른 일로 연락하면 "비상 상황이야?", "아기 나와?" 하고 물었다. 어쩌면 홈런이의 출생과 함께 선물처럼 주어질 '출산휴가'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3월 2일 저녁, 그날도 남편과 나는 초조함과 기다림을 애써 잠재우며 텔레비전으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었다.

사실 <개그콘서트>가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더니 목이 아파 밥도 잘 못 먹고 있었고, 컨디션도 괜히 좋지 않아 잠을 많이 설쳤다. 게다가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홈런이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 다리를 베고 누워 축 쳐져 있는데 남편이 스마트폰을 슥 건넨다. 남편이 쓴 글이다. 홈런이한테 쓴 편지였는데, 무뚝뚝함과 다정함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같이 섞여 있는 남편의 속마음을 읽으면서 입에 미소가 지어졌다.

글에서 남편은 홈런이에게 잘 나와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의 '애인'이었고 앞으로도 '애인'일 내가 눈물 흘리지 않게 함께 잘살아 보자고 부탁했다. 내가 그동안 자연출산 한다고 노력한 것도 남편은 다 알고 있었다. 글을 쓴 아빠의 마음과 글을 본 엄마의 감동이 홈런이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일까? 다시 <개그콘서트>에 눈을 돌리려던 그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바로 화장실에 가봤다.

하늘이 노래져야 애가 나온다고?

'아! 양수다!'

양수를 보자마자 또 이유 모를 눈물이 주룩 나온다. 울먹거리며 남편을 불렀다.

"양수가 나왔어."
"그럼 어떻게 해?"
"몰라. 양수가 나왔어. 이제 홈런이를 만날 수 있어."
"바보. 얼른 조산원에 전화해봐."

전화해 봤더니 진통이 4분 간격일 때 조산원으로 오라고 했다. 양수가 계속 새어나와 신경 쓰이기도 하고, 홈런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푹 잠겨 그날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조산원에 갔더니 집에 가서 편한 분위기에서 더 진통을 하고 오란다. 집에 와서 진통을 하는 와중에 점심을 시켜 먹은 후, 남편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줬지만 진통 덕에 난 웃을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큰일이 나고야 말았다. 홈런이가 태변을 눠버린 것이다. 양수도 모자란 판국에 태변까지. 분명 이건 비상사태다.

남편에게 어서 조산원에 가자고 했다. 내진해 보니 진행은 40%, 다리와 배 쪽에만 양수가 조금 남아 있고 태변까지 본 상태. 그동안 조산원 체조수업을 늘 유쾌하게 지도해 주던 조산사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다행인 건 홈런이의 심장이 건강하게 뛰고 있던 것. 홈런이가 이렇게 잘 견뎌주는데 내가 이러고 있을 수 없지! 더 힘을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조산사 선생님은 남편을 데리고 나가 '대학병원에 가야 할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준비하라'고 했단다. 우리 남편, 혼자 얼마나 걱정했을까.

조산사 선생님은 남편에게 진통을 촉진하는 유두 자극을 지시했고, 나는 짐볼에 앉아 진통이 더 빠르게 오도록 운동을 했다. 덕분에 점점 진통은 강해졌다. 아파하는 아내를 보면서도 더 아프게 만들어야 했던 남편, 많이 괴로웠을 텐데 생각해 보니 지금껏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아무튼 진통은 결국 1분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찾아왔고, 어느새 나는 눈을 감고 진통을 느끼면서 내 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은 진통을 겪는 동안 큰 역할을 해주었다. 출산 이틀 전, 속성으로 가르쳐준 호흡법도 제법 잘 기억하고 호흡을 같이 해주었다. 내가 격투기 선수 김동현이고 자신은 코치 같지 않냐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내가 호흡을 놓칠 때마다 잘 이끌어주었다.

"천천히 들이쉬고 하낫, 둘, 셋, 내쉬고 하낫, 둘, 셋, 넷, 다섯, 여섯. 자기 숨 쉬어야 해. 숨 쉬자. 잘 하고 있어."

내가 눈을 질끈 감고 진통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바로 남편이었다. 내가 눈을 감아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 걱정도 잡념도 없이 진통만 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더 빨리 진통을 진행 시킬 수 있었다. 드디어 호흡이 어려워지고 내 신음소리가 커졌다. 어느 순간 조산사 선생님 두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홈런이가 잘 견뎌주고 있네."

홈런이의 심장은 여전히 잘 뛰고 있었다. 조산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난 더 힘을 냈다. 선생님은 남편을 내 등 뒤에 앉으라고 했고 난 남편에게 기대어 앉았다.

'아! 이거 거의 마지막 자세인데? 홈런이가 거의 나온 건가?'

그전까지 나는 남편과 조산사 선생님의 "거의 다 됐어"라는 말을, 등산할 때 자주 듣는 "거의 다 올라왔어요"라는 말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정말 곧 고통도 끝나고 홈런이를 만나겠다는 생각에 힘을 또 더 쥐어짜낼 수 있었다.

처음 겪어본 큰 고통... 무엇이 나를 강하게 했을까

 홈런이를 가슴에 안고 재우는 남편. 둘이 마주 보고 있으면 '데칼코마니' 같다.
 홈런이를 가슴에 안고 재우는 남편. 둘이 마주 보고 있으면 '데칼코마니' 같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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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이 낳고 저녁 먹어도 되겠네."

강렬한 진통이 시작되고 두 시간쯤 되었을까, 이 말이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 되었다. 그때부터 '힘주기'도 시작됐다. 진통에 비하면 힘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통은 거의 막바지였지만 진통이 올 때마다 힘을 주다 보면 강렬한 진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큰 숨 들이쉬고 여섯까지 숨 참기. 그렇게 힘주기를 여러 번, 남편이 내 옆으로 자리를 바꾸고 내 호흡도 달라졌다. "하, 하, 하"하고 소리 내며 숨 쉬기를 집중해서 하는데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다 됐어"를 연발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홈런이가 쑤욱 하고 나왔다.

사실 나는 홈런이가 나왔는지 몰랐다. 따뜻하고, 온몸이 태지로 덮인 홈런이가 배 위에 올려졌을 때, 그제야 알았다. 그동안 남의 출산 장면을 보거나 얘기를 들을 때 눈물이 찔끔 나왔던 적이 많아 홈런이를 낳고도 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내 품의 홈런이를 보면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홈런이한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한 것 같다. 홈런이도 몇 번 '응애' 하고는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가만히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직 우리는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이쿠, 이렇게 튼튼한 탯줄은 처음 보네. 아주 건강하네."

조산사 선생님의 칭찬을 들으면서 남편과 같이 탯줄을 잡아 아직 뛰고 있는 태맥을 느꼈다. 태맥이 끊기자 남편이 가위를 잡고 탯줄을 잘랐다.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아빠를 찾아 두리번거렸을 뿐, 그때도 홈런이는 울지 않았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출산만큼 내 의지를 내세워서 해본 것이 없다. 무얼 하든 포기가 빠르고 자기합리화에 익숙했던 내가 처음 겪어본 큰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면했다. 무엇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을까? 자연출산을 했다는 뿌듯함에 스스로 대견해했고 지친 와중에도 함께 고통을 견디고 태어나준 홈런이도 대견하고 고맙다. 출산 후 조산원에 있는 동안 받았던 밥상(床)은 그래서 더 상(賞) 같았다.    

홈런이가 태어난 지 벌써 17일째. 홈런이는 '호진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호적에 올랐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순간, 셋이 함께였다. 그렇게 서로 응원하고 돕고 함께 힘을 냈던 내 첫 출산의 기억은 따뜻함으로 남아 있다. 육아 17일째, 어설프게 엄마 노릇 하느라 벌써 임신 기간 동안 흘렸던 만큼의 눈물을 쏟아냈지만, 홈런이(아니 이젠 호진이라고 해야겠다)와 남편, 그리고 내가 건강하게 함께 살 부대끼며 지내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이제 남편과 함께 새롭게 육아의 길을 걷는다.

덧붙이는 글 | 이상으로 '두근두근 엄마 되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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