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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는 교육감을 위한 자치가 아니고 교육주체(학생, 학부모, 교직원)를 위한 주민자치이다. 더 나아가 무상급식 배분, 학습준비물, 학교보안관 제도 등 교육이 이제는 시민들의 요구로 교육청을 넘어 시·구청과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마치 교육자치가 교육감과 교육청만을 위한 자치라고 여기는 듯하다. 교육논리로 대응해야 할 문제를 다분히 정치적인, 아니 정략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혼란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혁신교육을 주도하지는 못할망정, 교육주체들과 지역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학교 지원 사업에 나서고 있는 서울시와 구청에 교육장과 교장들을 통해 협조하지 말라고 한 일 때문이다.

혁신학교, 진보가 시작한 정책사업이라는 이유 만으로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대안을 넘어 표준으로 자기 매김하고 있다. 경기도는 물론 서울, 강원, 전북, 전남, 광주 지역에서 '학생들에게는 행복을, 교직원들에게는 보람을, 학부모들에는 만족을' 선사하고 있다. 학생들이 혁신학교로 몰리고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서울교육청은 곽노현 교육감 시절, 구로구와 금천구를 혁신교육지구로 선정했다. 친환경 무상 급식처럼 교육청과 시청과 구청이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하는 교육정책사업이었다. 학생들의 전출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교육주체들이 환호했고 만족도 높은 '행복한 학교 만들기'였다.

하지만 이후 문용린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가 민주진보진영이 시작한 정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혁신'이라는 말도 빼고 '교육우선지구'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난해 교육지원사업 예산을 편성하기 전 서울시가 "서울시와 시 교육청이 함께 예산을 지원한 구로·금천구 혁신교육지구에 대해 학교와 지자체의 반응이 좋아 올해 예산을 더 편성하자고 시 교육청에 제의"했다. 하지만 시울시 교육청은 "구로·금천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다른 구로 확대하지 않고 혁신교육지구 사업 자체를 축소하겠다"며 반대했다. 실제로 올해 혁신교육지구 예산은 지난해 29억 원에서 구로·금천 각각 5억 원씩 10억 원으로 예산이 축소 편성됐다.

서울시는 '서울시 교육 격차 해소와 인재양성을 위한 조례'에 의해 지난해 1900억여 원에 이어 올해는 무상급식을 제외한 430억여 원 내에서 교육청과 협의를 통해 교육 현장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는 혁신교육지구 사업 중 현장에서 만족한 사업에 한해서 예산을 지원해주겠다고 했으나 시 교육청 측이 "서울시가 그럴 필요 없다. 이전에 했던 대로 교육 경비만 지원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 교육청이 반대하자 서울시는 어쩔 수 없이 자체적으로 혁신교육지구 사업 프로그램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문예체 협력교사 파견지원', '창의적 테마체험활동', '진로·직업교육' 세 개 사업과 자치구 특화 사업 프로그램 등 총 네 개의 사업에 대해 8개 자치구를 선정, 시 교육청을 거치지 않고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 2일 <한겨레>는 ''서울시·구청의 교육사업에 참여 말라' 일선학교 압박'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보낸 공문을 받아 보니, 서울시와 일부 구청이 추진하는 교육사업에 참여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각 학교로 내려 보낸 공문.
 서울시교육청이 각 학교로 내려 보낸 공문.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달 26일 11개 교육지원청과 모든 공·사립 유·초·중·고에 '지방자치단체 교육경비보조사업 추진 관련 유의사항 알림'이라는 이름의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은 "최근 지방자치단체 교육협력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서울교육정책방향과 연계되지 않은 1회성 교육과정 지원사업과 인건비성 사업의 증대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지자체) 지원사업은 반드시 본청 및 교육지원청의 해당부서와 충분한 사전 협의 후 결정"하라고 돼 있었다.

교육청 지시는 곧바로 효과를 나타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김영배 구청장이 있는 성북구청은 지난달 27일 관내 학교 관계자들을 초청해 '지역사회 교육컨텐츠 연계사업'을 소개하는 설명회를 열었다. 이 사업은 비영리법인이나 기업이 학생들한테 진로체험이나 인문학 등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으로 구청이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하지만 애초 참여한다던 학교 19곳 중 당일 참석한 학교는 7곳뿐이었다.

성북교육지원청 장학사들이 설명회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학교에 찾아가는 등의 방법으로 참여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복수의 학교 운영위원들은 "장학사가 학교에 연락해 구나 시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일절 응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성북지역 교육시민단체관계자들은 성북교육장을 면담하였다.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성북교육장은 "교육우선지구 사업이나 성북구 교육콘텐츠 사업이나 모두 학교의 교육자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선심성 사업을 위해 멋대로 교육우선지구 사업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11개 교육장들을 비롯한 모든 교장들은 이것에 반대하며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북구 교육콘텐츠 사업도 구청에서는 그냥 시설개선사업비만 주면 되지 교육콘텐츠 사업까지 관여하는 건 교육자치의 침해다. 이것은 성북교육청만의 문제가 아니라 11개 교육지원청 모두의 문제다. 절대 협력과 타협과 양보 없다. 내가 여기에 동의하면 교육장단에서 나만 배신자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시에 공모하여 받은 '에너지 절약 실천 프로그램 예산'까지 반납

서울교육청이 일선학교에 내려 보낸 이 공문은 다른 교육 협력 지원 사업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양천구의 혁신학교인 B학교는 서울시의 '에너지 절약 실천 프로그램'에 공모해 1500만 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그런데 교장이 갑자기 교육청의 공문을 근거로 반납을 요구해 교사들과 갈등 중이다.

교육협력 사업 추진 시 유의사항
 교육협력 사업 추진 시 유의사항

공문 내용 중 '교육협력 사업 추진 시 유의사항'에는 "교육과정운영프로그램 지원신청은 서울교육정책방향 및 단위학교 교육과정계획과 연계하여 신청하되, 서울교육정책방향과 연계되지 않는 지원사업은 반드시 본청 및 교육지원청의 해당부서와 사전 충분한 협의 후 결정"하라고 적혀 있다. '에너지 절약 실천 프로그램'은 서울교육정책방향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지원한다는 이유로 이를 반납하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B학교의 한 교사는 "교육청은 에너지절약에 관심이 없다는 것인가? 교육청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못해주는 것을 서울시가 지원해 주겠다고 하면 고마워해야 함에도 오히려 이 예산을 반납하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반납 종용이 과연 교장 개인의 뜻이겠는가? 교육청의 압박과 의지가 실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 교육위원을 지낸 한 교육전문가도 "문용린 교육감이 박원순 시장과 각을 세워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납세의 주체인 시민,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 나서서 그분들의 목소리로 반자치적, 반교육적, 반주민적이고 반학생적인 문용린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의 행태를 지적하고 규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치의 주체인 시민은 하나이다. 문용린 교육감의 시민이 따로 있고, 박원순 시장의 시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이든 교육감이든 시민들의 의견을 더 경청하고 참여와 자치를 더 보장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자치를 실현시키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문용린 교육감은 교육자치를 유린하면서 행정권한 독점에만 관심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김형태 시민기자는 현재 서울시 교육의원입니다. 이와 유사한 글을 서울시의회 공보실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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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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