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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건강권사업단에서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건강권에 대한 실태를 살펴보는 '가난한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쪽방주민들을 무조건 알코올 환자들로 취급을 해버려요. 병원에 가게 되면 구금을 당하게 되니까, 이 동네 사람들이 치료받으러 가고 싶어도, 구금 같은 것을 당하기 싫으니까 안 가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그리고 흡연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이끌어서 자연스럽게 끊도록 유도해주면 그 사람들도 따라 간단 말이에요. 내가 서울역에서 몇 명 정도 만나본 바로는 거의 다 갔다 왔어요. 갔다 오면 뭐하냐 말이에요. 갔다 와갖고 얼마 안 되면 다시 시작되는 걸."

2012년 동자동 쪽방촌 주민 조사에 의하면, 이곳에 거주하는 남성들의 흡연율은 66.1%였다. 전국 조사치에 비해 20% 이상 높은 수치이다. 이는 사실상 1990년대 후반의 흡연률과 맞먹는 것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담배 사용이 꾸준하게 감소하는 가운데 동자동은 20년 전에 시계가 멈춰 있는 셈이다. 또한 서울역 인근 노숙인들 앞에 소주병이 놓여 있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지나던 행인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돈 없다더니, 담배 사고 술 살 돈은 있나보지?", "저렇게 사니까 저 모양이 된 거겠지!" 많은 이들이 그들을 비난한다. 그렇다면 담배나 술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노숙인들에게, 그들이 술·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를 말해줄 수 있냐고.

노숙인데 "저렇게 사니까 저 모양" 욕하기 전에...

 홀로 쓰러져 있는 노숙인을 바라보는 또다른 노숙인의 모습이 처량해보인다.
홀로 쓰러져 있는 노숙인을 바라보는 또다른 노숙인의 모습이 처량해보인다. ⓒ 박정훈

영국의 건강불평등 연구자 그레이험 교수는 빈곤층 여성의 흡연 문제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바 있다. 당시 조사에서 영국 여성의 흡연률은 22%였는데, 저학력 여성들의 흡연률은 46%나 되었다. 그들 중에서도 미숙련 일자리를 가진 여성의 흡연률은 50%,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경우 흡연률은 67%였다. 만일 사회적 부조를 받는 빈곤 상태까지 겹치는 경우, 흡연률은 73%까지 올라갔다.

심층 면담에 참여했던 한 여성은 남편 없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며 혼자 어린 아이를 키우는 자신에게, 문밖에서 잠깐 담배를 피우는 행위야말로, 성인으로서 유일하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적 활동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산층에게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 퇴근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 직장 상사 뒷담화, 남편의 흉을 늘어놓는 그런 일상이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주 잠깐, 무거운 마음의 짐을 거두고 숨 돌릴 수 있는 그 시간을 유일하게 함께 해 준 것이 '담배'였던 것이다.

빈곤이나 사회적 박탈에 처한 이들에게 술과 담배는 저렴한 위안이자 대응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가 술과 담배를 피함으로써 얻는 건강상의 이득은 대개 미래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토록 어렵고 고단한 삶 속에서 5년 후, 10년 후를 기약하는 것이 이들에게 무슨 의미일까. 더구나 열악한 주거 환경, 위험한 일자리처럼 더 심각하고 즉각적인 위협에 항상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알코올 장애 환자 수 180만명인데, 치료는 0.4%에 불과

 2007년 통계에 의하면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 수는 약 180만 명인데, 입원 치료든 상담치료든 뭔가를 하고 있는 이들은 그 중 0.4%에 불과했다.
2007년 통계에 의하면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 수는 약 180만 명인데, 입원 치료든 상담치료든 뭔가를 하고 있는 이들은 그 중 0.4%에 불과했다. ⓒ 이정혁

그렇다고 이들이 술·담배를 실컷 하도록 내버려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담배와 폭음이 건강과 안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절제에 대한 점잖은 충고나 도덕적 힐난이 아니다. 심지어 이러한 것들은 효과를 발휘하기도 어렵다.

첫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술·담배로부터 건강을 지켜야 할 이유, 삶의 이유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될 것이다. 최소한 건강해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에게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결정한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의 경험도 중요하다. 꼭 건강과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자력화 그 자체는 건강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금연보조제 제공이나 알코올 중독 치료 같은 실질적인 의학적 도움도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예컨대 2007년 통계에 의하면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 수는 약 180만 명인데, 입원 치료든 상담치료든 뭔가를 하고 있는 이들은 그 중 0.4%에 불과했다.

2012년 경찰은 사회의 안녕과 주취 폭력 행위자에 대한 엄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고 쪽방과 홈리스 등 가난한 이들이 밀집한 지역을 주폭 우범지역으로 선포하여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전과 94범의 주폭'이라고 떠들썩하게 발표했던 이는 악질 범죄자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가난한 이였다.

담배 때문에, 술 때문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혹은 버림받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도, 누구나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고, 또 그렇게 살 권리가 있다.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가난한 동네에서 가장 효과적인 금연·금주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덧글에 글쓴이 김정숙씨는 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건강권 사업단, 김명희씨는 시민건강증진연구소애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건강세상네트워크#건강권#빈곤#술#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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