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최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안전관리체계 개편(안)> 대외비 문건.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최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안전관리체계 개편(안)> 대외비 문건.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오전 10시 30분 시작한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침몰사고에 사과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지 14일 만의 공식 사과였다. 이는 지난해 2월 취임한 이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사건과 기초연금 대선공약 파기,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사건에 이은 '네 번째 대국민사과'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 문제점으로 지적된 재난안전의 컨트롤 타워에 대해서는 전담 부처를 설치해서 사회재난과 자연재해 관리를 일원화 해 효율적이고 강력한 통합 재난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라며 특히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 신설' 계획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안전행정부 산하기관)에서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세월호 사건 검토에 따른 국가안전관리체계 개편(안)> 문건에는 '총리실 중심의 재난관리기구 신설안'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대통령실의 재난관리기능을 강화하는 안이나 재난안전부를 신설하는 안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이날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 신설'을 대안으로 내놓은 것을 두고 대통령(청와대)에 쏟아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휘·관리체계 혼선이 세월호 침몰사고 키웠다 

29일 <오마이뉴스>에서 입수한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국가안전관리체계 개편(안)>이라는 대외비 문건은 현행 국가재난관리체계와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두 가지 개선안'을 내놓았다.

먼저 문건은 ▲ 평상시 및 긴급시 대책관리기구 분산(이원화) ▲ 자연재난과 사회적 재난의 이원적 대응체계 ▲ 통솔체계 분산으로 부처 간 협조의 어려움 ▲ 현장 지휘체계 혼선 ▲ 민-관 협력체계를 통솔하는 관리체계 부재 등을 현행 국가재난관리체계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의 맥락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어 문건은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 사고현장에서의 초동대응 미흡 ▲ 해난구조 대응체계 및 현장 지휘체계 혼선 ▲ 민·관 협력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함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정부와 해경이 지휘체계 혼란으로 긴급구조 골든타임과 본격구조 골든타임에 적기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주요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짚었다.

실제로 사고가 일어난 뒤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교육부, 해양경찰청 등은 물론이고 지자체 등에서도 별도의 대책기구를 설치하면서 10여 개의 사고대책본부가 난립했다. 이로 인해 중앙안전관리대책본부(중대본, 본부장 안정행정부 장관)는 신속하고 정확한 지휘·관리체계를 작동시키지 못했다. 즉 이러한 지휘·관리체계의 혼선이 세월호 침몰사고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 문건의 진단이다.

재난관리 총괄기구로서 재난안전부를 신설하는 방안이 가장 나은 것으로 평가됐다.
 재난관리 총괄기구로서 재난안전부를 신설하는 방안이 가장 나은 것으로 평가됐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청와대를 강화할까, 재난관리 전담 부처를 신설할까?

문건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지휘·관리체계의 통합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콘트롤 타워를 일원화하고, 현장지휘권은 현장 관서장 중심으로 통합하고, 재난유형별 대응체계를 일원화하고, 중앙-지역간 민·관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건은 이러한 전제와 원칙을 바탕으로 ▲ 대통령실의 재난관리기능을 강화하는 방안(1안) ▲ 재난관리 총괄기구로서 '재난관리부'를 신설하는 방안(2안)을 제시했다.

1안은 대통령이 중대본을 지휘하는 등 대통령실의 재난관리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현재 국방·외교·통일 기능만 수행하는 국가안보실을 '국가안보·재난관리실'로 확대·개편하고, 중앙(중대본·소방방재청)-지역 상황실 간 운영체계를 이 국가안보·재난관리실로 통합해 운영한다는 것이다.  

특히 1안에는 안전행정부장관과 함께 국가안보·재난관리실에도 중대본을 가동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중대본 차장에는 현행 안정행정부 2차관 대신에 소방방재청장을 임명해 중대본의 집행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건은 1안의 최대 장점으로 "콘트롤 타워의 일원화"를 꼽았다. "콘트롤 타워를 대통령 차원으로 격상시켜 재난관리의 신속성 제고 및 통합적 대응(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서 직접 총괄하는 경우 정치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은 단점으로 지적됐다. "대통령실에서 직접적으로 집행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한계가 존재"하고, "정치적인 리더십 무력화의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2안은 각 부처를 총괄해 재난관리를 담담할 전문기구로서 '재난안전부'(가칭)를 신설하는 방안이다. 이 안에는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에서 각각 맡고 있는 재난관리업무와 방재업무를 재난안전부로 옮기고, 해양경찰청도 재난안전부에서 관할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2안에 따르면, "재난관리 일원화를 통한 통합재난관리가 가능"하다. 재난안전부라는 "컨트롤 타워의 상시화·일원화를 통한 통합적 재난지휘체계 확립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실의 재난관리기능을 강화하는 1안에 비해 "대통령의 업무 과부하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반면 ▲ 부처 신설에 따른 협력체계 정착에 일정시간 소요 ▲ 각 중앙부처 및 지자체의 재난관리 책임성 약화 등이 우려된다.

박 대통령, 왜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 신설' 택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침몰사고'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영정과 위패 앞에서 고개숙여 조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침몰사고'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영정과 위패 앞에서 고개숙여 조문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문건은 '국가재난관리체계의 컨트롤 타워를 누가 담담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통합성·효율성, 책임성, 전문성, 실현가능성, 소망성(국민정서 부합성)을 따졌다. 그 결과 '재난안전부 신설'(2안)이 가장 나은 방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재난안전부 신설은 실현가능성이 약하긴 하지만, 통합성·효율성, 책임성, 전문성이 높았다. 대통령실의 재난관리기능을 강화하는 1안은 책임성과 소망성이 높았지만 통합성·효율성, 책임성, 전문성 등은 각각 보통 수준이었다.

문건은 특히 '총리실 중심의 재난관리기구 신설안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라는 항목에서 총리실에 재난관리처를 두는 경우 "재난관리체계의 통합성 제고로 일원적 대응과 부처 통솔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총리실의 기본기능은 조정·통제기능인데 집행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맞지 않"고, "총리실은 자치단체와의 협력관계에서 경험축적이 적어 관계유지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건은 총리실 중심의 재난관리기구 신설안은 '대통령실의 재난관리기능을 강화하는 안'(1안)이나 '재난안전부를 신설하는 안'(2안)보다 "비효율적"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 신설'을 세월호 침몰사고의 제도 대안으로 내놓았다. 문건이 검토한 결과에 비추어 보면,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태그:#국가관리안전체계 개편안,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세월호 침몰사고, #국가안전처, #박근혜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