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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직접 써서 내건 교내 '가로수 분향소'의 모습. '희생된 아이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글귀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교문 옆 '가로수 분향소' 아이들이 직접 써서 내건 교내 '가로수 분향소'의 모습. '희생된 아이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글귀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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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15일, 한 아이가 한 손엔 스테이플러를, 다른 한 손에 글씨가 적힌 노란 리본을 들고 있었다. 교문 옆 가로수 늘어선 길에 매달려는 것이다. 며칠 전 가로수들 사이에 묶어놓은 빨래줄 같은 끈의 용도를 알 것 같다. 족히 100미터가 넘는 그 길은 어느덧 노란 리본의 물결로 일렁였고, 아이들의 등하굣길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하고 있다.

"수업시간, 선생님이 나눠준 리본에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거예요. 글씨는 삐뚤빼뚤할지 몰라도,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만큼은 정성스럽게 표현했어요. 이 마음이 희생된 단원고 친구들과 유가족들에게 그대로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기도이자, 영원히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에요."

그 말에, 뒤돌아서 또 한 번 꺼이꺼이 울었다. 수업시간마다 '버릇없다'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무기력하다'고 꾸지람을 들었던 아이들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허구한 날 요령만 피운다고 혼쭐나던, 그런 아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스승의 날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의 뭉클한 감동을 그렇게 '선물'해주었다.

교문에 추모 띠를 적어 내걸자는 건, 어느 신부님과 몇몇 아이들이 낸 아이디어라고 한다. 까닭을 물었더니, 이 땅의 교사임을 또 다시 부끄럽게 만드는 답변이 '죽비'가 되어 돌아왔다. 그것은 '학교교육'의 본령에 대해서 던지는 아이들의 근본적인 회의이자, 관행에 찌든 교사의 무능과 타성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졌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대학입시를 앞둔 고3은 분노는커녕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 존재잖아요. 저희 또래와 후배들이 참변을 당했는데도 분향소 한 번 찾아가 헌화할 시간이 없어요. 마음만은 그곳에 수천 번이라도 가고 싶지만, 평일엔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고, 고3이라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해야 하니 어쩌겠어요.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학교에 분향소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하게 된 거예요."

"중앙 현관이나 통로 한 구석에 조그맣게 국화꽃으로 제단을 쌓고, 촛불과 향을 피우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누군가 종일 상주해서 관리할 게 아니라면 운영이 힘들 거라 봤어요. 그래서 차라리 실내가 아닌 실외에,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만들자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국화 대신, 각자 추모의 마음을 담은 노란 리본을 매다는 '가로수 분향소'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학교교육은 4월 16일 이후로 전혀 달라지지 않은 '유일한' 분야일지도

정말 그랬다. 고3은 말할 것도 없고, 1, 2학년들조차 분향소에 갈 시간이 없다. 주말을 제외하면 고3들과 하루 일과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2014년 4월 16일' 전과 후로 구분된다고 못 박을 만큼 세월호 참사가 몰고 온 충격은 엄청났지만, 대학입시에 '올인'하고 있는 우리 고등학생들의 '하루 일과'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철옹성이다.

동생들인 고1의 수업시간, 분향소에 다녀온 아이들의 수를 파악해보았다. 한 반 38명 아이들 중, 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는, 달랑 3명뿐이었다.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는 '변명'이 이어졌다. 개중에는 "아빠, 엄마가 대신 가 헌화하고 올 테니, 너는 그 시간에 공부나 해라"는 부모의 말을 핑계 삼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을 탓할 수 없는 이유다.

학교는 또래 친구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듯, 각자 속으로 애도하게 할지언정, 행동으로 실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성찰을 위한 계기수업조차 자칫 '불온 선동'으로 매도되는 현실에서, 학교는 더욱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학교교육은 4월 16일 전과 후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분야일지도 모른다.

희생된 단원고 친구들의 유가족을 떠올리며 쓴 듯한, '아들 딸의 빈자리 저희가 채워드리겠다'는 글귀도 보인다.
▲ 희생자 유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희생된 단원고 친구들의 유가족을 떠올리며 쓴 듯한, '아들 딸의 빈자리 저희가 채워드리겠다'는 글귀도 보인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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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직원 회의 시간을 빌어, 전 학년 아이들과 함께 분향소로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교육부로부터 1학기 중 모든 교내외 행사를 '자제'하라는 긴급 공문이 하달된 바로 직후였다. 주지하다시피, 그 이후, 추모 집회 참석을 금지하라는 등의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부쩍 강조하는 공문이 쏟아졌고, 학교 안팎으로 교실수업을 제외한 일체의 교육활동은 모두 사라졌다.

5월은 학교에서 교내외 행사가 가장 많은 달이다. 물론 계절적인 요인이 크겠지만,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등 기억할 만한 기념일이 많아, 여느 달에 견줘 이른바 '교육적 활용 가치'가 큰 때다. 학교마다 소풍도, 체육대회도, 문학기행 등 학부모활동도, 동아리활동이나 진로탐색활동 같은 체험학습도 대부분 5월에 집중적으로 편성돼 있다. 그런 '5월'이 학교에서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고3이라 주말에도 공부해야 하니... 우리 스스로 분향소를 만들자"

교육부의 '추상같은' 공문이 아니었다면, 단언컨대, 전국 학교마다의 5월은 세월호 참사의 추모 물결로 넘실댔을 것이다. 관행에 따라 학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죽인 채 가만히 있는 것이 제대로 추모하는 방법이라 여긴 교육부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 지침은 교사와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악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군대 조직을 방불케 할 만큼 교육부 공문의 '위력'은 대단했다. 전국의 모든 학교의 계획된 1학기 행사를 순식간에 중지시켜버렸다. 행사의 교육적 가치를 운운하는 건, 추상과 같은 정부의 명령을 거역하는 짓이며, 졸지에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패륜아'로 치부될 판이었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무한 책임'을 그 공문 한 장으로 확실하게 학교에 전가시켜버렸다.

분향소로 소풍 가자는 제안에 많은 동료교사들이 교육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며 동조했지만, 끝내 시행되지는 못했다. 어떻든 공문에 적시된 교육부의 지침을 거역하기는 곤란하다는, 뿌리 깊은 관행이 작용한 결과다. 예컨대, 아무리 좋은 취지라지만 분향소로 가다 아이가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사뭇 '억지스러운' 두려움마저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다.

상급기관의 책임마저 일선 학교에 떠넘기는 무능한 교육부와, 그런 행태를 너무나 잘 알기에 공문 내용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공문이 아니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학교가, '어른'이랍시고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부와 학교가 '교육'이라는 단어 자체를 욕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건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참사는, 교사와 학부모, 심지어 아이들에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부 공문을 받고 교사들은 움찔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는 와중이지만,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학교에 분향소를 차릴 생각을 할 만큼 성숙해있다. 아이들 앞에서 먼저 추모의 본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그들이 차린 가로수 분향소에 찾아가 '숟가락을 얹는'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어른'이라는 말조차 부끄러운 시절, 그렇게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다. 그날은 애꿎게도 스승의 날이었다.


태그:#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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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세월호' 침몰사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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