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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저는 새벽 5시경 일어 났습니다. 다른 직원이 우리 동네에서 그리 멀잖은 곳에 사는데 같이 트럭을 타고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건설 현장 다니던 업자가 그만두래서 그만둔 저는 다른 일자리를 찾다가 화물택배 배달원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서 면접 보고 출근하라 해서 출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까대기부터 해야합니다. 그리고 송장챙겨 자기 구역으로 배달 나갑니다."

 

'까대기가 뭐냐'고 묻자 화물차로 온 물건을 모두 내리고 구역별로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늦어도 새벽 5시 50분까진 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침 6시부터 화물을 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벽 5시 20분에 맞춰 나가니 00화물택배라는 글이 새겨진 트럭이 한 대 집앞에 서 있었습니다. 첫 인사를 나누고 가면서 저는 하는 일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힘든 부분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마음잡고 함 해보세요."

 

40여 분 되어 트럭은 택배 영업소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대형 트럭 한 대가 이미 와서 서 있었습니다. 주요 큰 도시마다 모아진 화물을 실어 울산에 도착하면 새벽이라고 합니다. 화물 기사는 차에서 칼잠을 자고 아침에 우리가 출근하면 '까대기' 준비를 해준다네요. 너덧 명의 종업원이 도착하더니 화물트럭 기사를 깨웠습니다. 부스스 눈 뜬 기사는 길 옆에 세워둔 대형 트럭을 몰아 영업소 안 공간으로 이동시키고 문을 엽니다.

 

그 큰 트럭 탑차 안에 가득한 화물과 택배. 오래된 종업원 한 사람이 차에 오르더니 바코드 기계를 들고 바코드를 찍고 물건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6시경 시작된 까대기 작업은 오전 7시경 1차 분이 끝났습니다.

 

가까운 지역에서 온 차량은 빨리 도착했으나 먼 곳에서 출발하는 차량은 늦게 도착했습니다. 우린 1차분을 다 내린후 다소 시간이 나서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일주일 일해보니 제가 일하는 곳 영업소 일의 흐름이 그랬습니다. 우린 가까운 밥집으로 가서 아침을 시켜 먹었습니다. 밥먹는 시간도 느릴수 없었습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화물트럭이라 되도록 빨리 내려주고 보내야 했습니다.

 

밥을 빠른 속도로 먹고 영업소에 가보니 이미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트럭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트럭에서 화물을 다 내리고 나니 쉴 틈도 없이 다른 지역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2차, 3차, 4차까지 화물을 다 내리고 나니 오전 9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왜 이리 크고 무거운 물건들이 많으냐고 다른 종업원에 물으니 말합니다.

 

"우린 택배가 아니라 화물택배입니다. 택배만 취급하는 곳과는 그것이 구분됩니다. 화물은 주로 공사현장과 업체에서 많이 보냅니다. 택배차는 탑차로 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냥 트럭이잖아요. 화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탑차를 쓸 수가 없지요. 무거운 짐이 오면 지게차로 떠서 실어야 하는데 탑차로 되어 있으면 그 작업을 못합니다."

 

아침 9시경, 까대기를 마치니 이어 송장을 가릅니다. 이미 화물과 택배는 지역별로 나누어 내렸습니다. 송장은 찍은 대로 전산처리되어 인쇄 되므로 주소별로 지역별로 나누어야 합니다. 배달해야 할 화물과 택배가 창고 안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초보인 저는 은근히 속으로 겁부터 났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침없이 욕하는 '사수'... 이유를 알겠네

 

"겁먹지 마이소. 하다보면 다 합니다."

 

같이 트럭타고 출근한 동네 종업원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업소 소장은 오래된 종업원에게 일주일간 잘 가르치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선 일 가르쳐주는 사람을 '사수'라 불렀습니다. 제 사수로 정해진 사람은 퉁퉁하고 덩치가 있는 종업원이었습니다. 첫날 저는 그를 따라 하루 다녀 보았습니다.

 

그는 몇 년 다른 곳에서 택배일을 하다가 우리 영업소로 온 지 몇개월 접어 들었다고 했습니다. 30대 초반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그는 성격이 급했습니다. 운전 하다가도 조금만 거슬리면 욕부터 했습니다. 운전자가 여자면 여자욕을 하고 남자면 남자욕을 했습니다. 제 귀엔 참으로 거슬리는 욕을 그는 거침없이 해댔습니다.

 

그는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습니다. 아침에 온 화물 까대기 작업도 잘했고, 송장정리와 배달 화물과 택배 물품을 트럭에 주소별로 정리하는것도 빠르게 잘했습니다. 일은 잘했으나 입이 거칠고 성질이 불같이 급했습니다. '참 거친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른 종업원도 겪어보니 배달요원이 하나같이 욕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오전에 나가 배달하고나니 점심 때가 지났습니다. 싣고 온 화물과 택배를 다 배달하고 영업소로 들어가니 점심 먹으라 했습니다. 점심은 간단하게 빨리 먹을수 있는 것으로 시켜 먹었습니다. 좁은 사무실 안 모퉁이에 작은 상 하나 펴놓고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커피 한잔 타먹을 시간은 커녕 양치질 할 여유도 없이 사수는 곧 남은 물품을 싣고 배달을 나갔습니다.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안 그러면 길거리에서 시간 다 보내고 늦게 퇴근합니다."

 

제가 맡아 할 택배는 제가 사는 동네 서편지역이었습니다. 동편은 저를 태워가는 종업원이 하고 있었고, 서편 지역을 맡아 하는 분이 당뇨와 허리가 아파 일처리가 더뎌 제가 맡아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분과 견습배달을 나갔었는데 그분도 입이 거칠었습니다. 저보다 두배나 되는 덩치가 큰 종업원이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늦게 나온 업자에게 마구 욕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택배 일이고 물품을 빨리 돌려야 하는 입장은 이해 하겠으나 그렇다고 그렇게 욕까지 하면 어쩌나 하는 안쓰러움이 생겼습니다.

 

월요일엔 배달할 화물이 적었습니다. 그러나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서너배는 많았습니다. 토요일엔 많이 줄어들고 일요일은 배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출근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 짝을 지어 당직으로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초보라 1개월간 그런 당직이 면제되었습니다.

 

"제 말이 맞지요. 이제 제가 서두르는 이유를 알겠지요. 봄엔 과일이나 마늘 같은 화물이 많아요. 가을 되면 쌀이 넘쳐납니다. 바쁠 땐 밤 9시 넘어 퇴근할때도 많아요. 그런 건 각오해야 할겁니다."

 

그랬습니다. 울산 동구엔 대기업이 있는데 오후 5시가 지나니 퇴근시간이 되었고 가는 길마다 차량이 밀려 더디게 이동해야 했습니다. 동네길 곳곳마다 퇴근한 차량으로 화물 트럭 세워 둘 곳이 없었습니다. 잠시 트럭을 세워 놓으려 하면 뒤에서 어느새 왔는지 빵빵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사수는 욕을 하면서 트럭을 다른 곳으로 이동해 세워 둘곳을 찾았습니다. 승강기가 있는 곳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40키로짜리 쌀을 어깨에 메고 5층까지 올라가니 다리가 후들 거렸습니다.

 

어느 물품엔 주소가 새주소로 되어 있었고, 어느 물품엔 구 주소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수는 주소와 위치를 찾을 때마다 휴대폰을 이용했습니다. 택배 배달업을 하려면 스마트폰이 필수인 것 같았습니다.

 

이틀 후 저 혼자 다녀보라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공인중개사를 찾아가 근처 주소와 위치를 알아보면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직접 해보니 그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디기도 했습니다. 공인중개사가 없는 곳이 많았습니다. 지도를 검색하려면 와이파이가 떠야 하는데 와이파이가 뜨지 않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결국 저는 1만4000원 기본 요금제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일을 해나가다보니 지도 검색도 문제였지만 고객마다 일일이 전화를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거운 물품이 많았는데 그것을 아파트 20여 층까지 들고 갔다가 아무도 없는 경우 경비실에 맡겨야 하는데 전화비 아끼려다 제 몸만 더 피곤하게 움직여야 할 거 같았습니다. 주소지 검색과 폭탄 요금을 피하기 위해 부득이 폰 요금제를 바꿀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월요일 새벽부터 저는 다시 새벽 5시에 일어나 다른 종업원이 몰고 다니는 트럭을 타고 출근해야하고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합니다.

 

화물 택배 배달을 해보니 가장 힘든 부분이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였습니다. 아파트나 공사 현장엔 급한 볼일 볼 곳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일반 주택가를 돌 때엔 참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곤욕스러운 것인줄 예전엔 미처 몰랐었습니다.

 

"이 일은 위험하고 힘들어요. 운전하다 보면 사고가 날수도 있어요. 예전에 어떤 분이 사고를 내서 5000만 원을 물어 주어야 했어요. 회사서 50% 부담처리 되었다고 해도 본인이 2500만 원을 물고 그만 두었어요. 어떤분은 어떤 물품을 배달하다가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그 안 물품이 100만 원 짜리 였다고 해요. 그것도 담당자가 물어야 합니다.

 

물론 보험처리 해서 회사에서도 부담하지만 50%는 담당자 과실로 하거든요. 운전도 조심해야 하지만, 물품도 잘 다루어야 해요. 모두 포장이 되어있다보니 포장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우린 모르잖아요. 그것만 조심하면 택배업도 재밌는 부분도 많아요."

 

얼마전 같이 출근하면서 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간 트럭 몰면서 배달도 해보았습니다. 아직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택배업을 선택했고 월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다시 출근해야 합니다. 속으론 겁도나고 걱정도 되지만, 저는 이 업을 해야만 합니다. 무슨 일이 생겨 거기서 그만두라 할 때까지.


태그:#화물택배,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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