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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탔을 때 옆 승객의 불쾌한 냄새 때문에 자리를 옮기고 싶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맑은 실내 공기 대신 역겨운 땀 냄새와 고릿한 냄새가 뒤범벅된 버스의 악취는 이미 민폐를 넘는 고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부어라, 마셔라'를 외치다 얼큰하게 취한 승객이 좌석 손잡이를 부여잡기 시작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혹시라도 술자리에서 먹은 음식들을 다시 확인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면 최악의 민폐 상황이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지난 2001년 전지현과 차태현이 출연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엽기적인 그녀>. 극 중 전지현은 차태현과의 첫 만남에서 지하철의 만취녀로 등장한다. 구토를 참고 참다가 결국 가발을 쓴 대머리 아저씨 위에서 구토하는 전지현의 엽기적인 연기는 보는 이들의 비위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
ⓒ 영화 <엽기적인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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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전지현은 예쁘기라도 하지. 때는 1979년 여름,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 사건은 40여 년 동안 끔찍한 악몽처럼 나를 따라다닌, 상상조차 못했던 인생 최대의 굴욕이었다.

"어떻게 이걸 가지고 버스에 타... 창피하게"

그날도 어머니는 나에게 외할머니댁에 가져다 주라고 커다란 양동이를 건네준다. 그것은 바로 외할머니댁에서 키우는 개나 돼지에게 줄 양식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모아놓은 음식 찌꺼기를 모아 가축 사료로 요긴하게 썼던 할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부지런히 모아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인 외할머니 집에 그걸 배달하라니…. 정말 해도 너무한 건 아닌가.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불볕더위에 썩어가는 음식물의 역한 냄새를 막기 위해 뚜껑 대신 비닐과 고무줄로 둘둘 감아놓았지만, 냄새와 모양새는 어쩔 수 없다.

"아, 창피하게 이걸 가지고 어떻게 버스를 타요!"
"네가 가느냐? 버스가 가지! 금방이면 가니까 조금만 참아! 다른 애들은 이것보다 더한 심부름도 잘하는데 왜 못 한다고 난리야!"
"더럽고 무겁고 냄새나고…. 난 절대 안 갈래!"


유달리 비위가 약했던 나였다. 완강히 거부하며 맞서자 "뭐 하고 있어!"란 어머니의 불호령과 함께 내 손에는 어느새 양동이가 들리고 말았다. 

잠시 후 무거운 양동이를 낑낑거리며 버스에 몸을 실은 나에게 일생 최대의 무시무시한 공포가 다가올 줄이야. 정말이지 꿈에서도 겪지 못한 일이었다. 인터넷 유머에서나 나올 법한 최악의 굴욕을 몸소 실천한 민폐남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무겁고 냄새 나는 돼지밥을 들고 버스에 오르자,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승객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눈을 질끈 감고 돼지밥의 손잡이를 꼭 붙들었다. 하지만, 버스 안의 평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출발한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일사천리로 잘 간다 싶던 버스는 내리막길에서 결국 대형사고(?)를 쳤다.

시골 길을 쌩쌩 달리던 버스는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리막길에서 급정거를 해버렸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순간 몸이 기우뚱하는 찰나, 그만 돼지밥의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양동이에 담긴 돼지밥은 바닥에 엎질러져 이미 버스는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상태가 됐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12살 먹은 초등학교 5학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상상도 못 한 그 장면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고약한 냄새나 더러운 걸 보면 헛구역질부터 먼저 하는 유난히 비위가 약했던 나였지만, 코를 부여잡을 겨를조차 없었다. '웩'하며 입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예전엔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돼지 먹이로 주기도 했다.
 예전엔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돼지 먹이로 주기도 했다.
ⓒ pl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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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나, 호흡은 갈수록 빨라졌고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냄새도 냄새지만, 승객들의 웅성거림과 따가운 시선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버스에 탄 어른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일단 맨손으로 바닥에 쏟아진 정체불명의 내용물들을 주섬주섬 담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그저 코를 막고 국물이라도 닿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을 뿐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급기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사 아저씨는 나에게 달려와 씩씩대며 연신 나무란다. 울먹이며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지 조금은 수그러든다. 1년보다 더 길었던 버스 안에서의 1시간 동안 돼지밥 처리를 위해 내가 시도해 보지 않은 방법은 없었다. (버스에서 당한 수모와 고생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나는 할머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화를 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돼지 누가 키우랬어! 돼지밥은 노인네가 챙겨야지, 왜 나를 시키고 난리야!"
"……"
"이 돼지밥은 할머니나 많이 퍼먹어!"

"……"
"뭐라고 말 좀 해봐!"
"우리 손주, 미안하구나."

영문도 모른 채 투정과 독설을 받으면서도 아무 말이 없는 할머니의 아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그 길로 바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날 이후 돼지와 버스만 생각하면 그놈의 돼지밥 기억이 나를 괴롭히며 몸서리가 쳐졌다. 심지어는 꿈속에서까지.

전철의 개똥도, 버스 안의 구토물도 내가 먼저...

이 사건은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얻은 것도 하나 있다. 성인이 되면서 내가 겪은 굴욕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세상을 달리 보니, 어느새 곤경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순간의 경솔한 실수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습관으로 변한 것이다. 이제는 전철의 개똥도, 버스 안의 구토물도 내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자칭 '매너남'이라 자부한다.

평생 돼지와 함께 고생하다 돌아가신 할머니. 비록 돼지밥 때문에 일생 최대의 잊지 못할 아픈 기억을 만들어 주셨지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상대방과 나의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는 여유를 알게 해준 따뜻한 사랑은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나의 비위를 강하게 단련하여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 오늘따라 더 그립다.

덧붙이는 글 | '더러운 이야기 기사' 공모글입니다.



태그:#더러운이야기, #버스,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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