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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형마트 정규직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 세탁소에서 다림질부터 배웠다.
▲ 세탁협동 조합을 꿈꾸는 청년 김형석 그는 대형마트 정규직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 세탁소에서 다림질부터 배웠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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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사서라도 고생을 해봐야 한다."

형석이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김우성씨는 말했다. 형석은 아버지 말을 따랐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표를 끊어 주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차요원을 하거나 호두과자를 팔았다. 군산 청소년 수련원에서 도서관 책 정리를 했다. 알바하면서 전주 우석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다녔다. 1학년을 마치고는 군대에 갔다.

"앞으로 뭐 하지? 아직은 계획 없으니까 등록금이나 벌자."

형석은 군대 제대하고 사흘 만에 일자리를 구했다. 군산 경암동에 있는 대형마트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라면을 진열하고 파는 일을 했다. 다음에는 술과 음료, 그 다음부터는 각종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했다. 대형 마트에 있는 모든 코너를 돌면서 일한 셈이었다. 텐트나 가전제품처럼 고가의 물건까지 팔았다.

"생전 모르는 사람들한테 말을 걸어야 하잖아요. 처음에는 그게 너무 어려웠어요. 말이 안 나왔어요. 그런데 6년을 일하다 보니까 먼저 웃으면서 다가갈 수 있게 됐어요. 물건을 사 가는 고객님들한테 고마운 마음도 많이 들고요. 기회도 왔어요. 전주에 있는 한 대형 마트에서 경력사원을 뽑는다고 했어요. 정규직 직원을요. 원서를 냈는데 합격한 거예요."

그 때 형석은 군산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처음에 입학했던 우석대는 2학년까지만 다녔다. 군산에서 완주 삼례에 있는 대학까지 오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힘들었냐고? 학비 때문이었다. 한 학기에 400만 원, 몹시 비쌌다. 집안 사정은 어렵지 않았지만, 부모님한테 손 벌리고 싶지 않았다. 국립대인 군산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는 학교 공부를 하면서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껏 일을 한 것도 등록금을 스스로 벌기 위해서였다. 형석은 대형 마트에 정식으로 취업하고 나서는 교수님을 찾아가 사정을 말했다. 직장 때문에 수업 일수는 다 채울 수 없지만 졸업만은 꼭 하고 싶다고.

정규직 사원이 10년 일하면 승진 아니면 사직

형석은 정규직 사원 생활을 1년쯤 했다. 군산에서 6년간 알바 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그 일터의 비밀도 알아 버렸다. 그 곳에서 정규직으로 10년 정도 일하면, 두 가지 길 밖에 없었다. 고위 직급으로 승진하든지, 사직하든지. 형석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처럼 고민했다.

"제가 10년 뒤에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 막막할 것 같았어요. 나이도 먹었고, 처자식도 있을 거잖아요. (웃으면서) 그 때는 여자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런 생각 하니까 빨리 정리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정해졌어요. 스물아홉 살 때였어요."

그가 6개월 동안 배우며 일한 아버지 김우성씨의 세탁소 내부.
▲ 세탁소 내부 그가 6개월 동안 배우며 일한 아버지 김우성씨의 세탁소 내부.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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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형석에게 당신의 세탁소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다. 단기적으로는 회사에서 정규직원으로 일하는 게 낫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을 갖는 게 좋을 거라고. "지금 군산의 세탁소 사장님들이 거의 50~60대다. 10년 뒤에는 은퇴를 해. 그러면, 누가 세탁을 하겠냐? 아버지 기술은 알아주는 사람이 많다. 네가 물려받아라"하면서. 

아버지 가게에 나간 첫 날, 그는 바닥부터 쓸고 싶었다. 장판 깔린 바닥은 깨끗했다. 물 길러오고, 장작 패면서, 심신을 수련한 다음에 배우는 게 기술이다. 혹독하고 철저한 도제 수업을 받으며 익히는 것이 기술이다. 예외는 있었다.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진 중세 유럽, 젊은이들은 단기간에 배워서 자기 가게를 차렸다던데...

형석은 아버지 밑에서 다림질부터 배웠다. 아침 8시에 출근, 고객과의 약속이니까 밤 9시 전에는 퇴근하지 않는 자세를 익혔다. 쉬는 날은 명절과 일요일뿐이었다. 다림질, 세탁, 고객 관리와 응대, 컴플레인 대처를 알아갔다.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연봉 3천이 넘었는데 아버지한테 월 30만 원씩만 받아도 괜찮았다. 6개월 동안 세탁을 배우고 나서는 독립했다.

"처음에 제 가게 차리고는 진짜 어렵게 생활했어요. 손님이 없었어요. 주말마다 근처 아파트에 직접 전단지 꽂고 다녔어요. 첫 달에는 30만 원 벌었어요. 아버지한테 수습으로 일 배울 때나 똑같더라고요. 6개월 지나니까 60만 원. '야! 좋아진다. 버텨보자'고 생각했죠. 1년이 지나니까 수입이 백만 원 넘었어요. 올 겨울에는 적금 백만 원짜리도 들었고요."

연봉 3천 넘었는데... "첫 달 30만 원 벌었어요"

세탁소 일은 주 6일, 아침 8시 반부터 밤 9시까지 근무.
아프면 큰일이다. 그래서 세탁협동조합을 꿈꾼다.
▲ 김형석씨와 아버지 어머니 세탁소 일은 주 6일, 아침 8시 반부터 밤 9시까지 근무. 아프면 큰일이다. 그래서 세탁협동조합을 꿈꾼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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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데이' 김형석 대표는 지금도 아버지한테서 세탁 기술을 배우고 있다. 전날 받아온 세탁물들을 아버지 가게로 갖고 간다. 아침 8시 반에서 오후 5~6시까지, 아버지와 둘이서 세탁 일을 한다. 그동안 그의 가게는 어머니와 알바가 번갈아가며 봐준다. 그는 저녁에 다시 자신의 가게로 와서 아파트 단지를 돌며 세탁물을 배달하고 수거한다.    

그는 2년 동안 세탁을 배우면서 일했지만, 실수도 서너 번 했다. 옷을 받은 고객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볼 때 괴로웠다. 한 번은 세탁한 운동화에 색 번짐이 일어나서 물어낸 적도 있다. 지금은 이상이 생길 것 같은 세탁물은 표시를 하고 사진도 찍어둔다. 6개월째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걱정이 있다.  

"아버지랑 저랑 둘이 일하잖아요. 한 명이라도 아프면 큰 일 나요. 아버지는 지금 위에 용종이 있어요. 수술할 단계는 아니라서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 하러 병원에 가시거든요. 그러면 제가 이틀 동안 혼자 일해요. 그때 생전 처음 보는 소재의 옷이 오면 당황스러워요. 가게는 알바를 쓰면 되는데 세탁 일은 대체가 안 돼요. 기술자가 해야 하니까요."

김형석 대표의 꿈은 세탁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 조합원들이 모여서 세탁 일을 한다면, 삶의 질은 보장될 거라고 본다. 음하하핫, 주 5일 근무도 가능하다. 아프면, 미안해하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과 후배들이 같이 하자며 뜻을 모았다. 금방이라도 만들어질 것 같던 협동조합은 올해는 실패! 내년에는 되겠지.

세탁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기계가 들어갈 수 있는 공장을 마련해야 한다. 공장 안에서 조합원들은 세탁이나 다림질하고 옷을 관리한다. 조합원들이 각자 운영하던 '런던 세탁소' 같은 가게들은 세탁 협동조합 드라이 데이 1호점, 2호점, 3호점으로 바뀌겠지. 평생 동안 주 6일 근무를 해 온 조합원들은 평일에 휴가를 쓰는 대자유까지 누리게 될 테고.    

김형석 대표는 세탁 협동조합을 만들고 나서는 경영 공부를 해보고 싶다. 조합의 규모가 어느 정도는 되어야지만 조합원들에게 힘이 실릴 터이다. 그러나 같이 협동조합 하려는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나 삼촌 연배들, 젊은 나이는 아니다. 자연스럽게 경영학은 공부 체질이 아닌 그가 해야 한다. 연애는 더 절실하다. 

평생 가게에 매여서 제주도 여행도 못해본 부모님 생각하면...

"연애를 한다는 건 시간이 있다는 거잖아요. 꿈의 주 5일 근무, 기대가 돼요. 가끔씩 소개팅을 하거든요. 근데 여자들한테 제 직업을 말하면, 편견이 있어요.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더라고요. '젊은 나이에 왜 세탁을 해요? 다른 것도 할 수 있는데?' 그러거든요. 저는 세탁 일이 좋아요. 요리사나 바리스타처럼 자기 기술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는 아버지한테 일을 배우면서 섬세해졌다. 부모님이 살아온 삶의 결도 볼 줄 안다. 평생을 가게에 매여서 그 흔한 제주도 여행도 못 해 본 부모님. 그는 날마다 1만 원씩 1년을 모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사나흘이나 세탁소 문을 닫고 놀러 가는 것을 저어했다. 할 수 없이 그는 아버지가 1년 동안 세탁소에서 쓸 비닐, 옷걸이, 세제, 기름을 사드렸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끝을 보는 세탁 청년. 부모님 여행 보내드리기도 깔끔하게 하고 싶다. 달력을 보면서 날짜 계산을 했다. 내년 설날, 형석씨 부모님은 기술자 아들을 둔 덕을 볼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SNS에 "양 많은 걸로 양껏 먹고 오자"며 음식 사진을 올리는 '소년 감성'을 가진 김형석 대표. 그는 왜 아버지한테 독립부터 했을까.

"제 가게가 있어야 책임을 지고 알아서 할 거잖아요. 안 그러면, 계속 아버지한테 의지하면서 일하고 있었을 거예요. 6개월 배우고 독립했는데 하기를 잘 했어요. 일도 재밌고, 꿈도 생겼으니까요."

"협동조합을 만들면, 꿈의 5일 근무를 할 수 있어요. 기대가 돼요. 연애를 할 수 있잖아요."^^
▲ 세탁협동조합을 꿈꾸는 김형석 "협동조합을 만들면, 꿈의 5일 근무를 할 수 있어요. 기대가 돼요. 연애를 할 수 있잖아요."^^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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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매거진군산 9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세탁협동조합, #꿈의 주 5일 근무, #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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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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