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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로부터 이스탄불로 진입한다. 어디 선지 갯내음이 넘쳐흐르고 중동 특유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전철 안을 가득 채운다. 보이지 않는 활기와 생동감이 느껴진다.

항만인 동시에 항구인 이곳은 서민들의 친수공간이기도 하다. 뱃놀이를 즐기는 이스탄불의 시민들의 일상이 얼마나 여유로운지 알 수 있는 풍경이다.
▲ 이스탄불의 바다 항만인 동시에 항구인 이곳은 서민들의 친수공간이기도 하다. 뱃놀이를 즐기는 이스탄불의 시민들의 일상이 얼마나 여유로운지 알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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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다. 뭉게구름 아래로 푸른 나무들이 퍼져있다. 엷은 햇살이 마치 마법의 성을 쪼이듯 조심스럽게 내리는, 그리고 수천 년의 도시답게 고풍스런 외관을 드러낸다.   

이스탄불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신비스러운 도시다. 동·서양의 만남의 중간에서 이스탄불은 어제의 영광이 아직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있다. 가늘고 여린 중동 음악과 경쾌하고 빠른 리듬 속에서 이스탄불은 그 비밀의 속살을 여전히 간직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시대의 풍운아 같다. 개항기 상해의 근대적 이미지조차 느껴지는 이곳은 역사적 영욕의 순간들을 거치면서 보다 다듬어져 세련되고 풍만한 도시가 됐다.

터키 제국의 영광과 절대적 권위의 상징으로 부각돼 수많은 후대인의 방문지가 되어도 그 자체가 인류의 귀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엄숙하고 경건한 종교 시설의 한편으로 치부되어도 그 속에서 진정한 인간적 예술혼과 더불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문화적 선진성으로 승화되고 있다.

천년의 왕국같이 지상에서 영원으로 통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그 위대한 인류의 유산에 우리들은 문득 인간다움을 느낀다. 그 내부시설의 하나하나에 천년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채로 오늘도 그 장관을 유지하고 있어도 그 속을 거니는 사람들은 세월과 시대의 흐름에 변화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역사의 영욕을 함께하면서 터키식으로 변화하는 오늘의 모스크로 소피아는 수려한 건강함으로 살아있다.

터키는 마법의 도시다. 문득 발길을 돌려 궁전을 들어서면 술탄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거주공간으로서의 궁전을 들리게 된다. 넓고 가득한 정원의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비록 소시민의 생활은 왕의 시야에서 관심 밖에 있었을지라도 오늘날 궁전을 바라보는 이들의 심정은 감탄과 평화로움만을 엿보고 있다. 백성의 삶이 깃든 곳은 사라지고 기억할 수 없을 역사로 멀어져갔어도 술탄은 그 모습으로 다시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탁심거리는 다국적이다. 수많은 외국인과 현지인들이 마치 축제의 거리를 방불케 한다. 노래와 거리의 공연 그리고 활기넘치는 도시의 중심가이다. 길옆의 상점들 또한 음악과 특이한 분위기가 넘친다. 어딘지 고전적인 느낌이 들지만 또한 현대적이다.
▲ 턱심광장의 츄람 (tram) 탁심거리는 다국적이다. 수많은 외국인과 현지인들이 마치 축제의 거리를 방불케 한다. 노래와 거리의 공연 그리고 활기넘치는 도시의 중심가이다. 길옆의 상점들 또한 음악과 특이한 분위기가 넘친다. 어딘지 고전적인 느낌이 들지만 또한 현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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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의 내부는 장관이다. 높고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들이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모든 벽면에 마치 치열하게 정교하게 새겨진 다양한 문양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환상적으로 반짝거린다. 광활한 실내와 17세기의 스테인글라스, 천정의 모자이크, 260여개의 창문과 한 채만한 기둥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자체의 물리적 분위기에 우선 압도당하게 된다.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권력으로 다가오는 현장은 바로 소피아 사원의 내부 장식이다. 황금빛 샹들리제의 화려한 불빛 아래로 가득 채워진 실내공간의 은은한 수려함과 벽면과 천장을 타고 흐르는 예술적 세련미에 모두들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된다. 제국의 영광과 절대권위의 상징으로서의 군주들이 집착했던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은 당시의 힘든 건설과정이 있을 지라도 후세에는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이러니같기만 하다.

특히 모든 서양의 건축들이 석조의 대리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앞선 석공예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돌 속에 조각과 문양을 부조하는 세련된 기술과 우아한 형태의 이미지는 오늘날 다시 만들기에도 힘든 작업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어떻게 차가운 돌덩어리를 통해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예술적 연출이 가능한지, 이들의 장인정신에 머리가 숙여진다.

탁심 광장의 번잡스러움은 특히 중동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저 맑은 햇살을 받으며 수많은 인파속에 떠밀려 걷는 것만으로 즐겁다. 주위의 식당과 상점과 길가의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고 있으면 어디선지 츄람의 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매달리듯 전차의 주위에  붙어있는 것을 본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심거리는 넓고 길다. 그 길속에서 휩쓸려 이스탄불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느낄수 있다면 하루 관광일정은 거의 충족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곳에서는 오늘의 터키인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활력과 미소와 흥겨움이 솟아나는 거리이다. 기분이 상승되는 야릇한 매력의 장소 같기만 하다.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동시,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과의 경계를 이루는 해협이다. 아름다운 풍경의 이곳을 바라보며 아마도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이 슬픔의 도시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동시,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과의 경계를 이루는 해협이다. 아름다운 풍경의 이곳을 바라보며 아마도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이 슬픔의 도시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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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종들의 집합이 이스탄불의 거리를 채운다. 터키, 유태이, 아메니아인, 집시 등등..거리에도 해변에도 그리고 광장에도 오늘의 터키시민이 되어 하루를 활보한다. 터키항을 채우는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비둘기떼의 율동만큼이나 그들의 일상은 바삐 그리고 풍만하게 하루를 지난다. 두 대륙을 이어사는 사람들만큼 그들의 운신은 폭이 넓다. 하루를 좁게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에 항상 좁은 해협과 교각을 오가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도시를 바라보며 한 시대에  걸친 과거의 현장으로부터 이스탄불은 여러 페이지의 역사와 문화의 공간임을 느끼는 현장감이 스며든다.

블루모스크의 웅장하고 여성적인 외관. 잘 정비된 정원의 조경과 분수대의 은결 비상, 그리고 굵은 야자수를 비롯한 나무들의 품에 안은 채 위용스럽게 위치한다. 절대신에 대한 이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신실했으면 수백년을 넘어 그들은 종교적 의지와 신념으로 항상 새롭게 태어나고 스스로를 정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햇빛이 내리는 정원에서 풍선사탕과자를 팔고 있던 젊은이가 입에 거품을 내며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일사병인지 간질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를 바라보는 이들은 가슴이 많이 아팠다.

터키는 바자르의 나라이다. 다양한 제품의 각종 상품들이 즐비하게 상점을 채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터키식 기념품과 여러 종류의 제품들이 넘쳐나는 이곳은 풍부한 수확의 시장거리이다. 멀리서  기도소리를 청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잔(adhan)이다. 모스크의 나라 터키의 알라에 대한 간구의 시간이다. 흐느적 거리듯이  넘쳐나는 어느 노인의 발성같아도 무아진(muazin)은 무한의 소리같이 신비하고 영원한 기도의 염원이 담아  모든 이들의 가슴에 경건한 신앙심을 자극한다. 발을 씻고 옷매무세를 고치고 마치 천정의 정교한 무늬의 돔의 내부같이 스스로를 정돈하고는 알라에 대해 복종과 존경의 기도를 바친다.

흐느끼는 듯이 늘어지는 중동의 음악, 마치 어느 신비한 내세의 음악같이 야릇하고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음악 그리고 왠지 사막의 한가운데서 외로움에 온몸이 삭아지는 고독의 음악. 그것은 분명 오직 태양아래 알라신의 이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이슬람교도들의 철저한 자기음성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모습과 신의 음성을 들었다. 코란 속에서 알라신은 말했다. 나는 진리이고 빛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내어줄 뿐 요구하지 않는다.   

이스탄불은 항만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시리도록 푸른 바닷물을 사이로 동양과 서양은 말없이 마주보고 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햇살에 파도가 출렁이 듯 항상 선박의 이동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바삐 이루어지고 있다. 막심거리의 수많은 인파들의 장관을 바라보 듯 이곳의 해수면에도 선박의 항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어디를 가도 보이는 파리의 크레샹 같은 초승달과 별의 이슬람 국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늘도 터키의 하늘을 펄럭이고 있다.

바닷바람을 맞는 시민들의 모습은 항상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나란히 계단에 앉아 무엇인지 대화하고 웃고 몸짓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두 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륙의 분리는 마치 화합같이 안정적으로 다가온다. 시민들은 모두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와 잔디에서 가족끼리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음식을 해먹는 모습을 본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하루가 부럽다.

모스크와 갈매기, 교각 위를 가득채운 사람들과 차량의 행렬, 빨간 백열등이 갑자기 신비한 보석의 등불로 변해버리는 거리의 불빛, 그리고 멀리 원경의 시야에 천천히 들어오는 야산을 가득 채운 도시, 이스탄불.  어딘지 과거의 상권이 아직도 그 활기를 이어가는 듯한 시간과 공간의 연결지점, 잿빛 하늘이어도 코발트 빛 초록 햇살이 무지하게 쏟아지는 오후의 어느 한때, 그리고 이곳의 찬란한 선대의 거리를 오늘도 방황하 듯 거니는 시민들, 늘 사랑하는 도시. 이스탄불. 하지만 역사적 영욕을 안고 있는 이곳을 노벨문학상의 오르한 파묵은 애환과 슬픔이 묻어나는 도시라고도 했다. 그 이스탄불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역사적 변천에 따라 그 용도를 달리하는 성소피아 사원은 비잔틴 건축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혔던 건축이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대 성당이었다. 오스만 제국이후 회교사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사적 변천에 따라 그 용도를 달리하는 성소피아 사원은 비잔틴 건축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혔던 건축이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대 성당이었다. 오스만 제국이후 회교사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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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 석양이 기울어진다. 붉게 타버린 채 모든 것을 한껏 소진한 하루가 이제 또 넘어간다. 막심 거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하루를 마감하는 이들의 일상의 완성에 대한 포만감이 얼굴에 배어난다. 가정을 향한 이들의 손에는 일용할 양식이 담겨 있고 카페로 향하는 이들의 어깨는 흥겹게 넘실거린다. 카페는 특히 젊은이들의 양지이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앞을 가리고 소음에 가까운 웃음소리에 모두 얼굴은 상기된 채로 환호한다.

술이 나오고 춤이 어울린다. 청춘의 붉고 차가운 열기가 온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다. 현란하고 붉은 불빛에 아롱거리는 청년들의 얼굴이 왠지 선남선녀임에는 틀림없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 모두들 이스탄불의 밤은 저물어 간다. 이스탄불의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단지 이 시대만을 위한 단막극의 무대에 잠시 오른 주인공일 뿐이다. 그리고 영원한 세월의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내일 또다시 이스탄불에는 새벽이 든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로마를 거쳐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과정의 기행문이다. 김진환은 한국방송통신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태그:#이스탄불, #소피아, #보스포러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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