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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도서관에 오면 쉬지 않고 작업을 하는데도 즐거운가봐요~
▲ 아이들과 함께할 체험행사 준비중! 도서관에 오면 쉬지 않고 작업을 하는데도 즐거운가봐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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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아침마다 그 선선함이 전해집니다. 가을이 되면 도서관에서는 많은 행사들을 합니다. 책과 관련된 체험행사는 물론 독서지도와 관련된 강연 등의 다양한 분야의 행사들을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도서관을 위해 작지만 많은 활동들을 해온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행사(?)도 했습니다. 저에겐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고 값진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9월 22일 월요일 오전, 도서관에선 낯익은 목소리가 하나둘씩 들려옵니다.

"샘~, 저 왔어요."
"어, 얼릉 와요. 요렇게 도서관 쉬는 날 보니 새삼스럽네."
"그쵸? 샘 보고 잡아서(보고 싶어서) 얼릉 왔지요. 뭐부터 준비하믄 돼요?"
"밥 안치고, 채소 씻고, 밥 묵을 준비부터 해야지요."
"네~ 알겠어요."
"우리 도서관 막둥이들이 얼마나 잘하나 한번 봐야겠네."

매월 한 번씩 도서관이 쉬는 월요일에 모임을 해왔지만 최근 들어 바쁘고 방학도 있어서 몇 달 모임을 쉬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모임이어서 그런지 다들 신나는 표정으로 도서관에 들어섭니다.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아이들에게 줄 독후활동으로 부채를 만들고 있네요~
▲ 도서관견학준비해요~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아이들에게 줄 독후활동으로 부채를 만들고 있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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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온 자원봉사자부터 오래된 노장(?)자원봉사자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어울려 모입니다. 그러다 보니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식사로 무엇을 먹어야 할지부터 챙겨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이번엔 좀 색다르게 도서관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 '도서관에서 삼겹살을 굽다니, 이게 뭔 말인가' 싶을 테죠? 때론 상상도 못할 일을 남모르게 해본다는 것이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처음 자원봉사자 모임을 도서관에서 하기로 했을 땐 누구나 단순히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지는 것인 줄 알았을 겁니다. 느닷없이 도서관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생각을 누가 감히 했겠습니까?

도서관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우리들만의 작은 비밀'을 이렇게 꺼내놓는 것이 조금은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샘, 근데 도서관에서 어떻게 삼겹살 파티를 해요? 샘 우짤라꼬(어떡하려고)?"
"책들도 한 번쯤은 고기 냄새를 맡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 도서관에서 안 해본 일을 한다는 새로운 긴장감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괜찮겠어요?"
"걱정 마이소. 대신 앞으로 도서관 활동 더 열~씸히 해야 함더!"

한 가족 같은 소중한 이웃들... 잊지 못할 작은 추억 하나

부지런히 도서관 이곳 저곳을 다니며 책을 정리해주십니다~
▲ 열심히 책 정리해요~ 부지런히 도서관 이곳 저곳을 다니며 책을 정리해주십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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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걱정 어린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고 한 마디씩 합니다. 저는 속으로 누구보다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원봉사자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합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밥 먹을 준비가 끝나고, 다들 동아리방으로 모였습니다. 불판을 불 위에 올리고, 고기를 얹어 지글지글 구워서 서로 먹여주고…. 아이들 학교 보내느라 아침도 굶었다며 자원봉사자 샘들의 손놀림은 분주했습니다.

"샘~ 먹고 해요. 자, 아~ 하세요."
"괜찮아요. 제가 먹을게요. 얼릉 샘 드이소."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지 정말 꿀맛이에요."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차린 건 없지만 마이(많이) 드이소."

시끌벅적 자원봉사자 샘들은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열람실 문을 닫고, 좁은 동아리방에서 서로 부대껴가며 정말 푸짐하게 점심 한 끼를 같이 나눠 먹었습니다. 도서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자원봉사자들부터 오래된 '이모님', '고모님'까지 각자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앞으로 서로 길을 가다, 시장에서 만나면 알은 척도 하면서 같이 잘 지내보자는 말과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모임을 정리했습니다.

최대한 삼겹살 냄새를 없애려고 아는 상식 다 동원해서 환기를 위해 애를 썼습니다. 내일 다시 도서관 문을 열어야 하는 게 당장 걱정이라고, 자원봉사자 한 분은 집에 있는 냄새 제거 초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도서관 방에서 고기 한번 구워먹는다고 무슨 큰일이야 나진 않겠지만, 행여나 사서인 제게 누가 될까 노심초사 걱정이 앞섰나봅니다. 이틀 정도만 열심히 창문 열고 신경쓰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제가 안심을 시켰습니다.

도서관에서 고기를? 있잖아요~비밀이에요~
▲ 쉿!비밀이예요~ 도서관에서 고기를? 있잖아요~비밀이에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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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들, 아무튼 시간 내서 이렇게 와줘서 고맙구요, 앞으론 서로 안부 물어가며 잘 지내봅시다. 어차피 오늘 도서관 비니, 시간 되는 사람은 이참에 도서관에서 책도 좀 읽고 가이소."

아이들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라며 서둘러 도서관을 나서는 샘들도, 시간이 남아 읽던 책 마저 읽고 가겠다는 샘들도, '포토존'을 완성해야 한다며 나머지 작업을 하려는 빅북구연팀 샘들도, 먹다 남은 음식 정리며 설거지며 마저 하고 가겠다는 샘들도 모두가 여유롭게 웃고 떠드는 사이, 도서관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습니다.

예전에는 매월 한 번 모이면서 봄과 가을엔 산행을, 여름엔 인근 일산해수욕장 근처서 바닷바람 마시며 삼겹살 파티를 했었는데, 제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동안 많이 소홀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다 소중한 인연인데 그것을 잠시 잊으며 살았습니다. 언제까지 함께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있는 동안은 다 한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잊어버리고 지내왔네요.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남겨주었다는 것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모두가 돌아가고 없는 빈 도서관에서 내일을 생각합니다. 도서관에서 매일 매일 새롭게 그려지는 그림들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가치를 가진다는 것에 오늘따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아차! 그나저나 독자님들, 비밀 지켜주실 거죠? 도서관에서 삼겹살 파티 했다는 것 말입니다.

가끔은 인근 바닷가를 찾아 여유로운 시간도 보낸답니다~
▲ 동해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컷! 가끔은 인근 바닷가를 찾아 여유로운 시간도 보낸답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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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꽃바위작은도서관, #자원봉사자, #도서관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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