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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미국 미주리주>=장현구 특파원) 밤이 되면 또다시 '분노의 도시'로 변하는 미국 미주리 주 소도시 퍼거슨에 26일(현지시간) 정오부터 싸락눈이 퍼부었다.

이틀 전, 시내를 점거한 일부 시위대의 방화와 약탈로 곳곳에서 붉은 화염이 치솟은 퍼거슨의 열기를 식히는 눈발이었다.

대다수 미국민이 27일부터 나흘간 이어지는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 연휴를 이날 오후부터 준비했지만 일부 지역이 폐허로 변한 퍼거슨 시에서 추수감사절 분위기를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약탈이 두려워 나무판자로 얼굴을 가린 상점, 완전히 불에 타 앙상한 잔해만 남은 건물 흔적, 거리를 막은 경찰차의 빨간 경광등은 흔히 아는 추수감사절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난 8월 9일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9)이 백인 경찰 대런 윌슨(28)의 총격에 사망한 이래 100일 넘게 지속한 대립과 갈등이 도시 전체를 여전히 무겁게 짓눌렀다.

브라운의 유족과 시위대는 지난 24일 대배심의 '불합리한 결정'에 맞서느라 명절 연휴를 즐길 여유가 없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 경찰은 시위대를 막아서야 했고, 소요 사태로 가게를 잃거나 물건을 약탈당한 상점 주인 역시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기에 정신이 없다.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윌슨 경관 불기소 결정을 내린 24일 밤, 건물 12채 이상을 전소시킬 만큼 폭발한 시위대의 분노는 25일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의 주 방위군 증파 명령 이후 잦아든 것처럼 보였다.

약 2천200명의 주 방위군과 퍼거슨 경찰,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 미주리 주 고속도로 순찰대가 전국에서 모여든 시위대에 맞서 도시를 방어하는 '전쟁터'. 이것이 2014년 11월 현재 퍼거슨의 모습이다.

고속도로 경찰대가 그동안 석 달 넘게 시위가 벌어진 약 1㎞에 달하는 웨스트 플로리샌트 거리를 앞뒤로 전면 봉쇄하면서 인종 차별 철폐와 정의 실현의 '성지(聖地)' 노릇을 해 온 이곳에서 대규모 시위대는 자취를 감췄다.

이곳은 브라운이 쓰러진 곳에서 지척인 큰길로, '손들었으니 쏘지마'(Hands up, Don't shoot) 연합 시위대와 경찰이 밤마다 대치한 장소다.

도로를 통제한 고속도로 순찰대의 한 경관은 "방화와 약탈 등 소요 사태가 재발한 24일 밤 이후 이 거리를 봉쇄했다"며 "누구도 걸어서나 운전을 해서 여기를 관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봉쇄 사실을 교차로에 진입해서야 알게 된 일부 차량이 서둘러 유턴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교차로 진입로 옆 주유소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미 8월에 인근 주유소가 불타는 장면을 목격한 이상 당시보다 악화한 상황에서 문을 닫는 것만이 상책이었던 것 같다.

주유소 맞은 편 거리의 한 가게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드러냈다. 주변에 있던 물을 뿜는 소화전 기둥은 아예 뽑혀나간 채 거리를 나뒹굴었다.

교차로 주변 식품과 의약품을 파는 대형 체인인 월그린도 '분노의 광풍'을 피하지 못했다.

굳게 닫힌 문 사이로 바닥에 흩어진 채 방치된 여러 물건은 약탈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시위대를 대신해 거리를 채운 것은 범죄현장을 뜻하는 경찰의 노란색 진입 금지 테이프였다.

이미 큰 피해를 본 상점 주변에는 어김없이 노란색 진입 금지 테이프가 주변을 둘렀다.

웨스트 플로리샌트 거리 안에 우리 동포가 운영하는 미용 관련 뷰티숍과 휴대전화 가게가 완전히 전소해 동포들을 안타깝게 했다.

특히 '만남의 장소' 격인 맥도날드 광장 옆에 있는 휴대전화 가게는 지난 8월 사태 초반 시위대의 약탈로 한 차례 손해를 입었다가 이번에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운을 맛봤다.

브라운의 억울한 죽음에 항거하며 뜨거웠던 지난 8월, 퍼거슨 경찰서 앞에 진을 치고 시위대도 이날 보이지 않았다.

보통 경찰서 주변은 안전하리라는 생각이 우선 들지만,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력을 일삼은 일부 시위대 탓에 경찰서 인근 상점도 나무판자를 유리창에 붙이고 만일의 사태에 단단한 대비를 했다.

상점 유리창에 나무판자를 붙이고도 '개점 중'이라고 문구가 내붙인 가게들도 보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나마 손님을 불러야 하는 지경인가 싶었다.

지금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경찰서 앞에 붙은 '신년 맞이'(Seasons Greeting)이라는 문구는 어두컴컴한 하늘과 맞물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자아냈다.

시내에서 만난 유니스라는 할머니는 "편지를 부칠 일이 있어 우체국에 갔더니 우체국에서 아예 편지 거두는 함을 철거했다"며 "퍼거슨 시에서 상당히 먼 우체국으로 가라는 데 참 난감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의 한 관계자는 "그간 경계 임무만 서던 주 방위군이 어젯밤 경찰과 공조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봤다"며 "날씨도 춥고, 추수감사절 연휴도 겹쳐 이제 과격 시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했다.

흩날리는 눈발은 시민의 자발적인 피켓 시위마저 막지는 못했다.

경찰서 앞에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피켓을 들고 나온 흑인 여성 재클린 라이텀(53)은 "과거부터 있던 퍼거슨 시의 인종 차별 문제에서 과연 진전이라는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누구나 두려워하고 긴장하는 이슈일 뿐"이라며 브라운 사건을 계기로 모두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도시 퍼거슨에서 또다시 불을 댕긴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흑백차별 문제의식이 연말연시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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