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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원자력> 책표지.
 <잘가라 원자력> 책표지.
ⓒ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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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 체르노빌의 악몽을 기억하는 세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안방의 시한폭탄과도 같은 핵 발전소에 대해 '영원한 안녕'을 고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학자들은 말했다. 이제 인류사는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일 300톤씩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후쿠시마는 경고한다. 이래도 원전을 고집할 것이냐고.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없이는 더 이상 인류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고.

후쿠시마 이후 독일과 한국은 정반대의 선택을 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독일은 전격적으로 2022년까지 모든 핵 발전소 완전 폐쇄를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반면, 후쿠시마에서 불과 110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한국은 오히려 노후한 핵 발전소의 수명 연장과 신규 핵 발전소 추가 건설을 표방하고 나섰다.

'친핵' 메르켈은 왜 갑자기 '탈핵'을 선언했을까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사실 2010년 핵 발전소 폐기를 확정했던 기존의 '원자력법'을 개정해 평균 12년의 수명 연장을 밀고 나갔던 인물이다. 독일 친핵진영의 정치적 대표라 할 수 있는 메르켈이 갑자기 기존 방침을 뒤집는 정치적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탈핵으로 입장을 선회한 이유는 무엇일까.

"후쿠시마 사고가 지금까지의 내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없다." (앙겔라 메르켈, 2011년 5월)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자 체르노빌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던 독일인들은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쾰른 등에서 무려 25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반핵 집회를 열었다. 반핵 열풍이 거세지자 메르켈 총리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핵 발전소와 관련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위원회의 최종 결과 보고서를 받아든 메르켈 내각은 7시간이 넘는 토론 끝에 2022년까지 핵 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한다는 정책을 결정하고 상하원의 인준을 받았다. 이로써 전력 공급의 28%를 의존하는 세계 5위의 핵 발전 대국 독일은 순차적으로 핵을 폐기해 나갈 예정이다.

독일의 결정은 유럽 국가들의 '탈핵 도미노'에 불을 붙였다. 독일이 탈핵을 선언하며 7기의 핵 발전소를 즉각 가동 중단하자, 스위스도 2034년까지 핵 발전소 폐쇄를 결정했다. 이탈리아는 2011년 6월 국민투표 결과 94%가 반대함으로써 2014년 예정된 4기의 핵 발전소 건설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핀란드 역시 더 이상 신규 핵 발전소 건설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같은 시각, 한국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2011년 11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은 UN 총회 연설에서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원자력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창피할 일이다. 이 자리에 있던 독일 및 유럽국가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통해 총 6기의 핵 발전소(신고리 2호기, 신월성 1, 2호기, 신고리 3, 4호기, 신울진 1호기)를 적기 준공한다고 밝혔다. 곧이어 삼척과 영덕이 핵 발전소 신규 부지로 선정 발표됐다. 또한 기술혁신을 통해 원자력 기술을 대표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고 80기에 달하는 세계 핵 발전소 건설 수주를 목표로 삼았다.

묻고 싶다. 독일의 선택이 옳았을까. 아니면 한국의 선택이 옳았을까. 분명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처럼 '원자력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대부분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빈국이면서 세계 5위의 핵 발전소 강국이었던 독일이 그 증거다. 탈핵으로의 전환은 정책결정권자의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독일의 탈핵 비결? 해법은 '마을'에 있었다

<잘가라 원자력>(염광희 저)을 보면 독일 탈핵의 과정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현 주소를 알 수 있다. 핵 발전소 강국에서 탈핵과 재생에너지 선도 국가로의 변신. 독일이 보여준 이 대반전의 주인공은 메르켈 총리 한 사람이 아니다.

저자가 보기에 독일이 핵 폐기를 선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시민들의 핵 발전소 반대 운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60년대 핵 발전소를 처음 건설할 때부터 시작된 저항운동은 1986년 체르노빌 사건을 겪으면서 저항을 넘어 핵 발전소의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으로 발전해갔다. 반핵평화운동의 동력은 녹색당 창당으로 이어졌고 녹색당은 원내 진출뿐만 아니라 사민당과의 연정으로 집권(1998년)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핵 발전소를 뛰어넘는 대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인구 2500명에 불과한 남부 슈바르츠발트 지대의 작은 마을 '쇠나우'에서 촉발됐다. 쇠나우 마을의 주민들은 체르노빌 참사 이후 '원자력 없는 미래를 위한 학부모 모임'을 결성하고 '와트킬러'(Wattkiller)라는 이름의 에너지 절약 운동을 펼쳤다.

나아가 친환경적인 전력 생산을 위한 작은 회사를 설립해 작은 수력 발전 시설을 재가동시키고 시민들과 함께 지역난방과 태양광 발전소 설치 투자 활동을 벌였다. 기존의 전력공급 업체와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쇠나우 주민들은 핵 발전이 아닌 녹색 전력 공급을 위한 주민투표를 제안했고, 1991년 56%의 지지를 받아 지역 주민이 주주로 참여하는 '녹색 전력 회사'를 지역의 전력 공급업체로 결정했다.

1994년 1월, 쇠나우의 '전력반란'은 자체의 전력회사 'EWS'(Elektrizitatswerke Schonau)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전력망 매입을 위한 전국적 차원의 모금활동을 성공시켰고 1997년, 지방의회로부터 지역 전력망과 전력 공급권을 공식적으로 넘겨받았다.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EWS는 2002년 현재 독일에서 가장 큰 녹색 전력 회사로 성장했고 현재 10만호가 넘는 개인과 기업에 녹색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언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쇠나우의 '전력 반란'이 승리했다"고 칭송했다.

재생가능에너지처럼 한국 영토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자원 대신 원자력, 석유, 천연가스를 외국에서 수입해야만 하다보니, 만일 외국에서 석유나 천연가스 공급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한국 사회 전체는 모든 동력이 멈출 수 밖에 없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디서부터 우리의 약점을 극복해야 할까? 여러가지 답 중 가장 현실적이며 지속가능한 방안은 바로 지역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각 지역에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국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아도 위기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101쪽)

현재 독일 정부는 '100% 재생가능에너지 마을'이라는 프로젝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1년 2월 현재 쇠나우를 비롯해 74개 시군이 해당 지역의 에너지 전체를 재생가능에너지로부터 얻고 있거나, 계획을 추진 중인 '100% 재생가능에너지 마을'로 선정됐다. 독일 전체 면적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책에는 지역의 지열, 풍력, 태양, 바이오에너지를 활용해 지역주민 스스로 지역의 에너지 자립을 실현해 나가는 독일 작은 마을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에너지 위기 시대, 해법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 있다. 햇빛, 바람, 물, 축분, 음식물 쓰레기.... 이 모든 것이 훌륭한 에너지 자원이다. (108쪽)

한국의 미래, 일본입니까? 독일입니까?

한국의 핵 밀집도는 세계 1위다. 핵 발전소 반경 30km에 4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더구나 지금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핵 발전소만 해도 11기나 된다. 기존의 시설에서도 지난 30년 동안 400번이 넘는 고장 사고가 있었고, 노후한 시설의 수명을 무리하게 연장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지경에 이르렀다. 후쿠시마는 남의 일이 아니다. 방사능은 물, 바람, 공기에 실려 퍼져나간다. 물, 바람, 공기를 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좁은 땅덩어리에 핵 발전소를 계속 건설하고 게다가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중인 한반도.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최근 한국에서도 협동조합 형태의 햇빛발전소와 같이 대안 에너지를 상용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흐름이 보편적인 대세가 되어 결국은 정부의 정책 결정을 견인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부디 그런 노력이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우려하는 사태 만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잘가라 원자력>(염광희 지음/한울 펴냄/2012.3./294쪽/1만6000원)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잘가라, 원자력 (반양장) - 독일 탈핵 이야기

염광희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2)


태그:#핵 발전소, #원자력, #후쿠시마, #탈핵, #재생가능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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