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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어를 처음 접한 건 1978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다. 당시는 요즘 아이들처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말이 아닌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신기하고도 놀랍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난 금방 영어에 빠져들었다.

<윤재성의 소리영어>
 <윤재성의 소리영어>
ⓒ 스토리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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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때 정철영어라는 게 나왔다. 할리우드 영화의 장면들을 정철이라는 분이 실감나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획기적이었다. 수 십여 개의 카세트테이프에 교재가 딸려 있었고 가격은 수 십만 원이었다. 중학생이던 나는 그걸 살 돈이 없었다. 부모님도 여력이 없었다. 생각 끝에 직접 편지를 썼다.

"존경하는 정철 선생님, 저는 이러저러한 중학생인데 정철 영어로 영어를 마스터해서 은혜를 꼭 갚겠사오니, 무상으로 카세트테이프 한 질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이 오긴 왔다. 정철영어 안내 팸플릿만 들어 있었다. 그날 이후로 정철 쪽으로는 쳐다보지 않을까도 했지만, 역지사지를 하여 이해하고 넘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찌해서 맛보기는 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영화의 대사 중 하나인 "guilty or innocent?"라는 문장이 아직도 생각나니 말이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는 영어를 좋아했고 잘 했다. 학력고사 점수로 50점 만점에 45점 정도는 나왔다. 다만 재수하게 되면서 약간 지친 정도였다. 1985년 대학생이 되면서 영어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국어국문학과를 다녀서이기도 했고, 미제국주의의 언어로 낙인을 찍은 결과이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가면서는 영어에 대한 반감은 엷어졌고 영어공부법에 대한 관심은 계속 유지되었다. 문제는 공부는 안 하면서 어떻게 하면 영어를 획기적으로 할 수 있을까에 만 관심을 둔 것이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영어공부법을 다룬 책들이 나올 때마다 적지 않게 사서 읽었다. 책꽂이에 있는 영어공부법에 관한 책들만 4, 50권은 되니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요행만 바랐다. 하지만 그것도 그뿐이었다.

그렇게 하기를 십 수 년 보내면서 언젠가부터는 책조차 멀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영어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쉽게 하는 건 자기합리화다.

'어차피 외국어잖아. 못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영어는 평생 해야 하는 거니까 길게 보면 되는 거야', '외국인이랑 말 섞을 기회가 얼마나 오겠어?',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하는데 난 늦었으니까 아이들이나 제대로 해보자구!', '이제 대세는 중국어 아냐?'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영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살려고 했다. 그런데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하프타임마저 거의 끝나가는 이 나이에 '가만, 다시 한 번 해봐?', '어라? 이래서 영어가 그렇게 힘들었나?'라는 마음을 가지게 한 사람이 불쑥 등장한 것이다.

올해 여름 어느 날, 방송작가 후배를 만났을 때다. 혹시 윤재성 원장이라고 아는지 물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개그맨 정종철이 영어를 원어민 수준에 가깝게 하는데 그게 단 서너 달 만에 그렇게 된 거고 그렇게 되도록 끌어준 사람이라는 거다.

난 그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정종철 영어와 윤재성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사실이었다. 우리가 다 아는 옥동자 정종철이 어떤 외국인과 상당히 능수능란하게 대화하는 동영상이 있었다. 무식이 통통 튄다고 알고 있던(정종철 님께 죄송하다.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그가 원어민과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하다니! 오 마이 갓이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방법을 썼기에 이렇게 놀랄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 싶었다. 소리. 소리였다. 윤재성 원장의 영어는 이른바 '소리영어'다. 소리가 본질인 영어라는 언어를 우리는 소리가 아닌 글로 배웠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국어는 태어나고 5, 6세 정도만 되면 글을 몰라도 누구나 한다. 뜻은 잘 몰라도 소리는 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이 내는 소리의 정확한 뜻이 새겨진다. 바로 이러한 원리를 영어에 대입해보자는 것이다. 뜻은 알려하지 말고 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 윤재성 소리영어의 출발이다. 여기서 제대로 듣는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게 아니다. 듣고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걸 말한다. 뜻은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 원어민이 내는 영어소리를 듣고 그대로 흉내 낼 수 있으면 된 것이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듣고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고? 너무 쉬운 거 아냐? 근데 홈페이지에 있는 동영상 속 한 영화의 배우가 하는 말을 듣고 이내 깨달았다. 따라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 배운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인 데도 도통 들리지가 않았다. 몇 번을 들어봐도 흉내 내기 힘들었다. 듣고 그대로 복사하듯 따라할 수 있으면 그 영어소리가 제대로 들렸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서야 제대로 안 것이다.

개그맨 정종철은 인간복사기다. 성대모사의 달인이다. 그가 윤재성 원장에게 배운 건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에 나오는 대사들을 듣고 그대로 복사한 것밖에 없는데, 어느 순간 자막도 없이 영화배우들이 하는 말이 선명하게 귀에 꽂히더라는 말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이렇게 듣고 따라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저자가 가이드하는 단계를 밟아나가면 빠르면 1년, 적어도 2, 3년이면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를 자막 없이 들으며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걸 구현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문이 든다. 근데 원어민들이 하는 영어소리는 왜 그렇게 잘 안 들리는 걸까. 사실 그동안 수십 년 간 영어에 관심을 가져오면서도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외국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듣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당연히 봤었지만, 그저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게 주된 논지였을 뿐이었다.

'들어라, 듣고 또 들으면 언젠가는 귀가 뻥 뚫린다!'는 것이니 어느 세월에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윤재성 원장은 이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들어도 안 들린 이유를 자신이 깨달은 경험담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라. 난 스포일러를 유출하고 싶지 않다.

이제 책 얘기를 잠깐 해야겠다. 사실 구매까지 할 계획은 없었다. 그동안 홈페이지에 있는 글들과 체험자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으로 윤재성이라는 사람이 하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는 얼추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쭉 훑어보면 되겠지 했는데 한 쪽 한 쪽 넘기다 보니 어느 새 다 보고 말았다. 근데 이건 한 번 보고 말 게 아니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읽은 책 그대로 들고 가 계산했다. 물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구매해야 부록인 30문장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옵션에 굴복했다.

책을 보면서 내심 놀란 건, 윤재성 저자가 가지고 있는 영어에 대한 철학이 대한민국 영어교육에 대해 돌직구를 날린다는 점이다. 영어교육 현장에 있는 분들이 깊이 생각해볼 만한 적잖은 이야기들이 있다.

영어. 영어란 도대체 뭘까. 나에게는 뭘까. 한국인에게는 뭘까. 얼마 전 본 김제동 토크콘서트에서 김제동에 한 말이 생각난다. "영어유치원에 간 적이 있는데요, 아이들이 의자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면서 'This is a chair! This is a chair!'이래요. 아니 누가 봐도 의자인데 이게 말이 돼요?" 길을 가다 차에 받혀 넘어져 피 흘리는 사람에게 운전자인 외국인이 놀라 다가가 "How are you" 하니까 "Fine thank you, and you?" 했다는 우스개소리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옥동자 정종철과 이른바 영어를 1년 만에 완성했다는 '성공사례'를 계속 만들고 있다는 윤재성 원장이 쓴 이 책은 영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그동안 해도 해도 안 되는 이 땅의 수많은 영어순례자들이 일독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윤재성의 소리영어 Plus - 영어를 우리말처럼 선명하게 듣는 가장 확실한 방법

윤재성 지음, 스토리3.0(2014)


태그:#윤재성, #소리영어, #정종철, #윤재성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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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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