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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한국 현대사> 책표지.
 <숨어있는 한국 현대사> 책표지.
ⓒ 인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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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한국 현대사>(인문서원 펴냄)는 '근래 이처럼 만감이 교차하는 책을 읽었나'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복잡한 심정과 다양한 감정으로 읽었다. 물론 근래 복잡한 심정으로 읽은 책은 이 외에도 몇 권 있다. 그런데 이 책만큼 울고 웃는 심정이 왔다 갔다 하는 식으로 만감이 교차한 책은 근래 없었지 싶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이 이인직이다. 한일병합 문서작성은 물론 병합의 실질적인 것들을 타협한 매국노 이인직을 왜 <혈의 누>라는 신소설의 효시자 혹은 선각자로만 가르쳤을까? 매국노 이완용 비서로 실무를 도맡아 했다는 이인직 이야기를 읽으며 솔직히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항일무장투쟁에 전 재산을 바친 이회영 일가에 대한 것이었다. 읽으면서 몰아치는 감동으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 다음 읽게 된 것이 '축복받은 일본에 살어리랏다'란 제목의 글이다. '뼛속까지 친일파, 윤치호 등 친일파를 7명이나 배출한 윤씨 집안'이란 부제가 붙은 글이었다. 조선에서 손꼽히는 갑부였던 윤치호는 일본에 군자금을 수시로 바쳤으면서도 독립자금으로 10원 한 장 내놓지 않았다.

혹자는 '105인 사건(1911년)'으로 체포된 윤치호가 전향을 조건으로 풀려났음을 근거로 들며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마음만 있다면 비밀로라도 독립자금을 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윤치호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역사관이 의심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친일파의 대부라 불리는 윤치호의 후손들이 '윗대의 친일 행각을 조금이라도 가리고 명예로운 것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싶어서, 실오라기 같은 근거들을 부풀리고 내세워 애국가 작사자라고 우기는 것'이라는 혹자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윤치호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64세의 나이로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고 순국한,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뭉클한 감동을 주는 강우규 의사 이야기다. 강 의사를 체포해 사형하게 만든 민족반역자 김태석 이야기까지 꽤 많은 분량으로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어서 당시 상황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덧붙이면, 조선인에 대한 김태석의 고문은 매우 악랄해 그가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분조차 안 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광복 후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재판정에 섰을 때  '전혀 그런 사실이 없노라' 잡아뗐다고 한다.

조선사편수회란 어떤 기관인가? 1919년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 직후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 선생이 중국에서 저술한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국내 유입되어 은밀히 읽혔다. 이것을 탐지한 일본총독부는 당황했다. 이에 따라 부랴부랴 준비작업을 거쳐 1925년 발족시킨 것이 조선사편수회였다. 한마디로 조선총독부가 조선 민족에게 황국사관을 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한국사 연구 기관이었던 것이다.

조선사는 주체성이 없어 주변 민족의 지배와 간섭, 침략에 의해 전개되어 왔다.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타율성에서 벗어나 발전한다. 이것이 요즘말로 하면 식민사관이다. 총독부의 관점으로 한반도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신봉하는 사학자를 식민사학자라고 부른다.(…)조선총독부의 노림수는 한국인이 독립할 능력이 없는 민족임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사 전체를 개편하는 것이었다.(…)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간 이병도와 신석호 등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져 있는 식민사학을 충실하게 전파한 친일식민사학지로 평가받고 있다.
- <숨어있는 한국 현대사>에서

<숨어있는 한국 현대사>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중요한 사건들과 인물들이 주인공인 책이다. 친일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신소설의 효시로만 알려진 이인직처럼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사실과 달리 잘못 알려진 것들의 진실을 들려준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된다. 애국자와 친일파를 다룬 1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이야기 그 주인공들처럼 뼛속까지 애국자인 그들과, 뼛속까지 친일파인 그들의 행적들을 들려준다.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라 1부의 12꼭지의 글을 읽는 동안 특히 더 만감이 교차했다.

2부에선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시기에 있었던 사건과 인물들을, 3부에선 한국전쟁 발발에서 휴전까지 그 시기에 일어났던 일들을 소개한다. 2부와 3부에서 특히 인상 깊게 읽은 것은 서북청년회의 만행과 여순반란사건의 진실, 그리고 독일 현대 문학을 소개한 전혜린의 아버지 전봉덕이 김구 암살을 지휘한 인물이라는 것, 한국전쟁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신성모의 간첩 운운 진실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과 고관대작들 및 국회의원들의 탈출을 위한 경쟁 실태, 빨치산 관련 3꼭지의 글이었다.

서북청년회는 당시 제주도의 유일한 신문인 <제주신보>까지 장악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행세했다. 이들은 마을을 점령하면 인간의 탈을 쓰고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 주민들을 모아 놓고 서로 뺨 때리기를 시키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손자 간에도 뺨 때리기를 강요했다. 주정공장 창고 부근에는 부녀자와 처녀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여자들을 겁탈하고 나서는 고구마를 쑤셔대며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장모와 사위를 대중이 모인 가운데 관계를 갖도록 강요하고 총살시켰다. 청년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고문과 구타를 공공연히 자행했다. 테러에는 도끼와 방망이는 물론 총기와 폭탄도 사용했다. 제주도에서의 서청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의 끝을 보여줬다.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도 서북청년회원 이었다. 월남한 안두희가 처음 만난 것은 작은 부락에서 월남민을 심문하던 서북청년회였다. 안두희는 서북청년회에 가입해서 김구 암살을 계획하던 이승만의 측근들을 알게 된다.
- <숨어있는 한국 현대사>에서

서북청년회 이야기는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시대를 달리하긴 하지만 그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살았던 또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조차 치욕스러울 정도로 만행들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을 때의 그 기분 나쁜 당혹스러움 때문에 읽던 책을 덮고 말아야 할 정도로 말이다.

<숨어있는 한국 현대사>에는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이야기'란 부제가 붙었다. 목록만 보면 여타의 책들이 이미 다뤘던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읽어 나가는 동안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누군가들의 의도에 의해, 또 다른 누군가들을 옹호하는 역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정도로 모르던 사실들과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이 꽤 많았다.

물론 이 책이 담고 있는 것들이 진실이라 무조건 믿는 것도 한편으로는 위험할 것이다. 하여 바래본다. 이 책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기를. 그리하여 책에서 다룬 것들의 진실을 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그리하여 우리 후배들은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울 수 있기를 말이다. 이 책을 권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임기상) | 인문서원 | 2014-11-26 | 16,000원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이야기

임기상 지음, 인문서원(2014)


태그:#조선사편수회, #서북청년회, #한국현대사, #이인직, #이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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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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