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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도서관에서 하는 체험프로그램들이 많아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 방학이지만 아이들은 바쁩니다 도서관에서 하는 체험프로그램들이 많아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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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새해 소망을 기원하고, 저마다의 간절함을 담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새해와 함께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출근(?)합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오는 아이들, 어제 다 못 본 만화책을 마저 보기 위해 찾은 아이들, 새해를 맞아 '책 많이 읽기' 계획을 세우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아이들. 그런 아이들로 도서관은 아침부터 북적거립니다.

"우리 도서관은 10시부터인데, 뭐 하러 이리 일찍 왔노?"
"엄마가 도서관 얼릉 가라 해서요."
"그랬나? 샘들이 청소도 하고 책 정리도 쫌 하고 그래야 하는데, 우짜지?"
"그라믄 밖에서 쪼매 기다릴게요."
"추블낀데 괜찮겠나? 아니믄 들어와서 시끄럽더라도 책 보고 있등가."
"아 괜찮아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추우니 들어와 있으라고 해도 굳이 밖에서 기다리다 문 여는 시간 되면 들어오겠다는 친구들. 10시에 문을 열지만 도서관 자원봉사자 '샘'들은 30분 정도 일찍 나와 하루를 준비해줍니다.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매일 청소는 하지만 생각보다 먼지가 참으로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쓸고 닦고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샘~, 이제 아~들도 방학도 했는데, 우리도 방학 쫌 하믄 안 될까요?"
"에에~ 무신 방학요? 샘들이 방학하믄 나는 우짜라꼬?"
"새로 보조해줄 샘 한 분 있잖아요. 흐흐."
"아이고~ 무신 소릴 그래 하노? 한 달 시어부믄(쉬어버리면) 담달에 또 새로 다 갈쳐주고 해야 할 낀데."
"새로 안 갈쳐줘도 되는데, 우째 안될라나요, 샘?"
"한 달 방학 할끼믄 그냥 파악 쉬어뿌고, 그냥 하입시더. 꼬옥 쉬고 시프믄 한 번 정도 시믄 될 끼고."
"아이고~ 사서샘하고 내가 무신 얘길 더 하겠노? 마아 없던 걸로 하입시다."
"미안심데이. 푹 시게 못해서. 혼자 하다보이 샘들 안 나오믄 힘 빠진다. 일이 안 되고."

방학이라 아이들이 집에 있어 방학 동안만이라도 도서관 자원봉사 활동을 쉬면 안 되는지 물어오는 자원봉사자 샘들도 가끔 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지만, 한 달이라는 공백이 가져다주는 영향이 작지만은 않습니다. 되도록 자원봉사자 샘들도 알아서 대처해주십니다. 사서 혼자서 도서관을 운영해야 하는 힘겨움을 알기에,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함께해 주시지요.

도서관 문 열기 전부터 와서 기다리는 꼬마 친구들

올 한 해도 아이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전해줄 수 있겠지요
▲ 새로운 큰 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올 한 해도 아이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전해줄 수 있겠지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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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큰 책 만들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거의 매일 작업하고 있네요 알아서 큰 책 만들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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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우리 올해 새 책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네, 안 그래도 큰 책(빅북) 새로 작업 들어가야 할 낀데, 우짤란가 싶었네요."
"이번에는 쪽수를 좀 늘리가(늘려서) 만들어야겠네요, 샘."
"방학 동안 샘들이 자주 나와가(나와서), 얼릉 함 만들어보이소."
"알았심더. 요거 몇 달 걸리겠지만 바짝 하믄 올 봄에 공연 함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암튼 샘들만 믿어요. 우짜든동 자주 나와서 맹글어보입시더."

빅북구연 샘들이 새 책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저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새 책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책을 만든다는 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언제쯤 시작하나 보고 있던 참이었지요.

큰 책 한 권을 제작하는 데 석 달 정도 걸립니다. 이것도 꾸준히 작업을 했을 경우에 그렇습니다. 큰 책 제작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서 처음 시작할 때 심혈을 기울여 만듭니다. 어린 꼬마들이 좋아할 만한 책으로 선정하여 더 재미있게 실감나게 책을 만들어보겠다고 의견이 나눕니다.

새로운 큰 책도 작업에 들어가고, 방학이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하고 있는 도서관은 바쁩니다. 학교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틈틈이 도서관에 들르지만, 누구보다 혼자서 방학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도서관만큼 좋은 친구가 없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형제는 항상 읽고 싶은 책 한두 권을 읽고 서로 똑같이 자신이 읽을 책을 권수에 맞게 빌려갑니다. 형이라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으로 몇 권 더 빌리겠다고 하지도 않고, 항상 똑같은 권수를 빌려가지요. 이런 아이들이 도서관을 찾아와 책을 빌려갈 때면 참으로 흐뭇합니다.

"오늘도 만화책 가득 빌려가네."
"네에."
"그래도 담엔 동화책도 하나 빌려가제이?"
"네…."

만화책만 가득 빌려가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권하니 풀 죽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합니다. 괜한 얘기를 했나 싶기도 하고, 무안함에 잠시 말을 잃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그냥 웃었습니다.

책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야 진정 도서관다운 도서관

동화책 주인공을 따라 그려 예쁘게 가방을 만들어요
▲ 미니가방 만들기를 하고 있네요 동화책 주인공을 따라 그려 예쁘게 가방을 만들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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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하지 못한 체험들을 방학을 맞아 즐겁게 하고 있어요
▲ 석고방향제를 만들고 있어요 평소 하지 못한 체험들을 방학을 맞아 즐겁게 하고 있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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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이거, 이런 것도 가르쳐주나요?"
"뭐? 함 보자. 에~."
"수학문제 푸는데 잘 몰라서요."
"아~ 근데 우짜노? 샘은 수학을 못해서 잘 모르는데. 국어믄 몰라도 수학은 영…."

공부하던 아이가 수학책을 들고 와서 가르쳐 달라고도 합니다. 함께 있던 자원봉사자 샘은 한번 머리 맞대고 풀어보자고 했지만 잠시 망설였습니다. 얼른 문제를 풀어주지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있다 불현듯 한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빅북구연팀 샘의 대학생 조카가 방학 동안 빅북 제작을 도와주겠다고 거의 매일 와서 작업해주고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대학생 조카는 꼬마 친구에게 자세히 수학문제를 풀어주었습니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수학문제도 풀어주는지 물어온 것 말입니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어려웠고, 제일 성적이 좋지 않은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이참에 수학공부도 좀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습니다.

꼬마 친구가 돌아가고 한참 자원봉사자 샘들과 웃었습니다. 앞으로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수학을 멀리한 지도 벌써 몇 십 년씩 된 아줌마들에게 새삼스레 묻는 아이들을 위해, 수학이 아니라도 뭐든 공부는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샘~ 우리도 공부 좀 해야겠네요."
"그러게요. 담에 또 영어나 뭐 이런 것도 물어보믄 큰일일까네(큰일이니까)."
"도서관 봉사하믄서 요런 경운 처음이네."
"흐흐 그것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수학이라서 더 걱정임더. 난 증말 수학 싫거든요."
"샘만 그런 거 아임더. 마아 수학 좋아하는 사람 잘 없을 낀데. 영어 단어라도 외워야 할까 싶네요."

때 아닌 공부 타령으로 도서관이 어수선합니다. 책 읽는 아이들 틈에 방학과제 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다들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방학이 오자마자 개학은 언제하나 생각한 것이 참 미안해졌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도서관 앞에서 도서관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꼬마들이 있어 오늘 아침도 힘찬 출발을 해봅니다.

도서관엔 책들도 많이 있지만 책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야 그것이 진정 도서관다운 도서관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행여나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귀찮아하고 피곤해 한다면 진정한 도서관 지킴이라 할 수 없겠지요. 사소한 작은 일들이 나른한 오후를 깨워줍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재미가 있고,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예쁜 가방 만들기 끝났어요
▲ 다 함께 도서관에서 하루를 예쁜 가방 만들기 끝났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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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방학, #체험특강, #빅북, #동화구연, #꽃바위작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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