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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시니어' 인터뷰는 녹색당의 '당원, 당원을 만나다' 기획의 일환입니다. 이런저런 삶의 굴곡을 격어온 60대 이상 시니어들이 녹색전환에 관심을 갖고 녹색당에 가입한 이유가 궁금했고, 찾아뵙고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로 기획했습니다. - 기자 말

꽃보다 시니어(1) 인터뷰 전경
▲ 신학림님 꽃보다 시니어(1) 인터뷰 전경
ⓒ 이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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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영국의 전환마을 토트네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인구 2만5천 명의 전형적인 농촌마을 토트네스 사람들은 '기후변화'와 '석유생산정점'이라는 지구적 위기에 맞서 공동체의 '회복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전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석유생산정점으로 에너지가 부족해져도, 기후변화로 식량생산이 줄고, 홍수나 가뭄이 찾아와도 공동체가 큰 타격을 입지 않고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트네스 전환마을 실험에는 여러 원칙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노인을 공경하라'는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느닷없어 보이지만, 그 뜻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적은 에너지를 쓰고, 전통적인 농업, 그리고 지탱 가능한 생활방식으로 공동체를 유지해온 어른들의 '경험'에 주목하고, 배워야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난 시기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곤궁에 처해진 쿠바가 전통적인 유기농법과 치료방법 등으로 위기를 벗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2014년 늦가을의 어느날, 한국사회의 녹색전환을 고민하는 자리에서 20대와 40대 사회운동가 둘은 '녹색'을 고민하는 60대 이상 어른들을 만나보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어느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게다가 원내의석도 없고, 현실정치의 힘이 미약한 녹색당에 참여하고 계신 60대 이상 선배들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앞으로 틈틈이 20대와 40대 시민운동가가 '꽃보다 시니어'를 만나 '녹색'을 주제로 떠드는 한판의 수다를 정리해 나갈 계획입니다.

함학림님은 1980년 서기보로 공직생활의 첫발을 뗀 후, 노원구청 자치행정과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4년 8개월 동안 공무원이셨습니다. 지난 2014년 6월 30일 은퇴를 하고, 바로 다음 날인 7월 1일 오전 10시에 녹색당에 전화를 걸어 당원가입을 했다고 합니다. 당직자 업무시간까지 미리 알아볼 정도로 녹색당 가입을 기다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공무원 집단에 몸을 담고 있다 보면,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성환 구청장이 부임하고 민생중심의 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청의 행정조직도의 맨 위에 있던 구청장 이름 위에 '구민이 주인이다'라고 인쇄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행정중심의 구정에 익숙해져 있었던 탓에,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느날 구청장이 지정한 책을 읽고 논술시험을 보게 됐는데요,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밈 펴냄)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승진하기 위해서 진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읽다보니 어느 순간 승진보다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촛불집회에도 몰래 참가했구요, 강정마을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 권의 책이 준 선물 '행복하려면, 녹색'

공무원들의 가장 약한 고리는 '승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이 탈핵과 에너지전환에 관심을 갖고 '원전하나줄이기'에도 열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승진'을 매개로 논술시험을 보고, 공무원들의 인식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책에 나오는 복지국가 이론들을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 대입하다 보니, '보편적 복지'가 사회문제의 기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본주의의 성장과정과 자연파괴가 함께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게 됐습니다. 이후 <녹색평론>(녹색평론사 펴냄)과 <행복하려면 녹색>(이매진 펴냄)을 접하게 됐습니다.

특히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의 <행복하려면 녹색>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답답해하던 부분을 아주 쉽고 명쾌하게 정리했더라구요. 책의 맨 뒤에 부록으로 첨부돼 있는 녹색당의 강령을 보고, 은퇴하면 녹색당에 가입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녹색당은 제 생애 첫 번째로 가입한 정당입니다."

공무원에서 녹색당 당원으로

"녹색당에 가입하고, 첫 번째 모임은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서대문구의 이태영 후보와 은평구의 박종원 후보의 '낙선소감' 모임이었습니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30대 젊은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렇게 녹색당의 젊은 친구들이 마을에서 활동하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젊은 친구들을 발굴하여 자치구에서 최소한 한 명씩은 나와야 합니다. 당선여부를 떠나 녹색당의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면서, 지역에서 녹색당 활동을 하겠다는 결심이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었고,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민생을 우선하는 구청장을 만난 것이나, 생각의 자극을 준 책을 접한 것도 중요한 계기겠지만, 함학림님은 줄곧 사회문제에 따듯한 시선을 유지해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부모님 때부터 천주교 집안이었던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촛불집회, 강정마을, 세월호 집회 등 시민의 힘이 필요한 현장에 함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은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특히 구청에서 문화예술분야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예술인들과 교류를 하다보니, 생각이 많이 유연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또 몇 년 전, 국제민주연대가 주관한 공정여행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과 함께한 경험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은퇴 후에는 배낭만 들고 그냥 떠나고 싶다고 계획도 세웠지만, 아직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웃음)"

신학림님이 녹색당 가입 후 자비로 만드신 팔찌. 10개를 만들어 주변에도 나눠주셨다는군요.
▲ 녹색팔찌 신학림님이 녹색당 가입 후 자비로 만드신 팔찌. 10개를 만들어 주변에도 나눠주셨다는군요.
ⓒ 이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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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은 '법'을 보지만, 정치는 '사람'을 본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행정시스템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은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을 가져오기 쉽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행정시스템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전환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나 정당 등은 공무원 조직을 파악하고, 좀 더 전략적인 네트워킹을 가져가려고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공무원 조직은 일의 성과, 즉 결과가 가장 중요한 조직입니다. 때문에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절차를 통한 확실한 성과를 원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파악해서 갈등을 조정하려는 노력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행정이라는 것은 법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행정은 '법'을 보지만, 정치는 '사람'을 보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잘못되고 불합리한 행정들과 조례를 바꾸고, 시민들을 위한 행정과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녹색당이 정당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에 녹색당이 시민단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강력하게 어필하고, 녹색당 스스로 의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활동을 하다보면 긴밀하게 풀뿌리 정당과 연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정당으로 중심을 잡고 활동하다보면, 지역 사람들이 녹색당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구의원, 자치단체장을 배출하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녹색당에 가입한지 얼마 안 된 새내기 당원의 '녹색'과 '정치'에 대한 진단이 매섭습니다. 삶의 경험과 고민은 '지혜'를 낳는 것 같습니다. 물론 더욱 탐욕스럽게 나이 드는 분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다른 세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해야

20대, 40대, 60대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세대 간 소통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무엇보다 세대 간 언어의 차이는 문화와 가치관의 '다름'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 이래 줄기차게 다뤄져온 주제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표현이 강해서 좋습니다. 젊은 친구들과의 소통 이전에 개인적으로는 가족 간의 소통이 힘들었습니다. 일에 치여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은퇴하고 나서 가족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특히 딸보다는 아들과의 소통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활동할 때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떠올리며, 꾸준히 편지를 쓰면서 소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소통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젊은 친구들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소소하고, 당연한 것에 문제의 답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나의 마음을 먼저 열고,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은 단지 세대 간의 소통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두 시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된 '녹색수다'였지만, 평생을 열심히 살아오신 한 선배의 '오늘'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함학림님은 녹색당 가입 후, 당을 조금이라도 알리기 위해 자비로 녹색 팔찌를 만들어 손목에 차고 계셨습니다. 팔찌에는 작은 글씨로 '행복하려면 녹색'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색당 홈페이지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녹색당, #행복, #공무원, #함학림,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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