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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임에도 불구하고 르포 작가가 되고 싶다는 대학생의 글을 읽었다. 르포 작가가 되는 데 공대생인 게 무슨 상관이며, 음대생이면 또 어떠랴 싶지만 학생 주위에서는 극구 만류하는 분위기인가 보다. 취업 때문이다. 요즘 공대생은 취업이 잘 된단다. 특히 그 학생의 전공은 '로봇 공학'. 취업이 잘 되는 전공 중 하나란다(관련기사 : '취업깡패' 공대생, 취직 생각 접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르포 작가는 <카탈로니아 찬가>,<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쓴 조지 오웰이다. 위의 학생은 노동 전문 르포 작가가 되고 싶다는데, 그렇다는 건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같은 부류의 글을 쓰고 싶다는 것 같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자이니, 학생은 세상 대부분의 사람을 대변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멋진 포부이지 않나!

세상엔 옳은 단 하나의 선택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안정과 꿈 중 본인이 원하는 것을 택하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 주위에서 만류하는 것도 당연하다. 조금만 노력하면 안정된 길로 들어설 수도 있는 입장인데, 굳이 험한 길로 갈 필요가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할 테다.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지금 시대엔 그 누구도 안정을 보장받지 못한다. 좋은 직장을 얻었다고 해서 일평생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기에 우리는 더 안정을 바라게 되는 것일 테지만, 길게 보면 결국 모두 엇비슷하게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찌 보면 안정적인 삶 그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고 산다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가 어떤 모습을 띠고 있든, 안정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리고 나는 꿈을 좇는 사람을 보면(책에서든, 현실에서든) 그저 지지하고만 싶다. 꿈, 그 안에는 설렘과 고통이 거칠게 직조되어 있어 꿈을 꾸는 자를 쉴 틈 없이 흔들어 댄다. 이 때문에 꿈을 꾸는 자는 신도 되었다가, 두더지도 되었다가 하는 등 다른 사람들은 결코 경험하지 못하는 삶의 강렬한 빛과 어둠을 두루 겪게 되는 것이다. 어느 삶도 쉽지 않을 테지만, 꿈을 꾸는 자의 삶이 더 어렵다 느껴지는 것은 혼자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니 누구라도 손을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달과 6펜스> 표지
 <달과 6펜스> 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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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꿈을 생각하면 찰스 스트릭랜드가 떠오른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마흔 살이 되던 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러 파리로 향한다. 하루 아침에 모습을 감춘 한 가정의 가장에 대한 소문은 금세 확 퍼진다. 바람이 난 것이 분명하다는 사람들의 말. 그를 찾으러 한 남자가 나선다.

파리 어딘가의 고급 호텔에서 여자와 함께 있을 스트릭랜드의 모습을 예상했지만, 스트릭랜드는 어느 허름한 호텔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제대로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던 스트릭랜드는 오직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 하나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기본적인 모든 욕망들을 제거해 버렸다. 그에게는 죽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 그에게 도덕, 윤리, 책임감 운운할 수는 없는 거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귀엽지도 않습니까? 정말 귀여운 아이들 아닌가요. 이제 그 애들과 영영 인연을 끊겠단 말씀입니까?"
"어릴 때는 귀여워했지만 이제 다 크고 나니 별 감정이 들지 않아요."
"아주 몰인정하군요."
"그런가보오."
"전혀 창피하지도 않고."
"창피할 것 없소."
"세상 사람들이 아주 비열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라지요."

남자는 스트릭랜드를 다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열심히 그를 도발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끄떡도 하지 않고 오히려 남자를 맹추 취급한다. 꿈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 같으니!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선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이런 맹추 같으니라고."
"제가 왜 맹추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내 가족의 일원이 스트릭랜드라면'하고 상상하는 일은 꽤 끔찍하다. 스트릭랜드 한 명 때문에 가족이 짊어질 고통이란 어마어마할 테니까. 다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그의 말에 나는 그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후 보여진 그의 삶을 보며 그의 선택을 지지하게도 됐다. 모든 것을 버린 그는 자기 자신마저 버릴 수 있다는 듯 그림 하나만을 위해 살았다.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스트릭랜드의 꿈은 본인 자체가 그림으로 화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꿈은 찰스 스트릭랜드의 꿈처럼 무모하진 않을 테다. 우리가 말하는 꿈은 무슨 직업을 택할 것인가에 국한돼 있는 것이 보통이다. 가는 길이 조금 좁거나, 생소하거나,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의견이 아닌 본인의 마음을 따를 경우라면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꿈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바로 그 꿈을 꿈이게 하는 그 기본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좁고, 생소한 길을 내 마음대로 택해도 되는 것일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표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표지
ⓒ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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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민 앞에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름에도 공부하는 고3 수험생처럼. 행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름에도 결혼하는 수많은 커플처럼. 안정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름에도 대기업을 택하는 공대생처럼. 르포 작가를 꿈꾸는 이 학생도 그저 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본인이 시인이 될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기에 시를 써놓고도 시름에 빠져 있던 젊은 시인은 라이너 마리에 릴케에게 본인의 고민을 담은 편지를 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릴케의 답장이 실려있다.

무엇보다 당신은 아직 젊으며 모든 것이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성급히 대답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까지 그 대답을 갖고 살아 보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해도 그 대답이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살면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그 문제 속에서 살아 보십시오. 당신은 먼 장래의 어느 순간에 그 대답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달과 6펜스>(서머싯 몸/민음사/2000년 06월 20일/9천원),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이너 마리아 릴케/소담출판사/1993년 03월 01일/4천5백원)



달과 6펜스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민음사(2000)


태그:#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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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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