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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5년 2월 13일부터 19일까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아래 ABC) 트레킹을 일주일간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마흔 언저리의 나와 K, 두 남자가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느낀 여러 생각과 소회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익히 히말라야를 경험하신 분들께는 그 때의 기억과 감흥을, 버킷리스트 한 편에 히말라야를 적어 놓고 '언젠가'를 준비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설렘과 정보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 기자말

왼편은 오믈릿, 오른편은 달밧
 왼편은 오믈릿, 오른편은 달밧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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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면 걱정되는 것 중의 하나가 식사죠. 이번 트레킹을 오면서도 그 부분을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냥 편한 여행도 아니고 많이 걸어야 하는데, 입맛이 안 맞아서 고생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죠.

다행히 네팔 음식은 적응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정식에 해당하는 '달밧'이 네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식사인데, 식당과 가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밥과 녹두 따위로 끓인 스프, 소스를 얹은 감자, 나물 무침, 튀긴 쌀과자 등이 나옵니다. 가격도 저렴하여 하루에 한두 끼는 꼭 쌀을 먹어야 든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제격이지요.

그 외에도 계란 요리나 스파게티, 피자, 토스트 등 부담없는 메뉴가 로지에 준비되어 있답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이 트레킹을 많이 와서 그런지 놀랍게도 웬만한 로지에서는 한국라면을 팝니다. 촘롱에서는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심지어 닭도리탕까지 가능하다는 광고 문구가 한글로 적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일정은 이곳 촘롱(2170m)에서 히말라야호텔(2920m)까지 입니다. 우리의 구간 계획 상 이번 트레킹 코스 중 가장 긴 구간을 걷는 날이 될 것입니다.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눈이 즐거워지는 '시누와-뱀부-도반' 구간

촘롱의 아침, 멀리 설산이 보인다.
 촘롱의 아침, 멀리 설산이 보인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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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국화(國花) 랄리구라스
 네팔의 국화(國花) 랄리구라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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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큼이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여정입니다. 하지만 어제의 교훈을 발판 삼아 오늘은 걷고 쉬는 템포를 조절하니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시누와(2340m)에서 뱀부(2510m)를 거쳐 도반(2600m)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ABC트레킹 최고의 '힐링로드'라 할 만 합니다. 풀향기 가득한 숲길은 치유의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뱀부라는 지명이 나타내듯 대나무가 많고, 가끔은 나무를 타는 원숭이도 볼 수 있습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들리는 새 울음 소리와 짙은 녹색의 풍경은 마치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도반을 지나면서부터 방심은 절대금물!  군데 군데 눈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초가을 같던 상쾌함이 겨울의 쌀쌀함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빨리 눈을 만나게 될 줄 모르고 아이젠과 장갑을 배낭 깊숙이 넣어두었는데, 막바지 미끄러운 눈길을 엉거주춤 걷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치유의 에너지가 가득한 뱀부의 숲길
 치유의 에너지가 가득한 뱀부의 숲길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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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호텔의 로지. 이 곳부터는 눈이 많이 쌓여있다.
 히말라야호텔의 로지. 이 곳부터는 눈이 많이 쌓여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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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입니다. 전 세계에서 히말라야를 찾아온 저와같은 트레커들, 산악지대에서 땅을 일구며 사는 현지 주민들, 그리고 트레커의 짐을 지고 동행하는 포터와 트레킹 구간의 로지에 물품을 나르는 짐꾼들입니다.

네팔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무거운 짐의 끈을 이마에 동여매고 다닙니다. 저러다 목이 부러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등산화를 신은 이들도 있지만, 운동화 심지어 슬리퍼를 신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포터에게 물어보니 짐꾼의 하루 일당은 우리 돈으로 2만 원 정도 되는데, 고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벌이가 좋아 인기 좋은 직업이랍니다. 이를 악물고 봇짐을 나르는 그들의 모습에서 문득 우리 아버지 세대가 떠올랐습니다.

난로 앞에 모인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

무거운 짐을 이고 산을 오르는 짐꾼들의 행렬
 무거운 짐을 이고 산을 오르는 짐꾼들의 행렬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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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나는 아버지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분은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와 동시대를 지내신 분들입니다. 연세가 비슷하시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탓에, 우리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라는 면에서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뺨을 부비며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 본 적이 없는 것은 우리 아버지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다른 아버지들에서도 발견하는 보편적인 모습인가요?  당신의 아버님은 어떠십니까?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어 최근 이슈가 되었던 영화 <국제시장>의 논쟁이 떠오릅니다. 논쟁 지점은 이 영화를 '과거를 미화한 정치적 영화로 볼 것이냐'와 '아버지 세대를 그려낸 가족영화로 볼 것이냐'겠지요. 윤제균 감독은 후자의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며 정치적인 확대 해석을 경계한 바 있습니다. 저 또한 가족영화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같은 영화에서도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낄 것인가는 개인적인 관점과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에 특별한 코멘트를 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국제시장> 논쟁을 보며 불편했던 점은 극단적 과잉 해석이었습니다. 그 영화를 도대체 보고나 이야기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대통령의 애국발언부터, 진영 논리로 단순하게 치환하여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태도 말입니다.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그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정서와 문화가 아닐런지요.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정치혐오'를 부추기거나 양비론으로 귀결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 삶의 많은 문제들이 오히려 '정치적'이기에 더욱 활발하고 성숙한 토론 문화가 필요함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산적해있는 여러 문제들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는 포용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고요. 생각이 다른 것이 창피하고 화낼 일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과 지혜롭게 공존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입니다.

난로와 식탁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로지의 밤
 난로와 식탁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로지의 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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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부 이후부터 자생적인 마을은 거의 없습니다. 트레커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시설만이 존재합니다. 당연히 로지의 숫자도 적고, 전기의 공급이나 물 사용도 원활하지 않습니다. 왜 이곳의 지명에 호텔이란 말이 붙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히말라야호텔의 로지는 각 방마다 따로 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전기와 따뜻한 온기를 쪼일 수 있는 곳은 오직 식당뿐입니다.

아주 큰 식탁 밑에 난로가 있기 때문에 갖가지 피부색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앉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언 몸을 녹이며, 짧은 영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 들어주고 재미있게 웃고 교류합니다. 히말라야판 비정상회담이라고나 할까요. 그 정겨운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생각해봅니다.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궁극적인 것은 결국 우리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며 함께 살기 위해서 같이 지구의 에너지를 나누어 쓰고 있다는 근원의 관점이 아닐까요.

히말라야호텔의 밤은 춥습니다. 하지만 '풍요의 여신'이라는 의미를 가진 안나푸르나의 너른 품안에 함께 숨쉬고 있는 정겨운 사람들을 보니 따뜻합니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뉴스에서 자주 들었던 참수, 보복, 화형, 폭격 등의 어두운 낱말들을 하얀 설산에 다 묻어두고 가고 싶습니다.

(* 다음편에 계속)

[깨달음이 있는 설산 기행①] 히말라야, '언젠가' 꿈꾸고 있는 당신께
[깨달음이 있는 설산 기행②] 말 떼 피하려다 밭두렁에 데굴데굴... 히말라야 맞아?


태그:#히말라야, #안나푸르나, #ABC트레킹,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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