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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연고가 없어져 명절에 조차 귀성하는 사람이 드물어진 고향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근에 생긴 부항댐의 수몰에서 면한 탓에 언젠가는 다시 젊은 사람들로 넘치는 고향을 꿈꾸어 볼 수는 있게 되었다.
 이제는 연고가 없어져 명절에 조차 귀성하는 사람이 드물어진 고향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근에 생긴 부항댐의 수몰에서 면한 탓에 언젠가는 다시 젊은 사람들로 넘치는 고향을 꿈꾸어 볼 수는 있게 되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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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수형입니까?"

전화기속 투박한 목소리는 고향후배였습니다.

"이번 명절,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왔어요. 항상 마음속에 그리던 고향이었는데 어찌나 쓸쓸하던지... 눈물을 거듭 삼켜도 가슴속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더군요."

나는 45년 전에 유학을 위해 홀로 고향을 떠났지만 그는 42년 전에 대처에서의 새로운 모색을 위해 가족이 함께 고향을 등졌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가 국민학교 5학년 때였어요. 올해 55살이 됐네요."

그때도 가구 수는 20여호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내가 그와 고향에 함께 지내던 시절에는 청년들이 집집마다 살고 있었고 개구쟁이들의 목소리와 장난으로 늘 마을이 떠들썩했었습니다.

팔순이 넘은 노인 몇 사람과 빈집, 허물어진 집터로 남은 현재의 고향에 그렇게 허망해하는 것을 보니 그는 적어도 십 수 년 고향에 발길을 할 수 없었던 처지였으리라.

그의 가슴속을 타고 흘렀을 비애는 명절에도 더 이상 마을의 적막을 깨는 아이들이 없다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이 피지 않는 봄보다 더 슬픈 것은 핀 꽃을 노래해줄 새가 없는 것이리라.

그는 고향에서 얻은 내 전화번호로 꽃을 노래하기에는 너무 늙은 고향선배에게라도 그것을 하소연하고 싶었는가.

45년 만에 불쑥 수화기속의 목소리로 만난 후배였지만 단지 5분간의 고향이야기만으로도 그와 나 사이를 이격했던 먼 시간의 간극이 허물어져 내렸습니다.

#2

"형님!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데 과연 이 말이 맞는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고향 얘기 끝을 잇는 후배의 새로운 말머리는 더욱 심상찮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나주에 살고 있어요. 막내여동생이 이곳으로 시집와서 여기서 식당을 하고 있어요. 저는 그 동생을 돕고 있습니다. 아니 동생이 나를 거두고 있는 셈입니다.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어요. '근이영양증'이라는 근육이 약화되는 병입니다. 십 수 년 전에 확진을 받았습니다. 매년 골격근이 퇴화되어가니 갈수록 힘을 쓸 수가 없고 힘든 일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직장을 얻기 어려운 나를 동생 부부가 거두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이혼했고 지금 고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아들은 행방을 알지 못합니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의 남동생알지요? 그 동생은 대구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다가 2년 전에 그 일들을 주선하는 회사를 차려서 작은 회사의 사업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10월에 위암 판정을 받은 거예요. 바로 수술을 했는데 위 전체를 절제하고 식도와 장을 바로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객지의 현실이 고달플수록 고향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가 이번 설 귀성에서 목도한 노쇠해진 고향은 그 기대조차 저 버린 셈이었습니다.

"내가 의문인 것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 현실을 극복하는 고달픔이 아니라 이 하루의 한 끼 밥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인가하는 문제입니다."

그는 내게 묻고 있었습니다.

"대관절 개똥밭 이승에 더 굴러야할 가치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고향, #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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