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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어법에 맞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둘의 차이점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둘을 구분하여 사용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국어사전을 볼까요?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뜻이 확연히 다릅니다.

▲ 다르다 :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영어로는 different 등
▲ 틀리다 :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 영어로는 be wrong, be in correct…….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섞어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예전보다 현재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영어를 구사할 때는 확연히 그 차이를 구분하며 사용하지만 정작 우리말을 할 때는 왜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개념으로 사용할까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현상'

강준만 교수는, "솔직히 요즘엔 혼용 차원을 넘어 마치 일제가 대한 제국을 꿀꺽 병합해버렸듯이 '틀리다'라는 말이 '다르다'라는 말을 거의 먹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65쪽)라고 말하며, 2012년 4월 27일 <서울신문>의 '다르다를 틀리다'라 하는 사회?'(계승범)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하고 다른 것을 단순​히 다르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틀리다'라고 단죄해 버리는 습성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알게 모르게 만연해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자기하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 상대방을 틀린 놈으로 쉽게 치부해 버리는 사회,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고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대하는 사회,....... 다들 자기가 기준이 돼 진보니 보수니, 좌파니 우파니 삿대질하는 데 익숙한 사회, 극좌와 극우가 속성으로는 서로 통하는 불편한 진실 말이다.(66쪽)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절로 고개가 끄덕입니다. 굳이 머리 아픈 정치권의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 기사의 무분별한 댓글이나 친구 간의 대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 범주 안에 속해있음을 부인하기 힘들고요. TV나 라디오에서 보는 토론문화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없이 몰아붙이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화는 내 생각의 외연을 넓히는 기회이며, 토론 역시 잠시 내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생각의 틀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우리의 한계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틀린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집단주의(가족주의)가 강하고 민족과 문화의 동질성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보니 그런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관련기사 : 대한민국의 가족주의는 파시즘?)

불확실성 회피 지수

네덜란드의 사회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가 조사한 전 세계 53개국의 '불확실성 회피 지수'
▲ 불확실성 회피 지수를 나타낸 도표 네덜란드의 사회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가 조사한 전 세계 53개국의 '불확실성 회피 지수'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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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는 네덜란드의 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가 조사한 전 세계 53개국의 '불확실성 회피 지수'입니다. 이 표는 1968년과 1972년에 다국적기업인 IBM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관련 분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엔 당시 IBM 직원이라면 일반인들보다 좀 더 서구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는 여러 나라에 대한 사회적 지수에 대해 많은 참고 자료로 인용되는 만큼 자료의 신뢰성은 높다 생각합니다.

위의 불확실성 지수에 근거한 특성을 요약해보겠습니다.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 약한 나라'
​▲ 나와 다른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음 ​▲ 불안 수준이 낮다. 감정 표현을 자제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내면화한다. 심장병 사망률이 높다 ​​▲ 바쁘게 일하기도 하지만 쉬는 것을 좋아함  ​▲ '시민의 힘' 지수가 높다. 공식적 규칙이 없어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낌  ​▲ 시민의 신분확인은 권위 있는 어떤 인물이 요구할 권리가 없다. 신분 확인을 부담하는 쪽은 권력자이다 ​▲ 사색이나 명상보다 경험 즉, 관찰과 실험으로 결론을 끌어내는 과학과 철학이 발전한다(뉴턴, 린네, 다윈 등) ​▲ 문제를 분해하고 조각내는 습관이 있다 ​▲ 직선적인 귀납적 사고방식이 발달(프랜시스 베이컨 등)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 강한 나라'​
​​▲ 나와 다른 무엇은 위험하다는 정서가 지배적 ​▲ 만나는 사람마다 바쁘고 안절부절 못하며 감정적이고 공격적, 활동적 ​▲ 모호한 상황을 기피하고 조직, 기관, 인간관계에서 구조를 추구한다 ​▲ 공무원이 정치와 정치가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품는 경향이 있다 ​▲ 신분증 휴대가 의무화 됨 ​▲ 고용주와 근로자의 권리 및 의무를  통제하는 공식 법률과 비공식 규칙을 많이 설정해 놓고 있다 ​▲ 엄격한 성문헌법을 제정 ​▲ 철학과 과학 영역의 위대한 이론들이 탄생될 가능성이 높다(칸트, 데카르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사르트르 등) ​▲ 광범위하고 거대 이론을 만든다 ​▲ 체계적 경향이 높은 연역적 방법을 선호한다

​위의 구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언뜻 보기엔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보다 문화적 수준이 높고 상대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네덜란드, 호주, 싱가포르 등이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꼭 나라별 구분을 하지 않아도 나열된 특성들은 이 나라들이 더 선진화되어 있는 문명과 사회구조적 양식을 지니지 않았나 하는 겁니다. '시민의 힘' 지수가 높다든지 불안 수준이 낮으며 쉬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 말입니다.

반대로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 강한 나라는 마치 근대화가 덜 되고 문화적 다양성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들로 보이기도 합니다. 감정적이며 공격적이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것, 그 불확실성을 대체하기 위해 법률이나 법칙이 존재하고 조직이나 기관을 통해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것 등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럼 이 생각이 맞을까요? 헤이르트 호프스테더의 도표에 따르면 그리스, 일본,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걸로 봐서는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근대화나 문화적 수준을 가르는 기준은 아닙니다. 이는 지수를 통해 나라별로 기업문화나 국민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회학적인 연구로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이 도표에서 나라별로 나타난 지수의 차이는, 한 나라의 역사적 배경(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세력 다툼, 외부세력과의 접촉)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인종과 민족의 구성 혹은 종교적 특색, 지리적 위치 등 다양한 변수들의 화학작용에 드러난 고유의 특성일 겁니다. 덧붙여 이 특성은 '그러한 경향'이 있다는 거지 모든 분야에서 그런 특이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소수자가 틀림'? 접근법부터 바꿔야

<세계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교수, 인물과 사상사
▲ <세계문화의 겉과 속> <세계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교수, 인물과 사상사
ⓒ 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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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조사가 IBM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을 감안한다면 ​대한민국은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강한 나라에 속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대한민국이 '하나의 민족'임을 강조한 교육을 받고 자라왔습니다. '기업 = 가족'이라는 독특한 기업문화도 민족적 동질성을 내세운 바탕 위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는 집단주의가 활발하게 힘을 발휘합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자기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약하고 새로운 문화가 적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 문제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박원순과 한겨레마저……. 우리한테 왜 이러세요? ) 이런 현상은 미혼모나, 혼혈, 외국인 노동자, 입양 혹은 재혼가정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배타적인 경향은 집단주의 특성만은 아닙니다. 개인적 취향이나 종교적 신념 등도 커다란 영향을 발휘합니다.

'한국은 오랜 세월 누려온 사회 문화적 동질성으로 불확실성 회피 욕구가 강한 동시에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이 강한 나라다. .…….  이 말은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화에 비해 우월하다고 여기며 다른 것에 대한 편견은 강하지만, 인내심이 약한 성향을 가리킬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74쪽)

위에서 인용한 본문은​​ '자문화 중심주의', '자기 집단 중심주의'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성장을 이룩한 만큼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익숙지 않은 문화들을 분별없이 접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문화 중심주의가 더욱 힘을 받게 되며 외부 충격에 더욱 배타적 태도를 갖게 되는 법입니다. 또한 불확실성에 대한 지수가 높은 나라답게 미래와 외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긴 역사 안에서 자문화에 속했던 부류라 하더라도 그 부류가 소수일 경우에는 마치 공동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여 집단 안에서 일정한 선을 긋게 됩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나 미혼모, 혼혈, 입양과 재혼가정 등 우리 사회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소수자들은 '커밍아웃'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부터 이미 존재해왔고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사람들이며 우리 주위에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집단주의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회를 결속시키고 공동체의 목표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줍니다. 하지만 개인의 의사와 인권에 대해 가벼이 여긴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 소수자에 대한 접근법을 바꿔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이 내 기준에 비추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독특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도움의 손길도 있어왔지만 그와 함께 비난, 마녀사냥, 따돌림 역시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언제 그 소수자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척이나 정죄가 아닌 이해와 관심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입니다.


세계 문화의 겉과 속 - 모든 문화에는 심리적 상흔과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2012)


태그:#다르다 틀리다, #헤이르트 호프스테더, #소수자,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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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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