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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아이큐!

아이큐만큼 미심쩍은 개념이 어디 있을까. 인간 가능성을 100이라고 가정하면, 거기서 겨우 0.1퍼센트의 영역을 어설프고 성긴 도구로 미심쩍게 측정해 놓고는 이 숫자가 인간 지능을 측정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군다. 아이큐가 인간의 가능성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아파트 안방 장롱 뒤 구석에 숨어 있는 벼룩 한 마리에 붙어있는 비듬 하나 크기만도 못하다.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경박하고 방정맞은 개념이기 때문에, "아이큐가 낮더라도 다른 능력으로 벌충하면 돼"란 수식도 필요 없다(당장 아이큐가 평균 수준인 수많은 과학자, 정치가, 연예인, 기타 등등 위인들이 떠오른다). 그냥 사뿐히 즈려밟고 무시해주면 된다.

<불가능을 이겨낸 아이들> 앞표지
 <불가능을 이겨낸 아이들> 앞표지
ⓒ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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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모두들 아이큐란 개념을 고이 모시며 숭배하는 세상에서, 이게 또 말처럼 쉽진 않다. 저자 스콧은 어렸을 때 학습지진아로 낙인 찍혔다. 이렇게 낙인찍히는 과정은 전 세계 여느 아이들과 같다. 아이가 몹시 산만하거나 지속적으로 긴 기간 동안 학습 성취도가 낮으면 부모는 몹시 걱정한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인근 심리 검사 센터나 학교 부속 기관으로 가 아이큐 검사를 한다.

아이큐가 높으면 다행이다. 이 아이는 똑똑하게 될 아이가 틀림없는데 아직 그 가능성을 발현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낮다면, 정말 큰일이다. 아이는 웬만큼 노력해도 보통 수준 이상의 성취를 이뤄내긴 힘들다. 아직 어린아이인 만큼 뒷바라지를 포기하진 않겠지만, 솔직히 말해 아이의 미래는, 거의 망했다.

스콧도 이런 과정을 거쳐 학습부진아란 타이틀을 얻었다. 초등교육 몇 년을 특수반에서 보냈다. 다행히도 저자의 부모는 비교적 아이의 미래에 열려있었고, 낮은 아이큐나 학습 성취를 가져다 대 스콧의 기를 꺾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천운으로 스콧의 재능을 알아보는 친절한 선생을 만난다.

어린 스콧은 직관적으로 아이큐나 기타 비슷한 지능 검사라는 틀로 자신의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는 걸 알아챈다. 스콧은 제 손으로 학습부진아란 타이틀을 던져 버린다. 물론 스콧은 운이 아주 좋은 경우다.

이제 열린 개념으로

이 책은 아이큐의 탄생 기원부터 성실히 흩으며 내려온다.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 건 아이큐라는 지능의 주류 이론의 탄생 과정과 그와 반대되는 지점에서 인간 지능을 정의하려는 시도들이다. 아이큐로 대변되는 인간 지능 개념은 지능이라는 살아있는 현상을 간단하게 추상화된 숫자로 변환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마다 고유한 특수성과 개별성은 깡그리 무시된다. 이 숫자들은 효용성이 좋다. 숫자만 보면 이 아이가 똑똑한지 멍청한지 바로 알 수 있고, 줄세우기도 쉽다.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세워진 줄을 바탕으로 정부와 교육 전문가들은 멍청한 정책들을 무작정 들이밀기도 가능하다. 단지, 숫자만 고려하면 된다.

다행히도 몇 몇 똑똑한 학자들과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큐 개념의 해괴함과 이상야릇함, 효용없음을 알아챈다. 이들은 학계의 주변부에서 인간 지능을 좀 더 인본적으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함하면서 다변화시키고, 동시에 포괄적으로 정의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러한 노력 자체는 가상하다. 확실히 대안 개념들은 기존 주류 아이큐 개념보다는 낫다. 하지만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인간 지능을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가 인간 가능성의 어떤 부분을 제외시키면서 개념화한다. 어떤 개념도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안을 수가 없다. 저자도 이 점을 인식했는지 저자가 정의하는 인간 지능의 결론은 "현재의 수준에서 더 나은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모든 능력"이다.

간명하고 멋지고 쿨한 정의지만, 개념이라곤 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 넓다. 이 결론은 그냥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할 의지와 노력, 혹은 경향성을 기술한 것과 같다. 저자의 이 정의로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탁월함을 가려내기가 힘들다. 인간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념보단 내러티브

결론의 미진함을 지적했지만 그 외에 이 책에서 흠잡을 부분은 없다. 지능의 역사를 꼼꼼하게 따라 내려오면서도 어느 하나의 이론의 도그마에 매몰되지 않고, 공평한 시점과 관심을 부여한다. 학습부진아에서 박사가 되기까지의 자기 이야기가 교차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다.

뱀발 하나. 저자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 자체가 저자가 내린 지능개념보다 인간 지능을 더 잘 정의한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숫자와 개념이란 매개를 거치지 않고 인간 자체에 대해 직접 다가가 '서술' 하는 것. 이게 개별적인 인간들이 고유한 지능을 제대로 정의할 수 있는 최선의 수가 아닐까. 그러니깐, 개념보다 내러티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 <불가능을 이겨낸 아이들> (스콧 배리 카우프만 / 정지인 옮김 / 책읽는수요일 펴냄 / 2014.11 / 2만5천원)



불가능을 이겨낸 아이들 - 아이들의 재능과 노력, 성취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스콧 배리 카우프만 지음, 정지인 옮김, 장유경 감수, 책읽는수요일(2014)


태그:#책, #심리, #재능, #천재,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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