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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ERS·중동호흡기 증후군) 사태가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만삭의 임신부도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메르스 공포'는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출산 예정인 임신부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중동호흡기증후군, 이른바 메르스(MERS). 이름도 생소한 이 전염병으로 난 13일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셀프 자가 격리' 중이다. 감기도 쉽게 걸리지 않는 건강한 몸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난 임신부이기 때문이다.

메르스 창궐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 중엔 나 같은 임신부들이 많을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메르스에 감염돼도 심한 몸살감기 정도로 지나갈 수 있다지만, 임신부는 제대로 약도 쓸 수 없는 몸. 메르스는 직접적인 치료제가 없어, 몸에 나타나는 증상을 치료하는 방식을 쓰는데 임신부는 치료 약물 투여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외에도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니 일반적으로 임신부가 메르스에 감염되면 다른 환자들보다 어려운 여건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방심하단 큰일을 치를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스스로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내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어느 때보다 모성이 강해졌다.

열흘 넘게 '셀프 격리'... 동탄 사는 친정엄마도 못 만나

이름도 생소한 이 전염병으로 난 13일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셀프 자가 격리' 중이다. 감기도 쉽게 걸리지 않는 건강한 몸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난 임신부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전염병으로 난 13일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셀프 자가 격리' 중이다. 감기도 쉽게 걸리지 않는 건강한 몸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난 임신부이기 때문이다.
ⓒ 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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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유난스러워 보였겠지만 메르스 초기부터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마스크를 하긴 했지만 만원 전철과 버스 등을 타고 다녀야 하는 출퇴근 길은 불편했다.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했기에 친구들과의 만남도 하나, 둘 미루게 됐다. 내심 별일 있겠나 싶었지만 임신부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회사의 배려로 지난 4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밖에서 일하는 다른 임신부들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 놓이게 됐지만 아파트 단지조차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이 열흘 넘게 이어지면서 세상과 단절돼가는 시간에 지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메르스 사태가 금방 진정돼 정상 출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경기 남부에서 시작된 메르스는 서울 남부까지 퍼지더니 급기야 전국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확진자가 늘었나, 줄었나', '어디까지 퍼졌나'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확진자 대부분이 '병원의 병실과 응급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감염됐다지만, 병원 밖 감염과 공기 감염 가능성도 솔솔 제기되는 상황이라 더욱 몸을 사리게 된다. 불안한 임신부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2주 전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임신부 요가 강좌는 메르스 때문에 휴강을 거듭했고, 환불하는 사람들도 많아져 결국 폐강 위기에 처했다.

미처 제대로 장을 보지 못하고 갑자기 재택근무를 시작한 탓에 집에 있던 식량은 하나둘씩 동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쌀과 김치밖에 남지 않았고, 지금은 남편이 퇴근길에 사다 준 소시지, 카레, 냉동 만두 등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

집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 친정어머니는 나를 찾고 싶어 하셨지만 그것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나의 친정은 동탄, 이미 메르스가 휩쓸고 간 지역이기 때문이다. 동탄 친정집에 살고 있는 중학생인 막내도 기약 없는 휴교가 시작되면서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 게다가 아버지, 어머니 모두 직간접적으로 의료보건과 관련된 일을 하시기 때문에 특히 더 조심하고 있다.

부모님, 고모 댁과 함께 하려던 조부모 산소 방문도 취소했다. 공교롭게도 고모는 삼성서울병원 근처에 살고 있고, 오로지 내가 임신부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모처럼 가족들과 같이 떠나려 했던 제주도 여행도 모두 취소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말로만 듣던 생이별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내가 진료받았던 날, 확진자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이름난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11일 오후 이 병원 산부인과에서 한 임신부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이름난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11일 오후 이 병원 산부인과에서 한 임신부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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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감염자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 동네는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9일 내가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인 이대 목동 병원 응급실에서 98번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 환자는 우리 집과 가까운 몇몇 병원을 경유했다. 동네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급기야 지난 11일에는 제발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던 임신부의 메르스 최종 양성 확진 소식이 전해졌다. 무척 안타까웠다. 보건당국과 삼성서울병원 측은 전담팀을 꾸려 총력을 다하고 있고, 환자(109번)의 상태가 아직까지는 양호하다고 알려졌지만 임신부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은 커졌다.

점점 커지는 불안 속에서 55세 남성인 메르스 확진 환자가 지난 3일 한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응급실을 거쳐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더욱 '멘붕'이었던 것은 그 병원이 내가 임신 후 계속 산부인과 진료를 받고 있는 강서 미즈메디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보다 앞선 2일에도 116번 확진 환자가 이 병원 1층 주사실에서 수액을 맞았다고 했다.

더구나 6월 3일은 나도 진료를 위해 해당 병원을 찾았던 날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고, 정말 거의 울뻔했다. 나는 출근 전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았다. 3일 저녁 응급실을 찾았던 환자와는 시간차가 있었지만 116번 환자의 2일 경유 사실을 알고 나니 불안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강서 미즈메디 병원은 예약 없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려면 2~3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많은 임신부들이 찾는 병원이다. 불안한 마음에 임신부들이 주로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봤다. 그곳은 이미 발칵 뒤집혀있었다.

나처럼 메르스 확진자들이 경유했던 기간에 병원에 다녀왔거나 당장 중요한 검진이 예정돼 있는 임신부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심지어 이런 임신부들이 병원을 옮기려고 하자 '미즈메디 임신부는 받지 않는다'라고 한 황당한 병원도 있었다고 한다.

미즈메디 병원에서 출산을 코앞에 둔 임신부들도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이 병원에서 출산을 할 경우에도 받아주기 어렵다는 산후조리원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런 논란이 커지자 해당 병원과 조리원 등이 입장을 바꿔 상황은 나아졌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졸지에 억울한 '민폐 환자'가 된 임신부들은 매우 곤혹스러웠다.

유난스럽다고? 내 몸을 지킬 건 나뿐

지난 9일 병원 보안요원이 메르스 확진환자로 판명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서관 로비에 마스크를 한 시민들이 앉아 있다.
▲ 병원 메르스 불안감에 마스크 착용 지난 9일 병원 보안요원이 메르스 확진환자로 판명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서관 로비에 마스크를 한 시민들이 앉아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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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즈메디 병원에서의 추가 감염은 확인된 바 없어 대체로 안정돼가는 분위기지만 최근 병원을 찾은 이들은 항상 북적이던 병원이 한산하다고 전한다. 나 또한 최악의 상황을 우려해 병원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다른 이들에겐 유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라는 정부의 잇따른 발표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사태는 좀처럼 진정 국면으로 들어갈 기미가 없다. 최근 연이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겪어오면서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생각 또한 확고해졌다. 더군다나 매일 뱃속에서 쿵쾅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주는 아이의 태동을 느끼니 유난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

임신부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더 이상의 큰 피해는 없길 바라며, 누구보다 어서 이 사태가 진정돼 집 밖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메르스, #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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