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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아래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국민의 국정 참여,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지난 1996년 제정돼 2년 뒤인 1998년부터 시행됐다.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호주, 스웨덴 등 다른 선진 국가들에 비해 늦은 출발이었지만, '공공정보 접근권'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비공개 대상 정보'를 규정한 정보공개법 제9조를 확대해석해 정보공개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법률에서 비밀이나 비공개로 규정된 정보(제1항 제1호),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제1항 제2호), 사생활의 비밀이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제1항 제6호), 경영상이나 영업상 비밀에 관한 정보(제1항 제7호) 등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청와대나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일수록 공개 거부가 많다. 그런데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국회조차도 '제1항 제2호'를 근거로 특수활동비의 사용내역 공개 등을 거부했다.

1994년부터 2014년까지 책정된 국회 특수활동비 예산 규모
 1994년부터 2014년까지 책정된 국회 특수활동비 예산 규모
ⓒ 국회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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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간 지급된 국회 특수활동비는 총 1305억 원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검찰 조사를 마치고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검찰 조사를 마치고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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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뜻하지 않게 국회 대책비와 상임위원장 직책비를 생활비와 아들 유학비로 썼다고 '고백'한 뒤 기자는 5월 12일부터 총 네 건의 정보공개를 국회에 청구했다.

여야 원내대표가 겸임하고 있는 국회 운영위원장 의정활동 지원비, 국회 각 상임위원장 직책보조비, 국회 특수활동비 규모와 사용내역 등이 주요 정보공개 청구 대상이었다. 여기에 의정활동 지원비나 직책보조비 지급 법적 근거, 사용내역, 사용내역 심사 여부, 사용 범위 제한 여부 등도 포함돼 있었다.

국회의원들의 '쌈짓돈'으로 전락했다는 국회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고, 그 사용내역이 제대로 심사되고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었다(관련기사 : 국회 특수활동비에 던지는 6가지 질문).

국회는 정보공개법 제11조(정보공개 여부의 결정) 제2항을 근거로 정보공개 여부 결정을 한 차례 연기했다. 제11조 제2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정보공개 청구일로부터 10일 안에 정보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한 차례에 한해 10일을 더 연장할 수 있다.

국회는 그 '부득이한 사유'가 무엇인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지난 4일과 12일 '부분공개'(제14조)를 결정해 기자에게 통보했다.

국회가 공개한 것은 국회 운영위원장에게 지급되는 의정활동 지원비와 위원회 운영지원비의 법적 근거, 지출내역 심사 법적 근거, 국회 각 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되는 직책보조비 법적 근거 등 '답변하기 쉬운 것들'뿐이었다. 의정활동 지원비나 직책보조비 등은 국회에서 의결된 '국회 세출예산'과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이라는 기획재정부의 지침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는 여기에다 각 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되어온 직급보조비 규모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각 상임위원장에게 월 145만 원, 지난 2003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는 월 165만 원의 직급보조비가 지급됐다. 이렇게 각 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된 직급보조비의 연도별 규모를 보면, 2001년 2억7840만 원, 2002년 2억9290만 원, 2003년~2007년 3억3600만 원, 2008년 3억3000만 원, 2009년~2014년 3억1680만 원이었다.

또한 국회는 지난 21년 동안 책정된 국회 특수활동비 예산 규모도 공개했다. '특수활동비'라는 비목(費目)이 생긴 지난 1994년부터 2014년까지 책정된 국회 특수활동비 예산은 총 1305억 원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평균 62억여 원의 특수활동비가 국회 예산으로 책정되어온 것이다. 지난 1994년 29억 원에 불과했던 국회 특수활동비는 1999년 42억 원을 거쳐 2005년 83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90억 원대를 유지하다 2011년부터 다시 80억 원대로 줄었다.

국회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특수활동비 사용내역 공개를 거부했다.
 국회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특수활동비 사용내역 공개를 거부했다.
ⓒ 국회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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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활동 지원비-직책보조비 사용내역 등은 공개불가 

하지만 국회는 기자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내역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정보의 공개를 거부했다. 국회가 '공개 불가'로 지적한 목록에는 ▲ 국회 운영위원장에게 지급되는 의정활동 지원비와 위원회 운영지원비의 연도별, 위원장별 내역과 지출내역 ▲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지급된 국회 각 상임위원장 직책보조비 규모 ▲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지급된 국회 각 상임위원장 직책보조비 규모와 사용내역 심사여부, 사용범위 제한 여부 ▲ 직급보조비 외 국회 각 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되는 자금 내역과 규모 ▲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책정된 국회 특수활동비 사용내역이 포함돼 있다.

국회는 이 목록들을 공개할 수 없다는 법적 근거로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의 제2호와 제5호를 들었다. 제2호는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이고, 제5호는 '감사·감독·검사·시험·규제·입찰계약·기술개발·인사관리에 관한 사항이나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다.

전례가 있던 터라 제2호를 법적 근거로 제시한 점은 좀 이해됐다. 실제로 국회는 국회 특수활동비 사용내역 공개 불가 사유로 "특수활동비 세부 지출내역이 공개될 경우 국회 본연의 의정활동이 위축되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거나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런데 '제5호'를 법적 근거로 제시한 점은 의문이다. 제5호에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이라는 대목이 있는 점이 그 의문을 풀 실마리다. 조만간 시작하는 국회 결산과 예산 심사 과정에서 특수활동비 폐지나 삭감 등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 이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특수활동비 사용내역 등 논란을 일으킬 만한 민감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국회는 지난 1999년 참여연대가 청구한 국회 특수활동비 지출내역 정보공개도 거부한 바 있다. 이는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소송'(2000년 9월)으로까지 번졌는데, 당시 국회는 법정에서 "국회의원 또는 관련 위원회가 행하는 고도의 정치행위의 특성상 특수활동비의 수령자만 밝혀져도 국회의원 또는 관련 위원회의 기밀행위가 노출되고 국회 기능 수행에 중대한 장애를 가져온다"라며 "기밀성과 보안성이 극도로 요구되기 때문에 공개가 금지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1심, 2003년 7월)부터 대법원(2004년 10월)까지 특수활동비 전체 금액뿐만 아니라 지출승인일자, 지출금액, 지급방법, 예산수령자 등은 공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것들이 공개되더라도 국회가 수행하는 국가의 중요한 기밀사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국민의 알 권리와 국민의 국정 참여,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를 비공개 정보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한 마디로 국회 특수활동비 사용내역은 정보공개법에 따른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전가의 보도처럼 또다시 국회 특수활동비 사용내역 등의 공개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친다"라고 주장한다. 마치 국회 특수활동비를 국가 기밀사항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국회 상임위원장들의 생활비나 아들 유학비로 쓰이는 국회 특수활동비가 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국가기밀'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회에 국민의 알 권리는 법조문에 불과?

국회의 공개 불가를 접하면서 기자는 두 언론인의 언명을 떠올렸다. 대중의 알 권리와 정부의 비밀주의 사이의 갈등을 탐구했던 정치 칼럼니스트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과 AP통신에 근무했던 언론인 켄트 쿠퍼(Kent Cooper)다. 월터프리먼은 "대중의 알 권리는 국민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라고 일갈했고, 켄트 쿠퍼는 "국민의 알 권리가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등을 내걸고 정보공개법을 시행한 지 17년이 흐른 2015년, 대한민국의 국회에 '국민의 알 권리'는 정보공개법에 적힌 법조문에 불과한 것일까?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국회, #특수활동비, #정보공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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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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