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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판에 관한 책은 1478년 이탈리아 트레비조에서 처음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주판에 관한 책은 1478년 이탈리아 트레비조에서 처음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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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했다. 이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을까? 고리대금업은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인용하며, "돈은 돈을 낳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고리대금업은 돈을 합방시켜서 이자라 불리는 끔찍한 자식을 낳게 한다. - <돈의 발명> 226쪽

얼떨결에 불법으로 운용되고 있는 사채를 썼다 엄청난 고리에 시달리는 사람들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돈은 악마의 배설물 정도가 아니라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악마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대 생활에서 돈은 성공과 실패, 출세와 낙오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돈으로 흥하는 사람도 있지만 돈 때문에 망하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지만 챙겨서는 안 될 돈을 챙긴 게 탈날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우는 사람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돈 하면 은행, 대부, 이자, 고리, 환어음, 예금, 도산, 담보대출, 환전, 주판, 복식부기, 투자, 금융위기, 화폐 위조… 등이 연상됩니다.

유럽 금융의 역사 <돈의 발명>

<돈의 발명> (지은이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 옮긴이 김희정 / 펴낸곳 책세상 / 2015년 6월 10일 / 값 2만 2000원)
 <돈의 발명> (지은이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 옮긴이 김희정 / 펴낸곳 책세상 / 2015년 6월 10일 / 값 2만 2000원)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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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발명>(지은이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옮긴이 김희정, 펴낸곳 책세상)은 유럽에서 돈이 출현하게 된 배경, 돈에서 파생된 문화, 돈이 발전해온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돈이 태고부터 있었던 건 아닙니다. 중세 시대에는 돈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물물교환이면 충분했습니다. 중세 유럽만 그랬던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물물교환이 있었던 걸 필자도 경험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필자가 어렸을 때 아이스께끼나 엿을 사먹던 방법이 다름 아닌 물물교환이었습니다.

어려서 시골에 살았습니다. 이맘쯤이면 동네골목까지 아이스께끼(얼음과자) 장사도 오고 엿장수도 왔습니다. 지금이야 그런 장사도 없고, 설사 그런 장사가 온다 해도 현금이 아니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1960년대)만 해도 꼭지 떨어진 마늘 몇 개, 부러진 놋쇠숟가락, 떨어진 고무신짝 등을 들고 가면 아이스께끼나 엿과 바꿔 줘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피자, 만돌린, 스파게티!" 이탈리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세에도 이탈리아 사람을 가리키는 유행어가 있었다. "추잡한 고리대금업자, 롬바르도!" 이 말은 이탈리아인들이 비천한 직업에 종사하며 타향에서 당한 온갖 역경을 대변한다. - <돈의 발명> 287쪽

성직자와 귀족 그리고 백성만 있던 시대에는 물물교환으로 충분했지만 또 다른 계층의 사람들,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출현하면서 필요에 따라 '모네타moneta'가 재등장합니다. 모네타는 로마인들이 사용했으나 기억에서 없어진 물건으로 로마인들이 유노 모네타라는 신전에서 주조한 금화를 부르던 이름 입니다.

책에서는 돈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돈이 역사에 미친 영향, 돈을 운용하기 위해 도입된 여러 가지 제도와 발달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돈에 깃들어 있는 역사는 진화이자 기생입니다. 돈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마약이 되기도 하지만 인성과 사랑까지도 집어 삼키는 요물이기도 합니다.

특수한 화물보험, 노예 보험

돈은 스스로 변모하며 제도를 만들고 규모를 창출해 냈습니다. 대부 업이 등장하고, 이자가 생기고, 은행이 등장하고, 예금과 대출이 생기고, 보험이 생겨나고, 담보가 요구되고 파산이 나고…

특수한 화물 보험에는 배에 실은 노예에 대한 보험이 있었다. 노예 매매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누구도 기독교 교리에서 금하는 인신매매를 흔쾌히 인정하지는 않았겠지만, 노예 거래는 수익성이 높았기에 왕성하게 이뤄졌고, 그에 관한 문서 기록도 찾을 수 있다. - <돈의 발명> 185쪽

동서고금을 통해 돈에 대한 경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돈을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한 경고도 읽을 수 있지만, "은행과 국가는 너무 밀접한 관계일 때 같이 망한다"는 좀 더 큰 규모의 경고도 있었습니다.

발명 이래 돈이 발달해온 여정은 화폐기술과 금융업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온 발전사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시대적 가치와 문화 발달사, 역사와 전쟁사까지를 아우르고 있는 복잡 미묘한 흐름입니다.  

돈의 발달사에 얽힌 다양한 일화와 역사적 사실들을 새기다 보면, 돈은 역시 악마의 배설물이고, 경계해야 할 요물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돈의 발명>에서 새길 수 있는 건, 이탈리아에서 돈이 발전해 온 역사, 역사가 낳은 파생적 흐름만이 아니라 돈에 흔들릴 수 있는 마음까지도 잡아줄 수 있는 경계의 내용이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돈의 발명> (지은이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 옮긴이 김희정 / 펴낸곳 책세상 / 2015년 6월 10일 / 값 2만 2000원)



돈의 발명 - 유럽의 금고 이탈리아, 금융의 역사를 쓰다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김희정 옮김, 책세상(2015)


태그:#돈의 발명, #김희정,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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