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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가 있던 자리
 연호가 있던 자리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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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고양이' 연호를 기억하시나요?(관련 기사 : 개 같은 고양이, 내 집에 산다)

한 달여 전 불쑥 나타나 내 집 마루까지 성큼 들어왔던, 하룻밤 정을 나눈 뒤로 고양이 체면도 벗어던지고 온몸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던, 얕은 인정이 되레 상처가 될까 봐 애써 밖으로 밀어내면 밤새 창문 아래 골목에서 목놓아 울어댔던 바로 그 고양이 연호.

그 녀석이 이제 없다.

처음 만난 우리 집 앞 계단에도, 마치 '나한테 이러지 마' '제발 같이 살아'라고 하듯 창문을 올려다보며 울던 길가 화단 앞에도, 개처럼 졸졸 따라서 걸었던 마트로 이어진 계단에도, 나를 기다리다 한 행인에 봉변을 당할 뻔한 그 마트 앞 벤치 주변에도…. 더 이상 녀석은 나타나지 않는다.

연호의 가족을 찾습니다

<TV동물농장> 촬영팀
 <TV동물농장> 촬영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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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노란색 털에 목소리가 아기 호랑이 같아 붙인 이름 '연호'. 녀석은 정말이지 무척 사랑스러웠다. 귀엽고 영리한 데다 여느 고양이와 달리 사람 품을 그리는 모습에 몇 번씩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냉정해져야 했다.    

이미 고양이 여섯 식구가 있고, 현재 재정 상황이나 생활 공간의 특성상 내가 연호의 가족이 되는 건 부적절했다. 하지만 녀석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사랑을 줄 가족의 존재는 절실해 보였고, 나는 그 인연을 꼭 찾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인터넷에 글을 쓰고, 서툰 그림을 그리고, 동물보호단체 SNS에 연호의 사연도 올렸다. 글은 한 매체의 톱 기사가 돼 100여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고, 그 글을 본 SBS <TV동물농장> 작가로부터 연락이 와서 피디까지 만나기도 했다. 예상외의 다채롭고 발 빠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너무 예쁘다' '불쌍하다' '직접 키워라' 등의 반응이었다. 반나절 이상 촬영한 <TV동물농장> 피디와는 "방송은 최후의 보루"로 두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합의했다. 그러던 중 진정성 느껴지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고, 무엇보다 1년 전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 잘 키우고 있다고 했다. 원래 고양이란 동물에 편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양이 바보'가 돼가고 있다고도. 그렇게 대략적으로 소개를 주고받은 뒤 일주일 뒤 삼자대면을 약속했다.

연호에게 가족이 생겼어요

연호, 가족을 만나다
 연호, 가족을 만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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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연호는 이제 없다. 정확히는 내 옆에 없다. 왜냐하면 이제 연호도 제집과 가족이 있으니까! 일주일 후 만난 입양 희망자와 연호는 첫 만남에 서로를 알아본 듯했다. 조금 전까지도 내게 찰싹 붙어 애처로움을 자아냈던 녀석이 어느새 낯선 이에 몸을 맡기고 눈을 맞췄으니.

물론 입양이 된다고 곧바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실제로 동물을 데려가 방치하거나 학대·도살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평생 사랑'을 다짐하지만 수 년 후 "어쩔 수 없어서"라는 말 한 마디로 동물을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호를 보내기 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입양 후에도 계속해서 연호의 안부를 전해줄 것과 행여나 만약에 녀석과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반드시 내게 다시 데려다주기로. 물론 마음 속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이 평생 행복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연호의 근황

입양자는 약속 대로 집에 도착한 날부터 10여 일이 지난 현재까지 연호의 적응 상황을 문자와 사진 메시지로 알려주고 있다. 첫날 링고란 이름의 먼저 살던 고양이가 연호에게 매섭게 텃세를 부렸는데 상황은 금세 역전돼 지금은 링고가 연호를 따라 다니며 호감을 표한다고.

입양자는 동영상도 보내줬다. 역시 붙임성 좋기로 둘째라면 서러울 녀석이다. 노래 가르치는 일이 직업인 입양자의 집에서 학생의 무릎과 건반 위를 유유히 오가는 연호를 보며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행여 노래라도 따라 부르면 그땐 정말 SBS <TV동물농장> 팀을 다시 불러야겠다. 

집 앞을 오갈 때 연호의 빈자리가 느껴지곤 한다. 그럴 때면 녀석의 모습, 목소리가 눈 앞에, 귓가에 아른거린다. 허전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은 크디큰 행복이란 강 위에 작은 잎사귀 하나와 같다. 그리고 속으로 연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연호야, 찾아와줘서 너무 반갑고 고마웠어. 앞으로는 더 많이 행복해야 해."

▲ 고양이 연호가 사는 집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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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동물 가족,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그리고 평생 함께해주세요.



태그:#길고양이, #개냥이, #사지마세요입양하세요, #보컬코치,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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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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