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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두장의 사진은 눈에 보이는 인간이 만든 재해에 증거이고 사진 아래는 카트만두 왕궁광장에 오래된 집이 무너진 잔해다.
▲ 네팔대지진 자연재해인가? 인재인가? 사진 위 두장의 사진은 눈에 보이는 인간이 만든 재해에 증거이고 사진 아래는 카트만두 왕궁광장에 오래된 집이 무너진 잔해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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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이번 대지진으로 큰 외상을 입었다. 나는 카트만두가 풍비박산이 난 것으로 알고 있었고, 네팔 지진피해지역 전체 역시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일주일을 지나고 살펴보니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호들갑스러웠던 언론의 '오보'나 다름없는 사태였다. 마치 네팔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카트만두는 사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을 조장한 것만 같았다.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면, 네팔 대지진은 자연재해라기보다 거의 인재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선 대부분의 피해 내용은 오래된 고택이었다. 카트만두 시내나 도시지역의 피해 내용을 따져보아도, 부실공사나 사후 관리부실로 인한 붕괴가 대부분이었다.

오래된 유네스코 문화유산들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진 것이었다. 우리네처럼 매년 정기적인 개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유적들은 애당초 지키기 어려운 조건에 있었다. 이번에 다시 건축된다 하더라도, 네팔정부나 유네스코가 정기적인 안전점검과 꾸준한 개·보수를 실시하지 않는다면 모래성 쌓기나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네팔 사람 일반이 동의하는 일이며 많은 사람들이 나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의견과 일치한다.

상처 입은 시인, 예전의 미소를 되찾아가다

카트만두 외곽에 살고 있는 결혼이주여성가족을 찾아서 만났다. 가는 길에 붕괴된 주택과 빌딩이 보였다. 공기 맑은 산마을이었다.
▲ 카트만두 외곽 결혼이주여성가족을 찾아서 카트만두 외곽에 살고 있는 결혼이주여성가족을 찾아서 만났다. 가는 길에 붕괴된 주택과 빌딩이 보였다. 공기 맑은 산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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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네팔에 온 지 2주일이 다 되어 오래된 지인들과 가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먼저 쁘라딥 범전씨를 네팔 정부청사 뒤편에 그의 사무실에 찾아가 짧은 만남을 가졌다. 그는 실의에 빠진 지진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텐트촌을 찾아 노래를 불러주었던 가수였다. 그의 사무실 내부에도 금이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네팔의 많은 건물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난 상처처럼 이런 저런 흔적을 안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외부에서는 멀쩡한 산간마을의 초가들이, 내부에 들어가 보면 금이 가있는 것처럼 빌딩 안에서도 그런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짧은 인사를 건넨 후, 지인이 지진피해자들에게 전해주라던 남성용 바지를 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곧 시인 먼줄 형님을 찾아갔다. 한동안 대인기피증과 같은 불편을 겪던 시인은, 오늘은 매우 밝게 만나자고 하여 발걸음이 즐거웠다. 이제 3년이 다 되어간다. 나와 그의 발걸음이 음악처럼 경쾌한 느낌을 갖던 어느 날이었다. 네팔거리에서 보게 된 그를 아는 체하지도 않고 뒷걸음만 따라 걸었던 기억도 있다.

툭툭(Tuktuk)이라고도 템포라고도 하는 작은 삼륜차를 타고 공항을 지났다. 그리고 걸어서 그의 집을 찾아갔다. 자주 찾았던 곳이지만 오랜만에 발걸음이라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막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를 끌어안았다. 아내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곧 집안으로 들어갔다.

정신적으로 불편한 일로 고통을 겪으며 실어증과 대인기피증을 겪던 시인이다. 아내와 서로 자신이 쓴 책을 싸인해서 교환하였다.
▲ 네팔 시인 먼줄을 만나다. 정신적으로 불편한 일로 고통을 겪으며 실어증과 대인기피증을 겪던 시인이다. 아내와 서로 자신이 쓴 책을 싸인해서 교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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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지진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공연을 해서 힘을 북돋워주던 가수 쁘라딥 범전을 만났다. 사진 위와 아래 왼쪽이다. 아래 왼쪽 사진 위를 바라보면 귀퉁이에 작은 실선처럼 보이는 것이 금이 간 모습이다.
▲ 네팔인 가수 쁘라딥 범전을 만나다. 네팔 지진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공연을 해서 힘을 북돋워주던 가수 쁘라딥 범전을 만났다. 사진 위와 아래 왼쪽이다. 아래 왼쪽 사진 위를 바라보면 귀퉁이에 작은 실선처럼 보이는 것이 금이 간 모습이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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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의 재회다. 그가 몸이 불편한 것은 병이 들어서도 아니고, 크게 다쳤기 때문도 아니다. 마음의 병이 깊다. 나는 지난 2007년 만해문학축전에 네팔문학심포지엄을 치른 후, 그를 안내한 적이 있다. 여행 중 시인 이대의님 집에서 어린 날 동무들처럼 한 방에서 떠들고 어울리다 잠을 잔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며 낯선 이방의 시인들 앞에 누운 채 눈물을 흘렸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러나 누구에게도 마음 놓고 털어놓지 못한 상처였다. 이방의 시인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그는 상처를 매우 의미심장하게 간직하던 사람이다. 그 사연이 그에게는 대인기피증을 불러온 요인이었다. 그래서 원망하지 않았다.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안타깝기만 했다. 이제 만나게 되었다. 다행이다.

먼줄 시인은 우리 부부와의 만남에서 매우 밝고 활기찬 이전 모습이 연상될 정도의 상태였다. 아내와 내게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는 그를 대하며, 다시 예전의 시인, 가수 먼줄의 활기찬 통기타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그는 젊은 시절 네팔전역을 돌며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던 멋진 청년이었고, 네팔의 젊은 작가들에게도 존중받는 시인이다.

아내는 자신이 쓴 한국여행기를 전하였고 우리 부부의 근황을 소개했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고마운 일이다. 할 일이 많은 우리 부부는 곧 다음 약속장소를 찾아갔다.

인연을 만드는 인연

이번에 만날 사람은 결혼이주민여성의 오빠가족을 찾아가는 일이다. 한국에서 만나 알게 된, 신탄진 지역에 사는 네팔인이 자신의 오빠네 집에 안부를 청해서 가는 것이다. 도중에 전화를 걸어 벌써 손님을 맞으러 길 중간까지 나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어렵게 통화를 시도해서 길 위에서 만났다. 얼굴이 검게 탄 중년 남성이다.

그는 택시를 잡고 택시에 오르라고 했다. 흙먼지가 호흡기와 눈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처럼 불편한 거리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나자 맑은 산 공기가 느껴졌다. 카트만두 북부외곽이었다. 멀리 산 아래 마을이 보인다. 물론 산 위에도 듬성듬성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무너진 가옥들이 눈에 띤다. 대부분은 오래된 건물인데, 유독 눈에 띠는 큰 빌딩 하나가 철거 중이었다. 이번 지진으로 크게 흔들려 군데군데 금이 갔단다.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판단으로 철거 중이라는 설명이다. 다행히 결혼이주여성 가족네는 피해가 전혀 없었다.

모두가 참으로 맑다는 말이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다. 전통음식과 술을 마시며 인사를 나누었고 안부를 전했다.
▲ 산 마을에서 만난 결혼이주여성가족 모두가 참으로 맑다는 말이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다. 전통음식과 술을 마시며 인사를 나누었고 안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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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완전한 산골마을로 접어들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외곽으로 30분 정도 택시를 타고 빠져나왔다. 논과 밭이 있고, 돼지를 키우는 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여전히 카트만두다. 조금 비탈진 길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곧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멀리서 온 손님 챙기느라 바쁜 가족들과 편안한 대화를 이어간다. 명절 때나 만들어 먹는, 쌀로 만든 로띠(링도너스 모양)와 네팔전통주 럭시를 잔에 따르고 다시 첫인사를 나눈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15년이 된 여동생을 대신해 찾아준 우리 부부를 동생처럼 반겨준다. 물론 동생네도 3년여 전에 다녀갔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그 만남의 인연으로 다시 인연이 된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처럼 이어지는 사람의 삶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낸다. 루브라는 마을에 어둠이 내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두 잔 마신 술에 취기가 돌 때쯤이다. 남새밭에서 딴 오이 몇 개와 쌀 로띠를 싸서 손에 쥐어준다. 첫 대면인 타국 사람이지만, 내 고향 마을에 고모나 이모 혹은 형제자매와 무엇이 다른가? 더없이 귀한 오이와 쌀 로띠를 들고 비 내리는 산 마을길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매우 바쁜 하루가 또 지났다.


태그:#자연재해와 인간의 재해, #팔 가수 쁘라딥 범전, #네팔시인 먼줄, #결혼이주민여성가족, #네팔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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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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