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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11일 토요일에 북한산 비봉을 등산하고 왔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어울림 산악회'의 일원으로 자원봉사자분들의 도움을 받아 다녀온 것이지요. 이제 등산 새내기 초보로서, 참 힘들고 버거운 산행이었지만 그만큼 보람있고, 고귀한 경험이었기에, 여러분과 공유하려 합니다. - 기자 말

북한산 산행에서...
 북한산 산행에서...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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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지속되는 불볕 더위와 가뭄으로 온 누리가 쩍쩍 갈라져있다. 내 가슴도 오늘 산행에 대한 불안과 왠지 모를 근심으로 속속 타들어간다. 오전 9시 40분까지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플랫폼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서둘러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일찍 왔다 생각했는데, 약속 장소엔 어울림 선배님들이 벌써 여러분 나와 계신다.

"안녕하세요?"
"예, 어서 와요....."

반가운 수인사들이 정답게 오고 간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산신령님(내가 붙여준 나만의 별명)의 인사가 내 오금을 바짝 저려오게 한다. 다음 카페에서 '사랑이 머무는 어울림 산악회'의 일원으로 우리는 만났기에, 본명이 아닌 카페 닉네임(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고 맞이하는 것이다. 내 배낭의 앞가슴 끈이 느슨하게 늘어졌나보다. 팽팽하게 당겨주시는 손길이 오늘 등산의 빡빡한 일정을 준비시키는 듯싶어 더욱 온몸이 긴장돼 온다. "안녕하세요?" 낯선 목소리가 다시 나를 반긴다.

"예 안녕하세요?"
"오늘 노을진바다님의 산행 가이드를 맡은 나그네입니다."

잠시 느슨했던 몸가짐을 바로 하고 차렷 자세로 나그네님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산행이 어렵다는 소리가 들려 걱정이 많이 되는데, 어떨까요?"
"겁먹지마요.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하지 뭐....."

너그럽게 지어주시는 미소가 잠시 불안하던 내 가슴을 안정시켜준다.

"자 이제 출발합시다."

일행들과 보조를 맞춰 역사를 나선다. 몇 걸음 앞으로 나가려니, 하나은행 앞이다. 오늘 우리의 산행을 도와주실 '힐링산악회'의 여러 회원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풀내음 대장님은 바쁘게 오늘 산행할 시각장애인 회원 수와 도와줄 자원봉사자 수를 파악해 짝짓기에 나서신다.

잠시 후, 인원 파악이 마감되고 조를 맞춘 우리 일행들은 도착한 시내버스에 몸을 싣고 오늘의 산행 출발지인 진관사 앞으로 향해간다. 진관사 앞으로 가는 길엔 새로 지은 한옥 주택들을 분양하느라 복잡하다. 드디어 오늘의 산행 출발지인 진관사 앞에 도착해, 각자 반가운 인삿말들을 나눈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인사하시는 말씀들이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우니만큼 산에 올라가면서 산행 코스를 제가 조절할 겁니다. 너무 걱정들 마시고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 하세요."

풀내음 대장님의 여유있는 인삿말과는 달리 한 걸음 내딛는 내 온몸은 벌써 흘러내리는 비지땀으로 흥건하다.

"자, 겁먹지 말고 내 배낭 끈을 잡고 잘 따라와요. 아내분은 다른 일행을 따라 가시고 오늘은 노을진바다님만 저를 따라 오세요."
"그래도 남편 걸음이 불안해 휘청일 때면 제가 뒤에서 잡아주어야 하는데요."

아내의 항의성 사정에도 확고부동한 나그네님의 처분엔 조금의 사정이 없다.

"그건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아내분은 저쪽 회원들을 따라가세요."

워낙 강경한 지시에 아내도 할 수 없이 무거운 발길을 옮겨 다른 일행을 따라간다. 불안스럽던 마음이 더욱 무거운 천근 무게로 내 발길을 짓눌러온다.

"자 이제부터는 바윗길입니다. 나를 잘 따라와야 돼요."
"예 잘 알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온몸은 불안한 근심으로 벌써 휘청거린다.

"내 몸동작을 잘 느껴보세요. 그리고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잘 캐치해내시고요."
"예...."

모기만하게 작아진 내 소리가 가슴을 더욱 강한 두려움으로 옥죄어온다.

"자 이제부터 바윗길을 올라가니 다리에 힘 바짝 주시고요....."

미끌어 떨어질 것같은 불안감을 누르고 나그네님의 보조를 맞춰 발길을 앞으로 내딛어본다. 그러나, 여유있게 앞서시는 나그네님과는 달리 내 발길은 바위 틈에 끼고 돌뿌리에 차이며 접질리고 튕겨지기가 일수다.

"나그네님 잠시만요..."
"예? 왜요?"
"발이 접질린 듯해서요."

겁먹어 작아지는 내 소리에 나그네님의 큰 음성이 산길을 가른다.

"많이 다쳤어요? 못 걸을 것 같아요?"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그럼 참고 걸어요. 산에서 접질리고 넘어지는 건 다반사니까, 그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쓰면 등산 못해요."
"예..."

다시 내 음성이 무기력하게 잦아든다.

"또 바윗길입니다. 미끌어지면 안 되니 배낭끈을 꼭 잡고 잘 따라오세요. 힘들면 배낭끈을 당기세요."
"전에 위험한 곳에선 배낭끈을 놓으라고 하시던데..."
"아 그건 염려하지말고 나는 튼튼하니 염려 없어요. 나만 믿고 당기세요."
"예 잘 알겠습니다."

비탈진길 오르는데 끊어진 끈, 나는 바위 아래로...

그렇게 잠시 얼마를 더 올라가다, 비탈진 바윗길에서 미끌어지려는 발길에 나도 모르는 힘을 주어 배낭끈을 잡고 매달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너무 힘껏 매달려서일 게다. 배낭끈이 '뚝' 하고 끊어지더니 내 몸이 바위 아래로 넘어져내린다. 깜짝 놀란 나그네님이 뒤로 돌아 내려오신다.

"어디 안 다쳤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끈이 끊어진 듯한데 어떡하지요?"
"그러게요... 이게 왜 끊어지지?"
"그럼 제가 갖고 있는 끈을 드릴까요?"
"그게 아니라 끈을 묶은 제 배낭걸이가 끊어졌네요....."
"어떻게한다....."

잠시 서서 고민하시던 나그네님이 어떻게 끈을 다시 묶으셨는지 뒤돌아서 다시 내게 끈을 잡으란다. 정말 힘든 고역의 연속이다. 다행히도 릿지화로 갈아신은 내 발길이 바위에 미끌어지지않고 쩍쩍 붙어 올라가는 것이 자못 신기하기만하다.

"나그네님 잠시 쉬어가지요."
"우리가 얼마나 올라온 것 같아요?"
"글쎄요..."
"이제 한 50미터나 올라왔을까요? 그렇게 자주 쉬다 오늘 아예 등산 못해요... 자 힘내서 올라가봅시다."
"나그네님 너무 힘들고 떨어질까 두려워요....."
"겁먹지 말라니까요... 그런 약한 마음으로 어떻게 지금껏 살아왔어요? 자 힘내서 저를 따라하세요."
"도전" "도전"
"간다." "간다."
"하나" "하나" "둘" "둘"

한 발 한 발 다리에 힘을 주며 열심히 따라가보려하지만, 온몸엔 계속 흐르는 땀으로 목욕한 듯하다.

"나그네님 정말 더 이상 못 가겠어요..... 잠시만 쉬어가요....."
"예 그럼 잠시만 쉬어갑시다."
"뒤로 돌아 바위 위에 앉으세요."

넓적한 바위 위에 앉아 두 발을 뻗고 가지고간 물로 목을 축인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거친 숨결을 큰 숨으로 다스려본다. 거칠게 내쉬는 숨결이 다스려지지 않자, 나그네님이 큰 숨 쉬기를 주문한다.

"크게 숨 내쉬고 들여마셔 보세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네요."
"뭐든지 안 된다 하지 말고 노력해보세요."
"예..."
"노을진바다님, 어울림산악회의 다른 기성 회원님들은 노을진바다님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이지만 참 저도 놀랄 정도로 등산을 잘 하세요. 회장님이나 산노을님 같으신 분들은 제가 안내말을 안 해드려도 제 몸짓만 보고 다들 잘 따라하세요. 제 배낭에 손을 얹기만하고도 제 몸짓을 거의 100% 다 감지를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일이 주변 상황을 말씀드리기보다 제가 움직이면 그대로 따라 하십니다."
"그래요? 저는 언제쯤이나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만 말고, 겁도 먹지 말고 열심히 산행에 빠지지 않고 나오시노라면 아마 머지 않아 그렇게 되실 겁니다. 염려 마세요."

잠시 그렇게 쉬다 일어서려니 나그네님이 풀썩 웃으며 말한다.

"저기 부인이 오시네요. 영 불안해서 못 믿겠나봐요."
"예? 정말요?"

아내가 다가온다는 말에 축 처진 어깨가 잠시 솟아오른다.

"여보 그 험한 바윗길을 어떻게 올라왔어?"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내가 말한다.

"잘 올라왔지? 당신 남편 한다면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게..."

내 이런 허튼 소리는 몇 발짝 못 가, 허풍으로 들통나고 만다.

"자 여기서는 로프를 잡고 바위 위에 두 발로 버티고 서서 오르는 겁니다. 절대 겁먹지 말고 잘 따라오세요."

만져보기만 해도 바로 기가 질리고마는 가파른 급경사의 바윗길이다. 먼저 바위 위로 성큼 올라서시는 나그네님이 두렵다 못해 경외스럽다. 나도 로프를 두 손으로 힘껏 잡아보지만, 발을 올려놓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러자 보다 못한 아내가 뒤에서 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며 용기를 북돋운다.

"여보 당신은 잘할 수 있어 지금껏 이 험한 길도 잘 올라왔잖아."
"그건 나그네님이 끌고 오신 거지....."

잠시 전의 허풍이 후회스럽다. 그러나, 뒤로 이어지는 등산 인파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만은 없기에 죽을 힘을 다해 로프를 잡고 바위에 두 다리를 버티고 올라서며 걸음을 옮겨가본다. 5미터 남짓의 거리가 왜 그리도 멀고 아득한지... 이승과 저승을 갈으는 머나먼 길인듯하다. 나그네님의 억센 손길이 잠시 머뭇대는 내 손을 잡아 끓어올린다.

"우... 말로만 듣던 바위 산행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거네요."
"그렇지요. 지금 우리는 북한산 바윗길을 올라가고 있는 거예요."

"나그네님, 저 눈물이 나요"... 등산하다 흘린 눈물

산행 중 꿀맛같은 휴식.
 산행 중 꿀맛같은 휴식.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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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꿀같은 점심 시간이 허락된다. 넓은 바위 위에 먼저 벌러덩 두러누워 하늘을 우러른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즐긴 후, 아내가 마련해간 점심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내 살아온 얘기와 아픈 얘기들을 하노라니 내 설움에 내 가슴이 울컥하고 만다. 그러나, 마냥 먹고 쉴 수만은 없는 것. 나그네님의 단호한 지시가 내 발길을 일으켜 세운다.

"자 다시 올라갑시다."

점심을 먹고 나서 힘을 얻어서일까 다리에 힘이 솟고 목청에도 힘이 들어간다.

"도전, 간다....."

그러나, 그도 잠시 다시 다리가 헛돌고 발길이 꼬여든다.

"나그네님 우리 잠시 쉬어가요..."
"그러다 오늘 이 산행 다 못하고 저물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 비봉에서 맛있는 휴식을 즐기세요."
"나그네님 저 눈물이 나요. 그리고 울음이 북받치네요. 엉엉."
"그렇게 나약하게 굴지말고 단단히 마음 먹고 힘을 내요 내?"
"예. 엉엉."
"거 울지말라니까요."
"예 안 울어요. 엉엉."

이제 우리의 목적지 비봉이다. 먼저 간 '어울림산악회' 본진들은 모두 하산길에 올랐단다. 오늘 일기가 너무 덥고 습해 단원들의 건강을 고려한 풀내음 대장님의 결단으로 생각보다 일찍이 하산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다시 아내가 준비해온 수박으로 갈증을 달래고 내 생 처음으로 맞이하는 비봉에서의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느끼며 두 팔을 벌리고 가슴을 활짝 펴본다.

다시 눈물의 회상에 젖어 옛일을 반추하려니, 나그네님의 단호한 외침이 나를 다시 불러 일으킨다.

"자 다시 또 내려가봅시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바위 틈에 발길이 엉겨 넘어지고, 미끌어져 엉덩이와 대퇴가 뾰족한 바위날에 부딪힌다. 그리고 또 전경골이 날카로운 바위날에 부딛혀 기어코 피를 내고만다. 깜짝 놀라 돌아보는 나그네님 눈길에 내 다리의 핏물이 비쳤나보다.

"왜 그래요? 다쳤어요?"
"예 조금..."

급히 길 옆 바위 위에 앉히고 바지를 거두어 살펴보는 눈길이 한 없는 안쓰러움에 젖어든다.

"많이 아파요?"
"아니요. 저는 흐르는 피가 걱정되는 게 아니라, 이 꿀맛 같은 휴식이 더 좋은 걸요."
"에이그... 조심하시지..."

안타까움으로 물기 젖은 나그네님의 사랑이 뭉클하게 가슴으로 젖어온다. 우리가 가지고 간 반창고가 없어, 뒤 따라오시는 다른 산객들에게 밴드를 청해본다. 흔쾌히 밴드를 건네주시며 안타까워하시는 산벗님들의 사랑이 눈물겹게 가슴으로 파고든다. 잠시 더 그렇게 밴드를 붙이고 지혈을 한 후, 하산길에 오른다.

"자 여기부터는 평평한 내리막길이니 아내분과 함께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신음 소리가 자꾸 숨결에 섞여 내뱉어진다.

"엉엉..."
"이제 다왔으니 그만 울어요 제발....."
"예 죄송합니다....."
"엉엉..."

승가사 길을 걷고 또 걸어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하니 어느 보살님 모녀가 정류장 벤치에 앉아 우리를 안타까이 바라보신다. 그리고 잠시후에 도착한 자신의 차에 우리를 태우고 불광역까지 바래다주신다. 오 자비로운 부처님의 사랑이여... 한없이 너그러운 내 주님의 은혜여.

오늘 산행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비봉 자락에서 만나 전해준 바람의 소리나, 승가사 정류장에서 전해주신 어느 보살님 가족의 사랑은 오래오래 내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기쁨을 만끽하도록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신 나그네님 이하, 어울림산악회의 모든 관계자분들과 자원봉사자분들 정말로 감사 또 감사 드립니다.


태그:#시각장애인 , #북한산, #등산, #바람, #바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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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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