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학교에서 내려온 메르스에 대한 공문. 되도록 귀국을 자제시키고 있다.
 학교에서 내려온 메르스에 대한 공문. 되도록 귀국을 자제시키고 있다.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메르스가 한국을 공포로 물들인 지 어느 새 두 달이 넘었다. 중국에서는 중동호흡종합증(즁동후시종허증)으로 불리고 있다. 병세는 거의 진정됐으나, 아직 완벽히 진압된 것은 아니기에 중국에서는 한국의 메르스 재발 가능성을 제기하는 언론도 있다. 다만 사스보다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고 덧붙이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메르스 의심 환자가 중국에 입국했을 때 청정국인 중국에까지 메르스 공포를 확산시켰다며 한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메르스에 이미 감염된 환자를 출국시킨 한국정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는 최고의 대접을 해주었다. 설비비용으로 약 800만 위안(약 14억원)을 지출했으며, 소통을 위해 한국어 통역사를 고용했다고 전했다. 또 환자를 위해 한국음식까지 따로 제공했다.

너무도 극진한 대접에 중국인의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정부나 환자에게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누리꾼도 적지 않다. 내 주변도 마찬가지다. 한 중국 친구는 기사를 보며 어이없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렇게까지 해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인이기에 공연히 얼굴이 붉어졌다. 뭐라 할 수만은 없다. 역지사지 아닐까.

중국인들의 메르스 걱정, 귀국 고려까지 권유

여름마다 열리는 진저우의 링허야시장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
 여름마다 열리는 진저우의 링허야시장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때로 힘들었지만 많은 추억을 남긴 학부 시절이 끝났다. 졸업이 확정되고 대학원 입학 전 귀국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중국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졸업 축하해'나 '조심히 돌아가'같은 축복의 말이 아니다. 진심어린 걱정과 당부들이다.

"친, 니비에후이취바.(친구야, 돌아가지마)"
"니후이구어비쉬데이샤오신쩌거츄안란지빙(귀국하면 반드시 전염병 조심해야해)"

한 친구는 신문에서 한국 상황을 봤다며 집에 가면 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 귀국을 적극 만류한다. 지낼 곳이 없으면 메르스가 안정될 때까지 자기 집에 있어도 된다며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았다. 마음은 고맙지만, 한편 속이 상한다. 물건을 사러 가도 상인들은 한국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지를 떠들어댄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예비 입학생들이 단체 방문을 했다. 도착하는 날, 예정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연락을 했더니 이유는 역시 메르스 때문이었다. 한 학생이 별다른 이유 없이 체온이 37.8도에 달해 2시간 넘게 공항에 붙잡혀 있었던 것. 다행히 열이 내린 후 학교 전화번호를 적어주고서야 풀려났지만, 일반인이라면 절대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스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중국의 반응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하다.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할 불편함이다.

하늘을 비추고 있는 아름다운 윈난성 루구후전경
 하늘을 비추고 있는 아름다운 윈난성 루구후전경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학교에서도 한국 학생에 대해 제재를 하기 시작했다. 방학 때 되도록 귀국하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진 것. 하지만 가지 말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집에 다녀오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사람은 필히 학교에 명단을 제출해야 했다.

만약 학교에 알리지 않고 한국에 갔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 한국에 다녀올 동안 메르스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귀국했을 때 격리시키겠다고 까지 했다. 수업불참은 물론이다. 사실상 학교생활을 차단시키겠다는 거다. 나야 졸업을 했지만, 재학생들에게는 큰 압박이다.

하루는 공안까지 와서 한국인들을 모아놓고 귀국을 다시 고려할 것을 당부했다. 중국에서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처였다. 귀국할 때도 열이 있으면 공항에서 비행기타기 힘들 것이라며 건강관리를 잘하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중국과 너무 달랐던 국내 반응,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매일 지나쳤던 학교호수. 졸업 후에 그리워질 풍경이다
 매일 지나쳤던 학교호수. 졸업 후에 그리워질 풍경이다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한국에서 한창 감염자가 늘어날 때 중국 언론을 보면 한국은 도저히 사람 사는 곳이 못돼 보였다.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닌데도, 가는 곳마다 뉴스에서 한국 소식이 흘러나오니 공포심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메르스 감염자가 처음 확진됐을 당시, 사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막연히 금방 잠잠해지겠거니 생각했던 것.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환자가 늘어나자 덜컥 겁이 났다. 심각성을 느끼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정작 한국에 있는 지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메르스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걱정은 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며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오히려 나에게 호들갑을 떤다고 핀잔을 줬다. 당시 국내에서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귀국해 나눠주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던 중이었는데 머쓱해져 포기하고 말았다.

그간 중국에서 느낀 한국의 메르스는 거의 역병 수준이다. 정작 한국 친구들과 집에서는 아무 일 없다며 안심시킨다. 양쪽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중국 친구들은 내가 염려돼서 과장되게 얘기하는 것 같고, 고국에서는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축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이 느끼는 괴리감이다.

많은 중국 지인들이 나를 대신해 한국 상황을 걱정하고 위로해줬다. 어떤 때는 부담스럽기까지 한 그들의 오지랖이었지만, 때로는 이런 관심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가면 수다스럽지만 따뜻한 이들의 정이 많이 그리워 질 것이다. 부디 고국에 가서 중국 친구들에게 '한국은 이제 위험하지 않다'고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태그:#중국, #중국유학, #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