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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진저우 시내 전경. 구름이 탐스럽게 하늘에 떠있다.
 진저우 시내 전경. 구름이 탐스럽게 하늘에 떠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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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귀국을 했다. 북한이 지난 20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포격을 했다. 중국에 있건(내가 유학하는 진저우는 북한에서 가까운 발해만에 있다) 고향인 경기도 북부에 있건 이런 상황에 무뎌졌을 만도 하건만,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불안해진다. 다행히 매번 '이번에도 역시...'로 마무리되곤 했지만 말이다.

언론은 불안한 데 비해 일상은 언제나 그렇듯 평온하다. 신문에서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들썩여도 사람들은 묵묵히 시간을 보낸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불안하다고 한들 어쩔 수 없기 때문일까. 서민은 도피도 포기도 못 하는 일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부족한 실력 탓에 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해외에서 머무는 한국인이 자주 듣는 질문은 아마 '남한 사람인가, 북한 사람인가'일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 한국. 그 특이성은 외국인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중국에서 한국말을 할 때면 중국인이 가만히 보다가 가끔 말을 걸어온다.

"니싀한궈런아, 챠오시엔주야?(한국인이에요, 조선족이에요?)"

중국에서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한국인 아니면 조선족이 대부분이다. 물론 북한에서 왔냐는 질문도 드물게 받았다. 중국에서 북한은 '조선', 북한 사람을 지칭할 때는 '조선인'이라고 한다. 유학 초창기에 '조선인'과 '조선족'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같은 의미인 줄 착각한 적 있다. 잘못된 대답으로 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었다.

"니싀챠오시엔주마? 훠져챠오시엔런?(조선족이에요? 아니면 북한사람이에요?)"
"워부싀챠오시엔주(나는 조선족이 아니에요)."

말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던 때라 국적이 어째서 북한이 됐는지 의문을 품은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어로 해명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 북한 사람인 척 얼버무리고 재빠르게 자리를 빠져 나갔다.

가끔 중국인이 북한 특유의 억양을 흉내 내면서 왜 남한과 말이 다르냐고 물을 때가 있다. '말투는 달라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안다'라고 대답하면 곧바로 이해한다. 중국 친구가 말하길, 남한 말투는 부드러워서 듣기 좋지만 북한은 억양이 딱딱하게 들린다고 한다.

"양꼬치엔 칭따오 셰셰"라고 하면 우리는 웃지만 중국인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말도 안 되지만 약간의 성조만 따라 하는 것에서 웃음 포인트가 생긴다. 중국인들은 이런 걸 따라한다. "위~대한 조선인민 민주주의공화국 수령님~ 만세!"라고 하는 북한 특유의 말투를 흉내 낸다. 발음이 아니라 "응~응, 응!"하며 성조를 따라 하는 것이다. 내 앞에서 자주 북한 사투리를 따라 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얄궂은 남성들이 그렇다.

북한에서 온 그대, 하늘하늘한 아가씨들

북한식당에서 먹은 군만두와 평양냉면
 북한식당에서 먹은 군만두와 평양냉면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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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은 북한을 여행할 수 있다. 내 주변에도 북한을 여행한 친구가 몇 있다. 중국인은 북한의 국경을 넘을 수 있지만, 정작 같은 민족인 한국인에게는 막혀 있다는 사실에 심경이 복잡했다. 금강산 여행은 역사책에나 기록될 일로 남을까 아쉬움이 든다.

진저우에도 북한 사람이 있다. 내가 만나본 북한사람은 밝고 예쁜 아가씨들이었다. 중국으로 관광 오면 으레 코스처럼 들르는 북한 식당에 일하는 이들이다. 얼핏 촌스럽지만 지켜보면 복숭아 같은 싱그러운 얼굴들이다. 거기에 가느다란 선을 지닌 하늘하늘한 몸매, 한복이 퍽 잘 어울렸다. 하지만 가슴팍에 달린 북한 국기 배지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아이러니하게 북한 식당을 소개한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나를 꼭 데리고 오고 싶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종업원은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어눌한 중국어로 우리를 맞았다. 실제 북한 사람을 마주하자 긴장감에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친구는 그런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짓궂게 부추긴다.

"종업원에게 한국어로 말 걸어봐."
"좀 껄끄럽네. 내가 한국사람인 걸 알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절대로 안 그럴 거야. 저번에 왔을 때 내가 '일본'사람이라고 했는데도 친절했어."

북한맥주인 대동강맥주와 연변에서 사 먹었던 진달래 맥주. 개인적으로 진달래 맥주가 맛있었다.
 북한맥주인 대동강맥주와 연변에서 사 먹었던 진달래 맥주. 개인적으로 진달래 맥주가 맛있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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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풀리며 웃음이 터졌다. 원래 이렇게 '자폭'을 잘하는 티 없는 친구다. 결국 종업원이 음식을 내올 때 조심스레 몇 마디를 붙여 보았다. 그녀는 TV에서나 들었던 딱딱한 북한 사투리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진짜 북한분이신가요?"
"네. 그럼요. 음식도 모두 저희가 직접 북한식으로 만듭니다."
"저는 한국 사람인데... 저랑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나요?"
"네? 하하. 왜 안 됩니까? 남한 분들도 많이 오십니다. 앞으로 자주 오십시오."

식당 앞 작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북한 종업원들
 식당 앞 작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북한 종업원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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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봤던 이산 가족의 감동적인 재회를 떠올렸나보다.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장면은 나만의 동화였다. 다른 여느 음식점의 점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저 나만이 신기해했을 뿐이다. 선입견 혹은 '로망'으로 똘똘 뭉쳐 답을 정해 놨던 나 자신이 우스웠다. 쑥스러움에 이후 몇 년은 그곳으로 가는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음식 맛이 그저 그랬고 가격은 착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얼마 전 친구 손에 이끌려 오랜만에 다시 그 식당을 찾았다. 여전히 어여쁜 아가씨들과 인사를 하고 냉면과 군만두를 시켰다. 입맛이 변한 걸까. 면발은 불고 육수는 미지근했는데도 맛은 한국과 같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직접 밤마다 모여서 빚는다는 만두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녀들은 서빙을 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식당 앞에 마련된 작은 무대로 우르르 나간다. 노래를 부르며 손님과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돈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타향에서 웃음을 팔고 춤을 추고 식당일을 하는 그들이 낯설면서 익숙하다. 어떤 생각으로 이 곳에서 생활할까. 그래도 북한보단 형편이 나으려나. 여러 사념이 얽힌다.

북한 종업원 아가씨
 북한 종업원 아가씨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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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감정의 실타래

한국과 북한은 통일, 휴전, 대북 지원, 이산 가족, 탈북자 등등 수없이 많은 사안으로 얽혀 있다. 외국인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정서다. 이처럼 현대의 한국인이 북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희한하게 한국 친구나 중국 친구나 북한에 대한 견해는 비슷했다. 북한 정치에 불만을 나타내는 동시에 궁핍한 주민의 생활을 애석해 했다. 내 주변의 중국인은 폐쇄적인 정책 때문에 경제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며 다른 나라와 교류가 있어야 국민의 삶도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중국인은 북한 사회의 호전적인 모습이 마치 중국 건국 초기의 분위기와 닮아 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니씨엔짜이메이셜마? 부후이빠오파쟌졍바? (너 별일 없지? 전쟁 일어나는 건 아니지?)"

얼마 전 친구가 걱정의 문자를 보내왔다. 휴전 중인 나라에 사는 외국인 친구가 걱정됐을 것이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의 긴장 상황을 뉴스로 접한 친구가 놀라서 먼저 연락해 온 것이다.

의외로 북한에 대해 묻는 중국인이 많다. 한국인으로서의 견해를 듣고 싶어서다. 하지만 간단한 질문조차 많은 생각이 교차돼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 일반인은 남한과 북한 관계에 그리 관심이 없다.

가끔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 던질 뿐, 보통은 김정은의 외모를 희화화하거나 어투를 따라 하며 장난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조차 교감하지 못하는 북한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중국, #중국유학,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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