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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씨의 친일행적과 근거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열렸다. 연구소측은 공개검증의 배경으로 "김 대표측과 극우언론이 김용주의 친일행적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공공연하게 애국지사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김용주(김무성 대표 부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의심의 여지 없다" 김용주(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씨의 친일행적과 근거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열렸다. 연구소측은 공개검증의 배경으로 "김 대표측과 극우언론이 김용주의 친일행적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공공연하게 애국지사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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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발간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사진)이 역사 변조를 목적으로 급조된 기획상품이라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발간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사진)이 역사 변조를 목적으로 급조된 기획상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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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7일 오후 7시 45분]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뜻)화를 꾀해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해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해, 현세의 신이신 천황(일본 황제)께 귀일하는 것입니다."

(1944년 1월 28일, '징병제 시행에 감사해 미국·영국 격멸을 결의하는 전선 공직자대회', 김용주 발언 중, 일본 와세다 대학 기록 소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1905-1985) 전 전남방직 회장이,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병을 독려하고 일제에 군용기 헌납을 선동하는 등 자발적 친일 행적을 했다고 민족문제연구소가 17일 새 사료를 통해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아래 민문연)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 민족문제연구소 5층에서 '김용주는 과연 애국자였나, 애국자로 둔갑한 친일파인가'란 제목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발표했다. 김무성 대표 부친의 친일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비행기를 헌납하고 징병제 독려 광고를 내는 등 구체적 행적이 담긴 자료는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민문연 측은 1940년대 일본 아사히 신문·와세다 대학 소장 자료 등 근거로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씨의 친일 행위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고 적극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1905년 7월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면에서 출생해 경상북도 영일군 포항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창씨명은 '가네다 류슈(金田龍周, 김전용주)'였다.

이날 민문연 측은 A4용지 약 50쪽 자료집을 내고 이번 친일 행적 공개 검증의 배경과 김 전 회장의 연도별 친일 행적, 최근 나온 평전 <강을 건너는 산(2015, 청어)>의 사실관계 오류 등을 지적했다. 징병제 독려·군용기 헌납 독려 광고 등 민문연 측이 이날 발표한 '해촌 김용주', 김 전 회장의 주요 친일 행적은 다음과 같다.

김 전 회장은 ▲ 경상북도 도회의원으로서 출정 황군에 대한 감사 전보 발송을 제안하고, 조선 청년들에게 징병제 참가를 독려하는 광고를 냈으며 ▲ 친일단체 간부로서 일제 식민 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또 ▲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위한 신사건립 등을 주장했고 ▲ 대구국체명징관 등에 기부금을 헌납하고, 군용기 등 헌납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朝日新聞(南鮮版)』 1944.7.9.4면
 (광고)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朝日新聞(南鮮版)』 1944.7.9.4면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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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朝日新聞(中鮮版)』1943.9.8.4면
 (광고)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朝日新聞(中鮮版)』1943.9.8.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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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김용주(김무성 대표 부친), 죽어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고 싶다”
ⓒ 윤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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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전 회장, 친일단체 간부로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

민문연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1937년 경상북도 도의원으로 당선된 후, 1941년 국민총력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경상북도)과 경북지부 상임이사 등을 거쳤다. 그는 이후 1950년 주일본공사관 공사, 1960년 민주당 국회의원·원내총무, 1970년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초대 회장직 등 요직을 두루 거치게 된다.

민문연 측 자료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1942년 3월 11일 경상북도 도회에서 '출정 황군에 대한 감사 전문'을 통해, "대륙에 패적을 소탕해 일장(日章)의 광휘를 산해에 조약 시킴에 감격을 표현할 말이 없다"고 밝힌다. 민문연 측은 "이는 전투에 참여하는 황군, 즉 일본 군인들에게 감사문을 보내자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민문연 측은 또 김 전 회장이 당시 최대 민간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43년 9월 8일 자 일본 아사히 신문에 기명으로 징병제 시행에 감사하는 광고를 냈다는 사료도 공개했다. 이날 지면에는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 반도의 젊은이들이 궐연히 일어나라, 결전장은 그대들을 부른다"는 내용의 광고가 실려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이 1943년 10월 1일 김용주가 참석해서 발언한 공직자대회 현장사진(매일신보)을 공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이 1943년 10월 1일 김용주가 참석해서 발언한 공직자대회 현장사진(매일신보)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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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씨의 친일행적과 근거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열렸다.
▲ 민족문제연구소 "김용주(김무성 대표 부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의심의 여지 없다" 김용주(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씨의 친일행적과 근거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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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용 민문연 교육홍보실장은 "김 전 회장은 친일단체 간부로서 일제 식민통치 및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을 요청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1941년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의 평의원에 임명돼 활동했는데, 이 연맹은 조선 민중을 통제하고 전시 동원하기 위해 조직된 최대 관변 통제기구로 알려져있다.

민문연 측은 이어 김 전 회장의 회고록과 평전에도 오류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준식 연구위원은 "회고록과 평전을 사료 비판 측면에서 검토한 결과 지어내거나 과장된 얘기 등 오류가 많았다"며 "여기에는 김용주씨를 항일 지사인 것처럼 묘사하는 등 근거 없는 내용을 넣었지만, 그에게 불리한 친일 행적은 대부분 감춰졌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특히 "회고록과 평전에서 김 전 회장이 1933년 영흥 학교를 인수해 경영한 것처럼 썼으나, 이는 연도부터 틀린 명백한 사실관계 오류"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1936년 2월 28일 자, <조선일보> 1936년 3월 25일 자 등 기사를 비교해 볼 때, 학교를 인수한 것은 1936년이 정확하다는 것.

민문연 측은 이어 회고록 중 '해방 전년인 1944년 말 조선인 8명 총살 계획 1호에 포항 김용주가 있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사실"이라며 "김용주를 애국자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일제가 미군의 한반도 진주를 앞두고 수립했다는 '조선인 유력자 살해 계획'의 실재는 객관적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민문연 측은 그러나 "우리는 친일파 후손을 추적하거나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며 연좌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무성 대표가 선대의 친일행위를 부인하며, 선친을 애국자로 만드는 조직적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게 검증 작업의 직접적 계기다. 박한용 홍보실장은 이날 "김용주씨는 막강한 재력에 기반을 둔 경북 지역의 특급 친일파"라고 정의했다.

"김용주, 친일인명사전에 없어" vs. "잠시 보류했을 뿐, 친일사전 수록 대상"

이날 자료를 공개·발표한 역사단체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정신을 이어받아 1991년 설립된 단체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펴냈고, 2012년에는 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앞서 김무성 대표는 부친의 이런 친일 행적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김 대표는 지난 2013년 부친의 친일 의혹이 일자 "경북도회 의원들은 당시 조선인 농민 편에 서서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했다", "부친은 개인 재산을 털어 조선인 한글교육 야학을 개설하는 등 애국적 삶을 살았으며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현재 김 전 회장은 민문연이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돼 있지 않다. 같은 이름 '김용주'가 사전에 수록돼 있지만, 민문연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한국이 아닌 만주에서 활동한 친일파로서 김 전 회장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민문연 측은 김 대표 주장을 재반박했다. 박수현 연구실장은 "김 전 회장이 친일인명사전에서 빠졌던 이유는 사전 편집 당시 추가조사가 필요해 잠시 보류했던 것뿐"이라며 "김 전 회장은 당연히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명이인이 많지만, 활동지가 포항·영일이고 창씨명이 '가네다 류슈'인 사람은 김 대표 부친뿐"이라며 "향후 개정판이 나올 때는 수록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민문연 측은 이날 "김무성 대표는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할 국회의원으로서, 또 여당 대표이자 잠재적인 대선 주자로서 선친의 친일 행적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부친의 친일 행적을 은폐·세탁하고 애국자로 포장한 기만행위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래는 민문연 측이 밝힌 김 전 회장의 신상 정보와 연도별 주요 친일 행적이다. 더 자세한 자료는 민문연 홈페이지(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용주 연도별 친일 행적
※ 김용주 (한자: 金龍周, 창씨명: 金田龍周)

- 원적지 및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면 신관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영일군 포항읍(1923년 이후 정착)
- 생몰년 : 1905.7.29.∼1985.1.27.
- 창씨명 : 金田龍周(가네다 류슈)

※ '해촌 김용주' 연도별 주요 친일 행적

▲ 1937년 5월 10일
경상북도 도회의원(영일군, 민선) - 매일신보 1937.5.12. 석간 1면, 조선총독부관보 1937.7.6

▲ 1940년 2월 24일
제12회 경상북도 도회 회의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음으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으므로 반도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 줄 생각한다" 발언 – 매일신보 1940.2.26. 석간 3면

▲ 1941년 5월 17일
국민총력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선임 - 매일신보 1941.5.20. 석간 3면

▲ 1941년 7월 16일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 평의원 임명 - 매일신보 1941.7.18. 慶尙每新, 조간 3면

▲ 1941년 12월 7일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결성식에서 상임이사 선임,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 제안 - 매일신보 1941.11.24. 조간 3면 ; 1941.12.9. 석간 3면

▲ 1943년 9월 8일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라는 제목으로 징병제실시 감사 결의 선양 광고 게재 – 아사히신문(남선판) 1943.9.8. 4면 중선판 1943.9.8. 4면

▲ 1944년 7월 9일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이라는 비행기 헌납 독려 기명 광고 게재
– 아사히신문(남선판) 1944.7.9. 4면

▲ 1944년 10월 2일
징병제 시행 감사, 적국(敵國) 미영 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 참가해 발언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뜻)화를 꾀해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로 생각" - 와세다 대학 소장 기록(사무국, 1944.1.28.), 대회기록 83쪽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김무성 친일파, #김무성 김용주 친일파, #김용주 친일 논란, #김용주 친일 행적, #김무성 부친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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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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