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58회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이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공개 상영되고 있다.
 제58회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이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공개 상영되고 있다.
ⓒ DOK Leipzig 2015

관련사진보기


독일은 다큐멘터리가 강하다. 즐기는 사람도 많고 지원도 탄탄하다. 독일 영화는 흔히 '재미없다'고 평가절하되지만, 독일이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독일 다큐멘터리와 독일의 힘을 찾을 수 있다. 독일 공영방송은 공영방송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교양 프로그램에 힘을 싣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TV 다큐멘터리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토론을 즐기는 문화 속에서도 다큐멘터리는 힘을 발한다.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OK Leipizg)는 독일 다큐멘터리 문화와 산업이 집약된 곳이다. 1955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58회째를 맞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큐멘터리영화제다. 특히 과거 동독 시절 시작한 영화제임에도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정치,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중시하는 영화제도 평가받는다.

"라이프치히 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의미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하나입니다. 예술적이고 담론을 이끌어내며,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 삶에 진지하고 현실적이며 시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시각을 가져다 줍니다."

지난 10월 26일 열린 제58회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독일연방 작센주 문화장관의 말이다.

올해 총괄프로듀서인 레나 파자넨(Leena Pasanen)는 사회 정치적인 이슈를 피해가지 않았다. 그는 "라이프치히 영화제는 전통적으로 평화와 인간존중을 대표하는데 이는 오늘날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다큐멘터리는 편협함과 불관용에 싸우기 위한 매체다, 인종주의 시위에 나가려는 이들에게 대신 중앙역으로 가서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고 밝혔다. 라이프치히에서 월요일마다 열리는 이슬람 및 난민, 외국인에 반대하는 시위인 레기다(Legida)를 겨냥한 것이다.

'영화관'으로 바뀐 기차역, 시민들 위해 개막작 무료 공개 상영

올해 개막작은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일반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공개 상영됐다. 상영 시작 몇 시간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섰다. 한때는 유럽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었던 라이프치히 중앙역이 영화관으로 바뀌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배우가 없는 다큐멘터리 특성상 미디어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은데, 일반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호응이 컸다.

올해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특히 한국이 그 중심에 섰다. '한국특별전'을 열어 20여 편의 한국 다큐멘터리가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한국특별전'에는 국제 경쟁 후보에 오른 <춘희막이>부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위로공단>과 <공부의 나라> <두개의 문> 등의 다큐멘터리 및 애니매이션이 초청됐다. 인간의 삶에 집중한 이야기부터 한국 사회와 정치를 다룬 것까지 다양한 작품이 상영, 전세계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위로공단>과 <공부의 나라>는 세 번의 상영 내내 매진을 기록, 한국 다큐멘터리와 한국 사회에 대한 현지의 관심을 방증했다.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거의 모든 영화가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 GV)를 가진다. 한국에서도 10여 명의 감독 및 프로듀서가 초청돼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영화제 측은 "거대한 한국 영화 산업은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유럽에서는 한국의 활발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 문화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한국을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한국 다큐멘터리는 최근 유럽의 각종 제작 지원 경쟁(피칭)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국내의 척박한 환경에 비교하면 오히려 국제적으로 더욱 인정받고 사랑 받는 셈이다.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더욱 다양해지고 영화 편집의 기술, 예술적 고려가 늘어나면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전으로 한국을 선정하고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한 지그문크 마크(Siegmund Mark)씨를 만나 독일이 바라보는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지그문트씨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한국특별전 통해 동아시아 영화 쪽으로 저변 넓힐 계획"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특별전 프로그래머 지그문트 마크.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특별전 프로그래머 지그문트 마크.
ⓒ ARAM

관련사진보기


-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한국에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영화제인가.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가장 크고 중요한 영화제 중 하나다. 다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자본,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지난해에는 에드워드 스노든 관련 다큐멘터리가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검열과 통제가 일상적이었던 동독 시절에도 작품 선정 등에 있어서 간접적으로 에둘러가며 독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전세계적으로는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제작 지원이나 배급 등 산업적 측면에서 결정권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라이프치히에도 이런 영화 산업적 부분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 이번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특별전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라이프치히 국제다큐영화제 총괄 프로그래머가 먼저 한국특별전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과거 영화 관련 일을 하면서 독일 영화인들과도 교류가 많아 그 인연으로 시작됐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영화 산업이 매우 크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라이프치히 영화제에서는 많이 상영되지 않았다. 라이프치히에서도 이번 한국특별전을 통해 동아시아 영화 쪽으로 저변을 넓히고자 했다."

- 한국 다큐멘터리 작품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나.
"다른 프로그래머와 함께 한국 다큐멘터리 100건이 넘는 작품을 봤다. 크게 한국에서 성공한 작품, 인물 위주의 작품, 사회 정치 운동의 성격을 지닌 작품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첫 번째 예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두 번째의 경우 <만신> <춘희막이> <악사들> 세 번째의 경우 <두 개의 문> <마이 페어 웨딩> <위로공단> 등이 있다."

- 이번에 선정된 주요 작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님아…>는 편안한 영화다. 주인공은 사랑스럽고 귀엽고, 풍경도 아름답다. 누구나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춘희막이>에서 두 주인공의 관계는 독특하게 볼 수도 있지만 한국적이기보다는 어떤 '특별한 인간'을 조명한 것에 더 가깝다. 어떤 면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인물이 가지는 캐릭터의 힘이 강한 작품이다. 경쟁부분에 진출한 것도 소재의 특별함 때문이다.

<공부의 나라>도 매우 흥미로운 영화다. 벨기에와 공동 제작을 했는데, 편집 및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 다큐의 특징과 유럽 다큐의 특징이 골고루 섞여있어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교육이라는 소재가 독일에서도 관심이 많아서 관객들의 호응도 컸다."

- 다큐 영화제 관련 정부 지원은 어떤가. 한국특별전이 열렸는데 한국에서도 지원이 있었는지.
"올해는 작센주로부터 35만 유로(한화 약 4억 4000만 원)를 지원받았다. 엄청난 지원이다. 라이프치히 시에서도 받는다. 다큐멘터리영화제의 의미와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영화제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행히도 주독일한국문화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한국 다큐멘터리 예술성 높아져... 작품도 다양해졌다"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특별전 프로그래머 지그문트 마크(Siegmund Mark).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특별전 프로그래머 지그문트 마크(Siegmund Mark).
ⓒ ARAM

관련사진보기


- 독일인으로서 보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다큐멘터리를 이해하려면 그 뿌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초기 한국 다큐멘터리는 사회운동적인 성격이 강했다. 낮은 목소리를 싣고 그 메시지는 중요했지만,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약한 부분이 있었다. 최근에는 미적인 부분에서도 신경 써서 잘 만든 다큐멘터리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예술적이거나 인물에 집중한 작품, 극영화적 요소와 섞인 작품 등 다양성이 높아졌다. 특히 해외 피칭을 통해 공동 제작을 하는 등 국제 교류를 통해서 다큐멘터리의 질이 점점 더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

- 한국과 비교했을 때 독일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어떤가
"솔직히 독일 영화는 재미없다.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를 위주로 본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독일 영화도 손에 꼽는 정도다. 독일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기는 많이 만든다. 대규모로 개봉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극장에서 소규모로 개봉하는 것도 많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 있어서 독일은 유럽에서도 앞선 편이다. 내용뿐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기술 측면에서도 우수하다. TV 다큐멘터리도 전통적으로 강세다. 독일 방송국 ZDF의 경우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도 매우 활발히 한다."

- 한국 영화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독립 예술 영화관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아시아 영화의 독특함과 특별함에 끌렸다. 한국 영화는 90년도 후반에 김기영, 임상수,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며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당시 중국, 한국, 일본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에서 한국 부산 국제영화제가 가장 볼 만하다고 해서 1999년도에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했다. 당시에만 해도 외국에서 온 게스트가 100명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이후 한국말도 배우고, 한국에서 여러 영화제에서 일을 하다가 2004년부터는 거의 한국에서 살고 있다."

<관련 기사>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 "본처·후처 이야기, 외국인들은 SF적으로 보더라"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 "한국엔 노동자 정당 없나?" 토론장 된 영화관
[<님아> 진모영 감독] <님아> 다큐 본 외국 관객 "영화 보여줘 감사하다"


태그:#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독일, #다큐멘터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글을 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