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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기자 말

내 나이 또래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2막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은 수명이 길어져서 건강 관리를 잘 하면 은퇴 후 상당한 기간까지 왕성한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은퇴 후 활동 계획도 호흡을 길게 잡아야 한다. 이제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2막 인생으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로 호주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

오십이 넘어서 유학을 간다는 말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지만, 나는 은퇴하면 호주로 가서 거기서 2년 반 정도 공부할 계획이다. 이 중 6개월은 어학연수를 받으면서 체력과 멘탈을 재충전하는 시간으로 잡고 있다.

큰애가 다닌 어학원의 커리큘럼을 보면 일주일에 스무 시간 공부를 한다. 하루에 4시간 공부하면 5일, 5시간 공부하면 4일이다. 방과 후 오후 시간이 직장 생활과는 비교가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워진다. 이 시간에 큰애가 다녔던 체육관에 가서 수영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계획이다.

내 나이에 가능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파도타기도 배워보고 싶다. 주말이나, 어학원이 쉬는 기간에는 가능한 여행을 많이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쌓인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다.

 ? 공간이 아주 쾌적하게 설계되어 있다.
▲ ▲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내부모습 ? 공간이 아주 쾌적하게 설계되어 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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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는 우리 일행을 여기저기 끌고 다녔는데, 그 중에 관심을 끈 것이 주립도서관이었다. 선진국답게 도서관은 넓고 쾌적했다. 나는 여기에서도 가능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도서관에서 보낸 좋은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당시,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수업이 띄엄띄엄 있는 대학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도서관을 베이스캠프처럼 활용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일단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다가 수업시간이 되면 수업을 듣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 와서 공부하다가 도서관이 문 닫으면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전형적인 범생이었던 나의 생활이 망가진 것은 대학 스포츠 동아리에 가입하면서였다. 동아리 선후배,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완전히 망가진 대학생활을 재생하기 위해 군대로 도피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제대 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와서야 나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주로 생활하던 착한(?) 학생이 망가지고, 회복되고 다시 망가지는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상세히 할 생각이다.

유형의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살아 왔다

나는 은퇴 후 또는 은퇴를 준비하면서 첫 번째 해야 할 것이 영어공부라고 생각한다. 이 나이에 무슨 영어공부를 하느냐고 웃을지 모르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여행을 하거나 자료를 찾아 볼 때 영어에 익숙하면 편리한 점이 많다. 은퇴 후 많아진 시간을 활용하는데 영어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저렴한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외국여행 기회가 많고, 외국 여행을 나갔을 때, 영어를 알고 모르고는 큰 차이가 있다. 영어를 알면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도 넓어진다. 지금 내 나이가 영어회화를 배울 수 있는 마지막 나이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제일 먼저 어학연수 6개월을 잡았고 지금도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있다.

두 번째 필요한 것은 베이스 잡(Base Job)인데, 나는 제대로 트레이닝 받은 쉐프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것은 유형의 물건을 만들며 살고 싶은 나의 바람 때문이다. 20대에 회사에 입사한 이래 30여 년간 보고서 쓰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였다.

그래서 건축이나 전자제품과 같은 유형의 물건을 만드는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다. 큰애를 보면서 나는 그 유형의 물건으로 요리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남은 생애 기간 동안 계속하고 싶은 글쓰기에서, 요리 이야기는 훌륭한 재료이다. 요리를 매개로 사람들과 만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싶다.

내년을 디데이로 정한 것은, 우리 회사에서는 임금피크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내후년이면 나도 거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치욕(?)은 피하고 싶어서 내년에 회사를 희망퇴직하고 호주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회사를 그만 두면 수입이 없어지는데, 큰애 말에 의하면 학생비자로 하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정도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학원에서 6개월, 쉐프학교에서 2년 그리고 나의 남은 생애는 그 것을 펼쳐내는 기간으로 하여, 개략적인 2막 인생의 계획을 잡고, 호주에서는 우선 느린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큰애는 특유의 생존법을 발휘하여 넘어 간 것 같다

멜버른 시내를 관광하면서 틈틈이 큰애에게 지난 주 있었던 오리엔테이션에 대해 물어보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는 오리엔테이션은 하는 둥 마는 둥 한 것 같은데, 큰애는 3일 동안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고 했다. 큰애의 영어실력으로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기는 했을까? 나는 꼬치꼬치 물어보고 큰애는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던 대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한참 이야기 했다고 한다. 현지 소방서, 경찰서 직원들이 나와서 "해가 지면 바다에 들어가지 마라. 위급할 때는 어디로 전화해라" 등 안전과 관련된 프레젠테이션이 무려 이틀 동안 있었다고 한다. 큰애는 이런 이야기를 왜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많아서 생긴 프로그램이 아닌가 한다.

마지막 날은 수업준비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큰애는 특유의 생존법을 발휘하여 넘어 간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준비물 중에서 장비, 유니폼 등은 다른 사람과 같이 줄을 서서 눈치껏 구매해서 챙겨갔다고 한다. 다른 것들은 한발 늦게 하면서 따라 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업 시작 전에 다른 학생들은 모두 워크플랜을 준비해왔는데, 큰애는 그걸 어떻게 작성하는지 몰랐다. 요리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요리방법, 재료 및 요리순서 같은 것을 적어 놓은 것이 워크플랜인데, 첫날은 그냥 가서 대충 당황한 척 어물쩍 넘어 가고, 다음날부터는 다른 학생들이 한 것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비슷하게 만들어 간다. 다른 것들도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 가는 것이다.

이번 여행 중에 윌리엄 앵글리스에 다니는 한국에서 온 여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큰애하고 같이 입학한, 야무지고 예쁘장하게 생긴 그 여학생은 강사가 말하는 내용을 영어로 받아 적기에는 시간이 너무 바빠서 우선 강의 내용을 영어발음대로 한글로 적은 후 집에 가서 다시 영어로 정리한다고 했다. 그 여학생도 허덕일 정도로 수업 진행 속도가 빠르고, 실습도 버거운 수준인 모양이다.

큰애는 그 정도 영어실력도 안 되고 그렇게 야무지지도 못하다. 그냥 동료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잘 비벼서 수업시간에 놓친 것들은 보완하고 그렇게 넘어가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정말로 급할 때에는 학교에 있는 한국인 서포터의 도움을 받는다.

내가 안타까운 마음에 강의를 녹음하여 반복해서 들어보라고 충고했는데 큰애 핸드폰 녹음 성능에 문제가 있는지 음질이 안 좋아서 한번 해보고는 그만 두었다고 한다. 공부와 관련된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은, 이미 성인이 된 큰애에게 자꾸만 헬리콥터 파파와 같은 모습이 되는 것 같아서, 스스로 헤쳐 나갈 것이라 위안하며 그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걷는 것이 힘들어 질 즈음에 민박집 주인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핸드폰에서 제공하는 네비게이션을 이용해서 조용하고, 깨끗하고, 나무가 많아서 공원 같은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호주 주택가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했다.

큰애는 운전을 하고, 작은 애는 네비게이션 맵을 보면서 방향을 알려주고, 우리 부부는 주변 경치를 구경했다. 이제 웬만한 것은 다 큰 아이들이 알아서 하고, 우리는 지켜보는 나이가 된 것이다. 편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는 일선에서 밀려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중요한 결정은 우리 부부가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아이들이 알아서 하는 모습을 현실로 받아 들이게 되었다, 좀 더 있으면 중요한 사항도 포함해서 결과만 통지 받는 상황까지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태그:#호주, #워킹홀리데이, #쉐프, #베이비부머, #2막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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