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뉴스타파가
<총선에 뛰어든 '그때 그 사람들'>을 보도했습니다. 4.13 총선에 출마한 예비 후보 중 과거에 비판을 받거나 논란이 됐던 사람들을 취재한 기사였습니다. 뉴스타파가 취재한 사람 중에는 유독 제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입니다.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을 아느냐고요? 제대로 대면해서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전혀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만나고 싶었느냐고요? 박기준 전 검사장이 제가 쓴 글을 명예훼손으로 삭제 요청을 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 11월 20일 박기준 전 검사장의 대리단체는 제가 쓴 <
'김영란법' 범죄를 꿈꾸는 자에게 유린당하다>라는 글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게시물 삭제 요청을 했고, 그날 해당 글은 임시조치(글이 블라인드 처리돼 외부에서 볼 수 없는 상황) 됐습니다.
불과 10여 일 뒤인 12월 2일 박기준의 대리단체라는 곳에서 또다시 <
삼성 X파일 '떡값 검사'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글에 명예훼손으로 게시물 삭제 요청을 했습니다. 물론 똑같이 임시조치됐습니다.
불과 2주 사이에 썼던 글 두 개가 임시조치됐으니 글을 천천히 읽어봤습니다. 언론 보도에 나온 팩트를 기반으로 작성했던 글이라 사실관계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만약 사실이 아니었다면 다른 언론사의 기사들도 언론중재위에 제소가 됐을 텐데 그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글에서 박기준 전 검사장은 주인공도 아닌 보조출연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명예훼손으로 글이 임시조치되니 이 사람이 총선 출마를 앞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기준 전 검사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 지역의 건축업자에게 뇌물을 받아 면직 처분된 전력이 있는데.
"뇌물 받고 그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판결문에 스폰서로부터 호텔비, 회식비를 받았다고 명시돼 있는데.
"특검을 통해서 혐의가 없는 걸로 다 정리가 된 사항이다."
- 국민의 대표자가 되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나.
"나름대로 행정적인 책임도 졌고 4~5년 넘게 성찰의 시간을 통해서 스스로 다듬었다고 생각한다."
저는 4~5년 넘게 성찰의 시간을 통해서 스스로 다듬었다는 그의 말에 갑자기 웃음이 터졌습니다. 보통 성찰의 시간을 보낸 사람은 굉장히 온화한 표정을 짓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합니다. 그는 총선 예비 후보로 등록하기 불과 20여 일 전에도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자신이 보조 출연한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사람입니다.
박기준 전 검사장의 대리단체가 명예훼손 글로 삭제 요청해 임시조치된 글은 지난 1월 2일 복원됐습니다. 이유는 제가 '다음'에 게시글 복원신청을 할 경우, 박기준 전 검사장(신고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을 수 있도록 심의대리 접수를 해야 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어서 자동으로 복원된 것입니다.
진짜로 성찰의 시간을 통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포기했는지 아니면 싸워봤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리라 예상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단 하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받더라도 글은 복원됐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비슷한 내용의 최시중 게이트 관련 글도 김학인 전 이사장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삭제요청을 받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까지 가서 위반내용이 '해당없음'으로 복원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글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명예훼손으로 삭제요청을 했으면 제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가서 심의를 받았으면 합니다. 글에 문제가 있거나 오류가 있다면 당당하게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고, 그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는 판정을 객관적으로 받기 원합니다. 무조건 자기 이야기가 비판적으로 나온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게시물로 신고하니 참 답답합니다.
특히 총선 예비 후보로 출마하실 분은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전과와 학력 등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하는 공인에 속합니다. 그런 분이 마음대로 삭제 요청했다가 정작 심의 때는 연락이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이상합니다.
박기준 전 검사장이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지만, 명예훼손으로 삭제요청을 하는 모습을 보면 과거 PD수첩 취재진에게 협박하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정치블로거에게 명예훼손으로 글 삭제를 요청했다는 것은 가장 큰 위협 중의 하나입니다.
지면을 빌려 박기준 전 검사장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삭제요청까지 했는지 궁금합니다. 총선 전에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정치미디어 (theimpeter.com)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