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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에 혼자 다녀온 아이 표정이 갑자기 안 좋아진다.

"엄마, 할머니가요…. 외롭다고 하시면서 우리 집 가까운 데서 살고 싶다고 하셨어요."

멍했다. 팔순이 넘은 부모님 두 분만 사시니 외로운 마음이 들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 두 분만 사시게 두는 게 도리가 아니고 우리 남매 중 누군가는 가까이서 모셔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자녀를 두고 있는 언니·오빠보다는 어린 자녀를 키우는 내가 적합할 듯했다.

물론 부모님께 이런 생각을 말씀드리진 못했다. 그런데 외갓집에 혼자 다녀온 첫째가 친정엄마가 한 말을 이렇게 나한테 전한다. 이런 말을 자식에게 전해 들으니 부모로서 면이 안 선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렴"... 엄마의 숙제

얼마 전, 방학을 맞은 고등학생 첫째와 중학생 둘째에게 숙제를 내줬다. 참고로 막내는 초등학생이다. 방학 때 친가랑 외가에 다녀오라고 시켰다. 엄마가 내주는 방학숙제였다.

"가서 뭐하라고?"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시는 것도 보고, 청소도 해드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 이야기도 듣고 오면 되지."
"아~ 안 돼. 난 시간 없어. 못 가."

둘째는 단칼에 거절했다. 첫째는 별말이 없었다.

"엄마가 너희한테 할머니랑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라고 하는 이유가 있어. 엄마는 너희가 할머니 할아버지 어떻게 사시는지 보고,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하면 지나가다가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볼 때 그분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엄마도 그러거든. 길가다 할머니가 뭐 물어보면 (너희) 외할머니 생각나서 더 친절하게 알려드려."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꾸 만나면 아이들이 사회에서 만나는 노인이나 약자에게 측은지심의 감정을 더 잘 느끼게 될 것 같았다. 아이들 교육상으로도 좋은 일이란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내가 내준 방학숙제는 흐지부지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 첫째가 학교 보충 수업을 마치고 외갓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기특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알렸다.

"우리 집에 온다고? 지금?"

엄마가 좋아하셨다.

"엄마, 첫째가 청소하고 설거지하면 그냥 놔두세요. 못하게 하지 말고."

엄마가 알았다고 하며 웃으셨다. 아이는 저녁까지 먹고 돌아왔다.

엄마는 왜 손주에게 그런 말을 하셨을까

아들이 전한 엄마의 말, 나는 멍해졌다.
 아들이 전한 엄마의 말, 나는 멍해졌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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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는 했어?"
"네. 청소는 해드렸는데요. 설거지는 내가 옥상 구경하고 와서 하려고 했는데, 내려오니까 할머니가 다 해놓으셨어요.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요…. 외롭다고 하시면서 우리 집 가까운데서 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엄마는 그런 말을 왜 딸인 내게 하지 않고 손주에게 하셨을까.

"그런데 엄마, 할머니가 그 말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하셨어요."

뭐? 두 번이나?

"그런데 제가 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외로우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계속 사시게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많이 컸다. 어느새 그런 걸 다 볼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자란 걸까? 나는 아직 부모님께 자식 도리도 못하고 있는데 내 자식은 벌써 이렇게 커서 나를 혼내고 있다. 이건 아니지 않냐고.

엄마가 팔순이 넘어가 기력도 많이 떨어지고, 마음도 많이 외로우셨을 게다. 그런데 다 큰 손주가 혼자 찾아와서 청소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니 얼마나 반가우셨을까? 이렇게 오며가며 손주들 얼굴 보면 얼마나 반가울까 하는 마음에 그런 말씀을 꺼내셨으리라. 마음이 복잡하다.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했지만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오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걸까. 언니·오빠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만일 이 이야기를 언니·오빠에게 한다면 아무 대안 없이 말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말을 꺼내야 할 것이다.

'이제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두 분만 사시는 건 아닌 거 같아. 우리 집 가까이 이사 오시는 게 좋겠어. 집은 사시는 집 세 놓고 그 돈으로 구하면 되니까 걱정할 건 없어.'

이런 식으로? 아니다. 언니·오빠와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부모님 의사를 확인하는 게 먼저 해야 할 일 같다. 아니, 아니다. 그것보다는 남편과 상의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같은 집에 사는 것은 아니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가 눈치도 보인다. 그런데 관계된 모든 사람이 다 동의를 하면 또 뭐하나? 이사 올 만한 돈이 있어야지. 상의든 합의든 뭘 했더라도 경제적으로 이사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되면 말짱 도루묵이다. 인터넷을 뒤져서 시세를 알아봤다. 지금 부모님 사시는 집을 세로 내놓으면 우리 집 가까운 아파트로 세를 얻는 것은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사 오는 걸 찬성하시는 걸까? 서울에 볼일을 보러 자주 다니는 아버지는 지금 사시는 곳에 서울 가는 전철이 있어서 편하게 외출하셨다. 그러니 우리 동네로 이사하는 것을 반대하실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이틀이 지났다. 뭐 하나 딱히 결정 난 것은 없었지만, 친정에 전화조차 드리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닌 듯했다.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되레 숙제를 떠안았다

엄마는 "그냥 여기서 살아야지 뭐..."라고 하셨다.
 엄마는 "그냥 여기서 살아야지 뭐..."라고 하셨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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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집 가까이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면서요."
"응. 그런 말을 하긴 했는데 신경 쓰지 마라. 그냥 여기서 살아야지 어딜 가냐?"
"큰애가 할머니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사시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던데."

"사실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 번씩 바뀌어. 이젠 밥 같은 것은 못 해먹고 살 것 같아. 기운이 없어서 어디 식당에서 삼시세끼 배달해서 먹든가 해야지. 너희 집 가까이 살면 애들도 보고 좋겠다 생각했는데 아버지도 반대하시고…. 그냥 여기서 살아야지 뭐. 그리고 노인들은 새로운 동네 가서 사람 사귀고 살기도 쉽지 않아."

먹먹했다. 어찌해야 하나? 얼마나 더 사신다고 두 양반이 외롭게 둬야 하나? 내가 총대를 메고 일을 추진해야 할까? 우리 집 가까이 모시면 지금 생각만큼 내가 잘해드릴 수 있을까? 나 자신도 의구심이 든다. 그러니 이사를 강하게 권하지 못하겠다.

부모님이 벌써 25년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에 이사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이야 친정 부모님이 가까이 이사 오는 걸 반대할 사람은 아니다. 근데 문제는 시가다. 게다가 남편은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려서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자고 틈만 나면 노래를 한다. 부모님께 이사 오시라고 해놓고선 우리가 서울로 이사간다면? 그건 진짜 최악의 시나리오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자주 찾아뵙고 자주 전화 드리는 수밖에 없겠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방학숙제를 내줬더니 아이가 되레 내게 숙제를 안겨다 줬다. 그리고 나는 그 숙제를 다 풀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죄송스럽고 첫째에게는 부끄럽다. 아이가 어느새 자라 나를 가르치고 있다.


태그:#부모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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